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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홈페이지

2004년 부터 2005년 6월까지

박영식2009.03.15 08:19조회 수 193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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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4U 게시판 방명록 백업 시스템 Ver 1.0
백업일 : 2005-06-15 오후 3: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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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1
제  목 : 1998. 8. 13 개펄 그리고 생명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0:00
내  용 :

용어의 정의

+- 개펄 : 갯가의 개흙이 깔린 벌판. 간조와 만조의 차가 큰 해안 지형에 발달함.

+- 갯벌 : 조수가 드나드는 모래톱.

☞  두 단어의 뜻이 유사하므로 바꾸어 써도 상관없음.

"개펄 환경 그리고 생명展"을 관람하고...

선인고등학교 11215 박영식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담임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배분된 "개펄 환경 그리고

생명展"의 할인 티켓(Ticket)을 몇 장 나누어 주셨다. 난 그 중 한 장을 받아 방학 때 관람

하기로 했다.

방학하고 얼마 지나서 그 티켓을 가지고 버스를 탔다. 그 때는 도서관을 다니는데 재미가

붙어서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갔다. 북구*서구*부평 도서관을 다니며 서고를 뒤졌던 그 때

의 자신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간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3번 또는 2번 타야

했다. 효성2동으로 가서 39번을 타거나 서구에서 39번을 타는 방법이 있다. 서구 도서관을

들르기 위해서 버스를 3번타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산곡동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서구 도서관에 들러 책을 몇 권 본 후 39번을 타고 서구

문화회관에 들어갔다. 전시장은 그리 넓지 않았다. 개펄에 관한 설명, 세계의 개펄이 위치

한 사진이 있었고, 개펄 작업을 하는 여러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할인티켓의 겉면에

있는 사진은 ''최춘일''씨의 작품으로 대부도 남사리에서 1996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이

사진을 스캔해서 올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좀 아쉽다.

그 곳의 하이라이트(High Light)라고 할 수 있는 물고기 모형에 대해 설명하겠다. 그것은

온갖 쓰레기를 재활용해서 만든 커다란 모양의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삽, 가위, 펜치, 철사

등을 페인트 통 속에 넣어 파랗게 만든 후 말려 벽에 붙인 듯 했다. 이 작품을 보며 어디까

지 재활용이 가능한지를 알게 되었다. 재활용은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끝까지

재활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시장 중간쯤에는 그물 모양의 플라스틱 통에 인형이 가득 들어 터질 것 같은 작품도 있

었다. 그 작품은 현대를 사는 인간들의 구속, 빡빡함을 나타낸다는 설명과 함께, ''만지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붙여 있었다. 작가의 뚜렷한 의도는 파악하지 못할지라도 현대 사회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관리자 님과 몇 마디를 나누면서 오염된 개펄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출

했다. 전에, 성당의 캠프(Camp)를 통해 개펄에 다녀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말이 통했다. 그

분은 개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개펄 오염의 심각성에 대하여 인

식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버스 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번에는 버스를 2번 타기로 했다. 그런데 서구문화회관을 처음

방문한 날이라 할인티켓에 개략적으로 그려져 있는 약도를 보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 다녔

다. 한참을 도보한 끝에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올 때는 버스 비를 절약할 수 있었지만

피곤하여 버스에서 잠이 들었었다.

지금 이렇게 감상문을 써보니 느낌이 새롭다. 며칠 전 개펄에 다녀왔었는데, 그곳 역시 축

산폐수로 오염되어 가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전시장에서의 일을 기억하며 개펄이 다시

깨끗해지길 바랬다.



번  호 : 2
제  목 : 1999.4.18 퓰리쳐 사진 대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1:00
내  용 :
''퓰리처(Pulitzer) 사진대전''을 관람하고

선인고등학교 11215 박영식

학교 앞에 걸린 ''퓰리처 사진대전''이란 플래카드를 보고 관람하러 가

기 위해 계획을 세웠었다. 사진전이 끝나갈 때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수봉공원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수봉공원에 간 적은 있었지만 기억이

안 나서 기사님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

려 다른 버스로 갈아탔는데, 그때는 벚꽃축제 기간이라 사람이 많았

다.

