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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홈페이지

[잡담] 인형탈 써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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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펭수가 의외의 인기를 기록하면서 법제처의 새령이 인기를 끌어보려 한다. 방송 3사를 비롯해 채널이란 채널에 다 출연하고 있는 펭수는 어떤 요인에서 인기가 비롯되었는가! 단연 인형탈이 모든 요소를 차지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느 미디어학자가 뽀로로를 분석할 때 짧은 다리 짧은 날개로 한계점을 지녔지만 이를 극복하는 모습에서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언급하였다. 같은 맥락이라면 동일한 신체적 한계를 가졌지만 불의에 저항하고 의견을 표출하며 화를 대신 내준다는 것이 어른들에게도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법제처의 새령이 인기를 끌고 싶다면 입담과 국민이 원하는 법률을 제언하는 법, 법에 제정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컨텐츠화 해야한다. 인형탈은 소시민을 대변하는 외적 모습이며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것은 권력자에게 자기 권리를 정당하게 쟁취하는 것이다. 펭수가 엇나가고 있지만 그것은 시민들의 억압되어 있던 일상을 일탈하게 해주는 시원한 모습을 대변해 주며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푸드 포르노 보다는 성숙한 컨텐츠로 옮겨갈 수 있다.

[리뷰] 프린세스 메이커 for 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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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보고 게임을 설치해 봤다.


8년 동안 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바로 엔딩을 하니, 취직할 자리가 없었다.


역시 현금을 써야만 되는 건가?


막상 일용직 딸의 엔딩으로 보고 나니 너무나 슬펐다.


어쩌면 출생 환경에 따라 정해진 운명에 대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지도. T.T;;;


[가을] 책을 읽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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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년 전 도서관과 헌혈의집이 단골이었다.


지금은 웹툰과 술집이 더 익숙해져 버렸다.


내일이라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야겠다.



[OTL] 요세미티 설치 후 vmware 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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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베릭스로 바꾸려고 했는데, 이전버전이라 안 된다고 한다.

 

vmware를 6만원 정도 주고 다시 사야하는데, 아깝다. 

 

좀 더 정보를 수집해 보자.

 

 

 

https://my.vmware.com/web/vmware/info/slug/desktop_end_user_computing/vmware_fusion/7_0

 

위 주소에서 받아서 30일간 사용할 수 있다. 뭐. 크랙이 있으려나... 

[서평] 버티는 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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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게 생활인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쓰레기들이 많아서 안 읽었는데, 그건 내가 사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을 쓰면 얼마든지 양질을 책을 볼 수 있다.


허지웅은 줏대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역시 방송을 하기 위해 굽히고 있다. 버티고 있는 것인가?


아무튼 글쓰는 허지웅이라고 한다.


나도 글쓰는 박영식이다.


글쓰기가 품이 더 들어 간다고 말한다.


코딩이 품이 더 들어간다. 그런데, 수입은 컨설팅이 훨씬 낫다.


예전에 나도 서평 기사로 돈을 번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 수입이 적다.


존버정신으로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책은 사서 볼 것이다. 물론 도서관에서도 빌려 볼 것이다.


좋은 책은 사줘야겠다.


yes24의 적립금으로는 어떤 책을 살 수 있을까?


도서정가제에 묶여 제 값을 주고 책을 살 수 있으니, 인세가 저자들에게 돌아가려나 모르겠다.

[발췌] 디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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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친구들도 다 받기 때문이야. 성적이 떨어지진 않을 거라고 안심할 수 있거든. 그리고 네가 과외를 하는 것도 주변 친구들이 다 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사기 치는 건 아니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거야. 넌 노동이 아니라 주술을 하고 있어."

아름다움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왜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아름다움을 좇는가?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고, 내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우주는 질적 대칭과 양적 비대칭으로 유지되는 곳이다. 빛과 어둠. 질서와 무질서. 의미와 무의미. 아름다움과 추함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것들이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우리가 왜 무언가를 선호하게 되는지를 다시 설명해야만 한다. 그냥 이렇게 반대로 말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

교수 세 명으로 구성된 심사단 앞에서 졸업 예정자들은 순서대로 논문을 발표했다. 안민은 거침없이 묻고, 꾸짖고, 헤집고, 윽박질렀다. 남학생들은 땀을 뻘뻘 흘렸고 여학생들은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논문이 심사를 가뿐하게 통과했다. 박사 논문이 아니라 학부 논문이었다. 학문적 성취가 아니라 학위의 수료를 위한 형식적 절차였다.제자를 고꾸라뜨릴 필요는 없었다.~중략~공부를 계속할 생각이 없는 학생의 졸업을 막아봐야 서로 득될 게 없었다.

삼성전자 홍보실에서 나온 돈으로 삼성전자의 목을 조르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안 그래?

