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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경기가 어려운지 돈 빌려달라는 친구들이 많다

suritam92023.03.22 10:03조회 수 9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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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심히 벌어야지

 

마스크가 필요할 때 그냥 달라, 이유를 말하고 달라는 상황

자존감에 따라 동정을 구하려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마스크가 있다면 줄 것이고 없으면 안 줄것이다

동정을 구한다고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멀티모달 인공지능

사람은 멀티모달이다

오감으로 센싱하여 처리한다

기존 인공지능은 키보드나 마우스에 의해 인터페이싱 되고 텍스트에 한정되었다

지금은 이미지, 영상, 소리 등 다양한 형태를 지원한다

 

중복 연구

최근 나온 GPT-4에 의해 기존 연구들이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인공지능계의 엄친아 출연으로 해당 모델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일 수 없으므로 연구의 방향을 정하기 어렵다

 

캠브리아기 폭발

지구의 바다를 엄청나게 다양한 동물들로 가득 채운 진화사적 사건을 일컫는데 이번 GPT 모델이 그와 대적할만 하다고 한다

 

인공지능에 눈이 달리고 귀가 달림으로 수용능력도 늘어나고 동시에 사고함으로써 인간에 가까워졌다

터치와 음성으로 인터페이싱하는 시대에서 나아가 영상 뿐만 아닌 사고로 통신하는 날이 머지 않았다

 

인공지능 학습은 디지털 장례식이나 위키피디아에 허위 정보 적시, 밀어내기를 통한 가짜 데이터 생성, 51% 법칙 등으로 중독 공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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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원문보기]

2022년이 되고 나서 더욱더 게을러졌다.

 

그러나 게으름에 자책할 필요가 없다.

 

더 부지런해지기 위한 게으름이니.

 

 

김치는 가난한 음식인가?

도시락을 집에서 어머니가 챙겨주시던 중학교 시절은 가난을 알 수 있는 나이였다.

육류나 가공 소시지도 조달이(?) 안 될 경우 계란 후라이가 그 자리를 채운것 같기도 하고, 넉넉할 때 계란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김치는 있는데 주변에 보여줄 만한 반찬이 없는 것에 대해 그 당시에는 크게 게의치 않았지만 은연 중에 어머니한테 전달이 되었을 수도 있다.

김치는 결코 가난한 반찬이 아니었지만 왜 반찬은 김치 밖에 없었을까?

마트의 그 흔한 비엔나 소시지도 그 당시에는 값비싼 부류였나보다.

육류를 흉내내는 분홍 소세지도 어려웠던 시기이고, 검은콩은 상당히 저평가된 반찬이었다.

요즘 올림픽 선수들에게 나오는 반찬은 얼마나 대단할까?

참치캔도 각에 들은 조미김 반찬도 정말 어려웠던 것일까 한다.

 

어머니는 화장실 불을 켜지 않았다.

혼자 사는 나는 화장실에 불을 켜지 않고 문을 닫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가족들이 있는 상황에도 불을 켜지 않고 빛이 들어올 정도로 문을 열어두고 사용한 것은 그리 유쾌한 기억이 아니다.

지금은 10년 이상 산 집의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살만한 집으로 만드셨다.

그러는 과정에서 묵은 짐들을 다 버리는 선택을 하셨다.

묵지 않은 제품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처분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예외를 둬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형이 학생 때 봤던 것들은 아직 좀 남아있다.

미련 때문인지, 판단이 안 서서 결정을 못하셨는지 아직도 남아있다.

나도 이제 화장실 불을 켜지 않는다.

 

 

[쓰기]

[원문보기]

군에서 프린터 고장으로 수리를 맡긴 일

 

아침부터 TV를 틀었던 형

 

아파트

아가리 파이터 트롤

 

티비에 나오는 광고를 못 보게한 가장

 

3루타에서 태어난 이들이 3루타 타구를 친 줄안다

난 마루타에서 태어났는지 실험당하다가 병에 든다

 

늙으니

그니그니

 

네가 사는 품목에는 관심이 없다

 

가계부 이중 장부 써도 집 못 산다

버스 정류장 노인들의 담화

 

예약화면을 보자마자 피곤해지네

 

결국 돈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접두어가 필요하다

 

여기서 우연이란 당사자가 확실히 예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정을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민이라는 당사자는 삶에 대해 예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으므로 인생은 도박이다

 

자동화 목소리에 익숙해져야할 때

 

코인세탁소?