우리는 수봉공원을 둘러본 후, 문화회관을 찾으려 했지만 도저히 찾

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경찰관이 있어서 여쭈어 보니 방향을 일러주

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사진전을 관람했다. 퓰리처란

신문기자에 의해 생긴 이 상(賞)은 상금도 많고 권위가 있어 모든 사

진기자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시장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을 모두 모아 논 모음집이 있었

다. 20,000원이란 가격이 붙어 있어 갖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신문에 실린 사진이나 액자에 걸린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1전시실과

2전시실을 거쳐 모든 사진을 관람했다. 그 중에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보았던 6*25 전쟁 중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

''1951「한국 전쟁」Max Desfor; korean War; Courtesy of Associated

Press''란 문구가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통해 발전해 왔지만 전쟁은

너무 잔혹하다. 이제는 제발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전시관에서 나와 10여분을 걸은 끝에 제물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모두들 피곤하지 나를

포함하여 모두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그 때 일을 회상하며 사진의 중

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요즘은 사진을 합성하여 비판하거나 저질

화 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보며 기술을 남용하지 않

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기자들처럼 기회를

잘 잡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번  호 : 3
제  목 : 1999. 8.14 세계 공룡 대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2:00
내  용 : 세계 공룡대전을 관람하고...

선인고등학교 박영식

8월 14일 아침. 눈을 뜨니 8시 30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세면을 한 후 아침식사를 했다. 연안부두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던 터라 밤을 설쳤는지 별로 밥맛이 없었다. 외출준비를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대략 1시간쯤을 달려 “인천개항 100주년 기념탑”을 지나갔다. 초행길이라 연

안부두 전시관을 알지 못해 기사 님께 여쭈어 보았다. 기사 님께서는 거의 다 왔다고 말씀하셨다. 다행

이 목적지가 같은 분이 계셔서 따라갔다.

약 5분을 걷다보니 좀 허름한 건물이 보였다. 주변에 “세계 공룡 대전”이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서

전시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면에 1/5로 축소한 공룡이 유리상자 안에 진열

되어 있었다. 티켓을 구입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전시장소에서는 여러 화석들과 진화과정을 다룬 도표를 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 안내양이 화

석을 만지거나 촬영을 할 수 있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화석들을 천천히 만져 보았다. 공룡의 발자국과

공룡의 늑골, 코끼리의 치아, 고래의 두개골 등이 있었다. 진열된 화석 중에는 앵무조개라는 것이 있었

는데, 지금의 조개와 많은 차이를 보였다. 그것들과 진화 과정을 다룬 도표를 보면서 문득 다윈의 진화

론이 떠올랐다.

두 번째 전시관은 큰 공룡들을 진열한 곳이었다. 고무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제작한 공룡들은 미세하

게 움직이는 것도 있었고 꽤 많이 움직이는 것들도 있었다. 그곳의 공룡들을 몇 마리 열거해 볼까 한

다. 먼저, 입구에서 나누어준 ‘탐험증’이라는 것에 약간의 설명과 그림이 있는 공룡들이다. ‘패키세

팔로사우르스’는 ‘두꺼운 머리의 도마뱀’리란 뜻으로 특징은 초식공룡이며 외형상 대머리라는 것이

다. 내가 그 때 삭발한 때라 그 공룡에게서 특별한 친근감을 느꼈다. 그러나 아쉽게 그 공룡의 왼쪽 머

리가 약간 파손되어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공룡을 직접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공룡의 기계

부분이 드러나 있어서 현실감이 적었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다음으로 디더큐러스라는 초식공룡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공룡은 ‘비밀의 사원(Secret Temple)’의

정 중앙에 전시되어 있었다. ‘비밀의 사원’은 여러 개의 작은 백열전구를 달아 신비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디더큐러스의 특징 중 인상깊었던 것은 꼬리이다. 꼬리는 도깨비 방망이와 유사하여 뾰족한 돌

기가 돌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북이 같은 등 껍질이 있어서 내가 본 공룡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

다. 그 왼편과 오른편에 각각 ‘파라사우롤로푸스’와 ‘벨로시렙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전자는 새끼

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을 표현하여 공룡의 생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후자는 다른 공룡의

알을 약탈하는 구성을 함으로써 ‘재빠른 약탈자’라는 이름의 의미를 강조해 주고 있었다.