한 국가의 대표팀 응원복이 다른 국가의 생활 의복을 점령해버리는 건 결례였다. 그래서 그 옷들은 막 탈북해서 대한민국으로 건너온 새터민들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새터민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으면서 소정의 정착금, 임대 주택과 함께 빨간색 반팔 티셔츠를 제공받았다.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새터민들은 영문조차 몰랐다. 말 그대로 영문(英文)을 몰랐다.
구사일생으로 빨갱이들의 왕국을 탈출해 자유의 나라에 도착한 이들은 벅찬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새마른 가슴팍에 무엇보다 먼저 이런 문장을 새겨 넣어야만 했던 것이다. Be the reds!

나를 밀고한 대석 형과, 진우를 밀고한 나는 대공분실에서 무사히 풀려났다. 우리는 바쁘게 폭탄을 돌렸다. 하지만 폭탄을 영원히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터지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진우는 풀려나지 못했다.

그는 부평 대우자동차 시위로 인해 입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학생운동을 떠났고, 검사가 됐다. 그리고 검사가 되자마자 부평을 관할 구역으로 받아 돌아간 것이었다. 그에게 보고를 올리는 경찰들은 틀림없이 몸서리칠 것이다.~중략~세상은 돌고 돈다.

축제란 불바다인 전쟁과 피가 튀는 학살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죄책감의 산물이었다. 대한민국의 다섯개 국가경축일 가운데 네 개가 전쟁과 관련이 있다. 대한민국의 45개 국가기념일 가운데 17개가 전쟁과 관련이 있다. 축제는 인간의 죄에서 유래했다. 축제의 흥취에 익사 직전까지 젖었을 때, 비로소 인간이 저지른 지나간 되는 깨끗이 망각된다.

란다우어의 원리란 열역학 법칙이 있어. 열역학에서는 정보를 곧 에너지로 취급하는데, 통념과는 다르게 에너지는 정보를 조직할 때가 아니라 삭제할 때 사용된다는 거야. 이 원리에 따르면 아무리 복잡한 연산이라 해도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다만 연산장치의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산이 끝난 정보를 지워 초기화 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에너지는 이 과정에서 전부 소모되는 거야.

나는 생각해보았다. 인간의 뇌 역시 전기화학적 연산장치이므로 란다우어의 원리가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기억하기는 쉽다. 잊기는 어렵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지우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몸부림친다. 처음으로 되돌리려고. 얼마나 더 큰 에너지를 지나간 기억 위에 미련하게 쏟아부어야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불행이 따르면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불행이 닥치지 않는다고 의아함을 느끼지는 않는 법이다. 그리고 불행은 인간이 완전히 방심했을 때, 즉 몸과 마음의 긴장을 홀가분하게 내려놓았을 때, 무장강도처럼 불쑥 찾아와 최악의 피해를 남긴다. 그래서 그것이 불행이라고 불린다.

이미 세상의 부조리에 무감각해졌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자본의 논리라고 불렀지만 나는 다윈이 사용한 용어가 더 와 닿는다. 다윈은 그것을 적응이라고 불렀다.

그런 자신감은 세계의 의미 있는 변혁이 우리의 젊음과 함께 완료되었다는 자기중심적 사고 방식에서 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되는가? 마침내 변혁의 대상이 되고 만다. 나는 역사의 법칙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자네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야. 공부를 포기하고 사회와 싸운다는 건 말이야, 적이 모는 자동차에 몸을 던져 피로 범퍼를 더렵혀주겠다는 거나 다름없네

그건 50년짜리 안목이라고. 자기는 5백년, 5천 년 된 세상의 질서를 바꾸려고 싸우는데 50년 된 법을 어기는 것 따위가 무슨 대수냐고.~중략~하지만 결국에는 알게 되는 거다. 5천 년 된 세상을 그렇게 쉽게 뒤엎을 수는 없다는 걸.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상을 바꾸려고 젊음을 다 쏟아부었는데, 뒤늦게 세상이 바뀌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 차라이 세상이 되어버리는 거야. 아주 철저하게 세상이 되어 낭비한 젊음을 보상받는 거지. 그놈이 지금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너 같은 꼬맹이가 새로 나타나서 그놈이 만든 세상을 바꾸겠다고 날뛰지.~중략~너희는 세상과 싸우는 게 아냐. 세상이란 단어에는 아무 뜻도 없어. 너희는 선배들과 싸우고 있다. 너만 할 때는 딱 너랑 똑같은 눈을 하고 너의 미래와 싸우게 될 거야. 끝이 없는 윤회 같은 거지. 

242화 작은사치(2월 6일 글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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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에서 친구를 만나고, 광역버스를 탔다.


승객은 나 혼자.


택시 탄 기분이다.