프린트카페

 

투자라는 단어는 사기꾼들이 사용하는 단어일 뿐이다

 

병신이라 말하는 내가 병신이 되는

 

어그로 끌기보다는 처음에 넣기

 

한강을 건너면 핑계를 만들 수 있다.

강이라도 물을 건너면 핑계를 만든다.

 

[잡담]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쓸 때

[원문보기]

그동안 논문을 작성하느라 내가 읽고 싶은 글이나 쓰고 싶은 글을 쓰는데 제약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지적에 따라 그 방향을 정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형태를 따라야 했다.

 

이제 최종 인쇄물을 제출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읽고, 원하는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가벼운 글들을 읽고 나니 글로벌(?)을 받았던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다시 느끼게 되었다.

 

문체반정과 같이 나의 스타일의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저항하게 되면 끝에 도달할수 없다.

 

과거의 형식에 따라 내 것을 숨기고 남의 스타일에 순응해야 했다.

 

이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쓸 것이다.

[무념] 무인철

[원문보기]

무인철이라 칭함은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람의 숨결이, 손길이 닿았다고 생각했다면 그리 오판하지 않았으리라.

기관사 기준으로 무인철이라함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으리라.

관제, 모니터링, 이를 쳐다보는 사람이 운영하는 사람이 모두라.

오히려 너무 어두운 곳에서 밝아지는 두려움을 같이 겪을 수 있게한 광명의 빛이다.

[독서] 코드 브레이커

[원문보기]

한 2주 정도 교육청의 강남도서관에서 코드 브레이커를 읽었다.

 

재난 영화를 보면 과학자나 해결사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사건이 일어나고 호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약간 비슷한 느낌의 서론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은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다. 이를 모르고 읽다가 인물의 대담함이나 추진력에 대해 의아해 했는데, 후반부 수상자로 선정되는 대목에서 내용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게 만들었다.

 

기존의 코드(유전자 배열?)을 수정하여 의도한 대로 동작(?) 시키는 것이 코드 브레이커가 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윤리적으로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희귀병을 고치는 것, 근육을 늘리는 것, 지방을 줄이거나 심장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이 기준에 따라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연구자들의 작명 센스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을 발견 하였다.

 

한 때, 한창 개발에 열을 올릴 때, 여러 기능을 활용하면서 기능과 사용되는 SW의 이름을 조합해 여러 스니펫을 제작하였다.

 

유전자 조작이나 각 마이크로 서비스를 만들며 조합하는 작업들은 이러한 공통점이 있다.

 

의도한 대로 동작하도록 짜맞추고 네이밍에 따라 새로운 의약품/백신/SW/서비스로 창출되는 것이다.

 

 

[숨이 죽다의 중의성]

채소를 소금으로 또는 끓이는 방식으로 숨을 죽이는 것은 사람이 기를 죽이거나 실제 생존하지 않는 듯하게 "숨을 죽이고"있는 것과 같다.

 

채소가 수분이 부족하여 숨이 죽어 있지만, 물기를 적당이 보충하면 숨이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다.

 

물론 과도하게 숨이 죽었을 경우, 회생하지 못하는 것도 유사하다.

 

 

[어머니는 도서관을 불신하였다]

학창시절 여러 도서관을 순회하며 책을 빌려 보았다.

 

이자 없는 대출에 손을 댔던 것을 우려하신 탓일까, 공부하지 않고 책만 보는 나를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다.

 

아마도 교통비가 많이 나가서 그러하였을지도 모른다.

 

 

[오수재와 우영우]

대부분의 드라마는 초반에 직업이 부각되지만 2~3회를 지나면 러브라인으로 넘어간다.

 

우영우를 리뷰하는 변호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오수재는 직업에 대해 논할 시점은 지나갔다고 한다.

 

우영우도 러브라인을 타며 불편하게 하였다.

 

비밀의 숲처럼 거의 배제했어야 하는데, 마이 네임 처럼 오점을 남겼다.

 

 

[원로 멤버는 안전의 약속]

중년 배우가 영화나 드라마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유는 늙어버린 관객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다.

 

"또경영", "만년 조연"들이 반가울 때도 있지만 너무 자주 나오면 지겹다.

 

영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예능에 자주나오면 그건 반칙이다.

 

카메오 출연은 여러 관객을 포용하기 위한 가성비 좋은 선택이다.

 

 

[스낵타운을 보며 도전 정신에 감탄하다]

다들 안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도전을 짓누르지만, 그 많은 컨텐츠들의 주제가 다 비슷비슷하고 새로울 것이 없다.

 

틱톡이나 유튜브 컨텐츠의 99%는 모방, 커버 영상, 릴레이, XX챌린지 같은 따라하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드라마도 기승전결의 사랑 타령이나 영웅이 나와서 지구를 구하는 내용이 99% 이다.

 

노래도 마찬가지이며 SW도 다르지 않다.

 

같더라도 다르므로 도전하는 삶을 이어가자.

 

 

[쓰기]

[원문보기]

의식동주

의식주에 이동권을 더 하다

이동은 권리이지만 권리라고 주장하기에는 염치가 없다

 

무한이 아니지만 셀 수 없다면 무한이다

 

최무식 처럼 주변인 괴롭히기

 

군번이 꼬인 대한민국

후임이 안 들어오고 선임들은 제대를 안 하는 상황

 

불황형 소비

그 다음은 거지 쇼핑

 

반려로봇 우선 판매지

식품 사막

 

어설프게 유흥을 즐겼던 이들은 도태되었다

 

지시하는 자와 실행하는 자를 분리한 이유

- 로봇이 그 사이에 개입되면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공격 권한과 제어 권한은 다르다

 

시큐어는 격리이다

 

주식으로 망했다는 사람들은 실제 얼마 돈이 없고,

대출로 망한 것이다

대출로 더 큰 이익을 얻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일으키고 그렇지 않으면 근로소득으로 벌어야 한다

 

현상은 보존할 수 없다.

소멸한다. 변화하거나

 

성 남성성이 결정력이 높아 남성에 씨를 따르는 경향이 높다

적어도 인간은 남성이 생존에 유리한 사회이므로 이를 따른다

 

 

[도서] 어쩌다 보니 살아남았습니다

[원문보기]

과연 어쩌다 보니일까?

 

정말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생명을 유지한 것은 아닐까?

 

현 삶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는데, 각종 갑질에 분노가 차오른다.

 

그 놈들은 고마움을 모르는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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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남자들, 쓸쓸하다

[원문보기]

2005년 나온 책인데, 최근 다시 이슈화된 페미니즘과 지금의 남자들이 겪는 환경을 잘 그리고 있다.

 

당시에도 집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40~50대인데, 지금은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

 

문화센터와 커피숍, 음식점을 차지해버린 기혼 여성들과 설자리 없는 기혼 남성들은 비교 된다.

 

ATM이 되어 버려 사회 트렌드를 알지 못한다며 대화에 끼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자로 사느니, 비혼이 답일지 모른다.

 

본인들의 성(性)이 본인들의 직업이 본인들의 삶이 가장 힘들다 하겠지만, 힘들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남성 중심적으로 쓰여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인 개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82년생 김지영과는 전혀 다르게 남자라는 이유로 불합리했던 상황을 다룬다.

 

대접을 받아 오히려 배부른 소리한다고 반발한다면, 겸허히 인정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남자들은 많은 책임만 존재하지 권리는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남자들, 쓸쓸하다"를 읽으며 남자를 대변하는 10여년 전의 상황(현재는 더 하다)을 권하고 싶다.

 

올해에 나왔다면, 이 책은 페미들에 의해 불살라졌을 것이다.

 

당시 리뷰를 보기만 해도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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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 나는 성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원문보기]

최근 리뷰를 하고나서, 리뷰 요청자에 대한 평가가 저조하게 나왔다.

 

리뷰 요청자도 성의 있게 제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제 달성에 대한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로 간(?)을 보기 위해 제출했다고 코멘트했다.

 

그런 상황에서 reject를 선택하기에는 여러모로 무언가 피드백을 줘야만 했다.

 

그러나 굉장히 친절한 설명을 하기에는 학습 자료가 충분하였고, 이를 반복해서 제공하는 것은 자원 낭비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몇 줄의 글로 해당 리뷰를 끝내버렸고, 결국 리뷰 요청자와 리뷰자의 minus sum 결과를 초래했다.

 

나는 내 삶에 대해 성의 있게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성의없는 접근은 성의없는 응답을 받게 되어있다.

 

어디서부터 대충대충이 개입했을까?

 

대충대충은 아니다. 조금더 적극적이고 공통적인 기준에 달하는 노력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 준비할 때, 단순한 응답을 보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접근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한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되지 않은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다음 버스를 타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하고 있다면 안 하는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시간도 충분하고 해야할 당위성도 충분하다.

 

결론은 성의있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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