지하철보다 650원 비싸지만 쓸 땐 써야지


2015-02-054902-****-****-0034경기버스운송사업조합2,00020:34:1821:30:29센트럴파크사당역1553
2015-02-054902-****-****-0034지하철(정산)40021:32:2721:36:53사당낙성대

[도서] 나는 개가 아니라 늑대다(2월 6일 글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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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성과 희망들이 고갈되고, 한치 앞의 미래도 보이지 않고 온통 불투명할 때, 나는 불행하다. 오래 실직한 상태고 수중에 돈은 다 떨어졌는데, 카드회사에서 연체된 카드대금을 독촉받을 때, 나는 불행하다. 도무지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 큰 돈을 벌고 떵떵거릴 때, 입만 열면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그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불행하다. 사랑이 습관과 의무로 전락해버렸을 때, 더 이상 연인을 기다리는 일이 가슴떨리는 기쁨이 아니게 될 때 나는 불행하다. 문득 어린 시절의 어떤 순간들,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이 귀향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로 기뻤다. 그런데 그 행복했던 순간들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나는 불행하다. 몸이 아프고 주위에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나는 불행하다. 나에 대한 근거 없는 나쁜 소문이 돌고 그 소문 때문에 절친했던 사람이 나의 억울한 사정을 헤아려보지도 않고 말없이 등을 돌릴 때, 나는 불행하다. 나의 우둔한 결정과 선택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 당할 때, 나는 불행하다.


개그 프로에서 정치권을 욕하다가 민간업체를 욕하는 것으로 돌아섰을 때, 씁쓸함을 느꼈다.


사자-되기와 늑대-되기는 하나로 겹쳐진다. 개들은 사육되지만, 늑대들은 숲속에서 방목된다. 개들은 주인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지만, 늑대들은 스스로 사냥해서 먹이를 구한다. 늑대들은 개들과는 다른 계통에서 오며(즉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가족 제도나 국가 장치에 포획되기를 거부한다. 늑대들은 그런 거부의 연쇄를 통해 늘 새로운 생성의 존재로 나아간다. "개들에게 미움받는 늑대처럼 민중에게 미움받는자. 그런 자야말로 자유로운 정신이며 속박을 거부하는자. 그 누구도 경배하지 않는자, 숲속에 사는 자다."


사육되는 개가 되느니, 사냥하는 늑대가 되겠다.



-장석주, 동물원과 유토피아-

메르스 확산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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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visualization query를 이용해 차트나 여러 분석자료를 확인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https://namu.wiki/w/2015년%20대한민국%20메르스%20유행/경과 를 참고해 데이터를 넣고 통계와 차트를 그려봤다.

www.mt.co.kr/mers/

 

http://lispkorea.org:8991/mers.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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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유용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지만, 치사율 구하는 방법을

사망자/(사망자+퇴원자)

로 해볼 수 있다는게 좋은 점이다.

 

평균 확진 후 퇴원 일 수나 사망 일 수 에서는 아직 유용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추후 좋은 분석자료가 될 것이다.

 

연령별 사망률과 퇴원율을 구해야하는데 쉬운게 아니다.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7-Xqa9HyOqBcQLIpZA_2FyHEMYolIUnwmePawuFXc-g/edit?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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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는 100% 생존, 80대는 100% 사망 T.T;;; 아직 치료중인 환자가 있으니 예외가 나올 것이다.

[수필] 노동착취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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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6 sigma 전략은 효율적인 생산 방법론으로 추대된다. 하지만 사회 구조의 변화 즉, 지식정보사회로 이전하면서 이 방법론이 효용이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최근이긴 한데, 최근을 붙이기엔 오래된 느낌이다) 토요타의 대량 리콜사태, '토요타의 어둠'이란 책을 통해서 본 그들의 전략은 현 시대에 맞지 않다. 6 sigma는 단순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통계적 불량률을 줄이는 방법론으로 제조업의 기계화된 실정에는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식을 생산하고, 창의성을 요구하는 현재에는 그런 컨베이어벨트에서 나오는 생산 방식으로 생각이 창조되지 않는다. 제조업의 기계적 관점을 사람에게 적용하니, 인재들은 기계화 되고 창의력을 잃거가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이 추대받고 있으니, 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잠재력을 가진 인력은 좌절하거나 도태되고, 재 역할을 하지 못한다. 6 sigma에는 MECE라는 것도 있었다. 이는 집합, 확률과 통계에 나오는 개념인데, 업무 분담이나 일처리에 중복이 없고, 누락 없이 할당하는 방법론이다. 물론 말은 참 좋다. 하지만, 할당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업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정보 교류가 되지 않으므로 시너지를 낼 수 없고, 한 사람의 실수에 의해 그 업무가 누락되면, 그대로 빈 공백이 되고 만다. 적절한 공유 업무가 있고, 서로 원할히 공유할 수 있는 환경과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업무 할당에 대해 고려되어야 한다.
제조업에 적용되는 방법론을 사람에게 적용해 노동을 착취하는 빈틈없는 전략(?)은 점점 효용성 검증의 논란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존재하는 프로젝트의 수많은 방법론. 그건 말장난이며, 인간을 억업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농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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