‘비밀의 사원’을 나와 3D 입체 영화를 상영하는 곳으로 갔다. 영화는 약 5분으로 무척 짧아서 한국

어 녹음 버전과 원어 버전을 두 번 보여 주었다. 입체 안경을 착용하고 스크린을 집중하니 그냥 보는

것보다 더 실감났다. 그것은 중학시절에 본 비스트 워즈(Beast Wars)를 생각나게 했다. 안경은 정말 공

룡이 잡아먹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영화가 너무 짧았지만 그런 대로 재미있었다.

영화관을 빠져 나와 상점에서 고무로 된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뼈 모형을 구입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비디오 테이프와 공룡 두개골 등이 진열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 더 좋은 것은 구입하지 못하여 좀 아쉬웠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공룡 대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난 한달 전 통학하면서 버스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세계 공룡대전’이란 글에 크게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시설도 허술하고 입장료에 비

해 진열 품목도 미흡하여 많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알지 못한 것들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고 오랜만

에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를 할 수 있어서 기뻤다.



번  호 : 4
제  목 : 2K.1.8 인천대학교 예체능대 미술학과 16회 졸업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3:00
내  용 : ‘인천대학교 예체능대 미술학과
제16회 한국화ㆍ서양화 전공 졸업작품전’을 관람하고
선인고 박영식
1월 8일 나는 워드 2급 자격증을 수령하기 위해 상공회의소로 향했다. 초행길이라 전화로 문의를 해보니 좌석버스 103번을 이용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어디서 타야할 지를 몰라 부평역으로 나갔다. 역에서 내려서는 버스 정류장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버스는 1시간 30분 정
도를 달려 남동공단 입구를 지나갔다. 친절하신 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상공회의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건물은 매우 컸다. 그 안으로 들
어가서 나의 이름을 말하고 도장을 찍고, 자격증을 받았다. 받는 순간의 감동은 직접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시간은 5분
도 채 안 걸렸지만 가는 데만 2시간이나 걸려 매우 허탈하였다.
나는 그 길로 다시 103번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오는 도중에 인천 터미널의 지하철역을 지나 왔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내려 지하
철을 타기로 했다. 그러나 인천터미널역을 찾지 못해 예술회관역까지 가기로 했다. 예술회관 앞에는 ‘인천대학교 예체능대 미술학과 제16
회 한국화ㆍ서양화 전공 졸업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금 재학중인 학교와 가깝기도 하고 예술적 견문도 넓히기 위해 문을 들어섰다.
입구에는 담당자 2명과 방명록이 마련된 탁자가 놓여 있었다. 왼쪽부터 서서히 발길을 옳기기 시작했다. 그림들이 거의 추상적이기에 이
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고, 관찰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팜플렛의 그림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
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 ‘문명의 개인적 투영’으로, ‘갯벌 사진전’에서 보았던 것 같은 혼합 재료로 되어 있었다. 그림의 제목도 멋있
고, 화가의 이름(강혁)도 멋있었다. ‘무제’같은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비난하기도 했다. 노력이나 정성 등이 별로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팜플렛에는 삽입되어 있지 않지만 ‘아버지’라는 작품은 나의 심금을 울렸다. 그 모습이 고뇌에 가득 차고 짐을 진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두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 모든 작품을 관람한 뒤 탁자 쪽으로 갔다. 방명록은 붓펜로 쓰게 되어 있었는데, 한자로 쓴 것이 대부분인 듯 하
였다. 그러나 난 불편한 붓펜 대신 나의 볼펜으로 ‘문명의 개인적 투영’과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고 이름을 써넣었다. 물론 나를 아무도 모
르겠지만ㆍㆍㆍㆍㆍㆍ. 방명록을 내 멋대로 써서 결레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예술적 교양을 높이게 되어 즐거웠고 예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는 것도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번  호 : 5
제  목 : 2k.5.23 인천 취주 악단 연주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4:00
내  용 : 음악회를 다녀와서..
선인고 박영식
친구가 음악회를 관람하러 간다기에 예술적 교양을 높일까하는 마음으로 자율학습을 미루었다. 예전에도 ‘종합문화예술회
관’에서 관람한 적이 있기 때문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입장권을 내고 로비로 들어가니 팜플렛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이
번 음악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  보았다. 짜여진 프로그램도 알찼고, 출연자들도 실력 있는 분이라
기대가 되었다. 관람석으로 들어가 정해진 좌석에 앉아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스피커에서 뱃고동소리가 나더니 사회자가 등
장하였다. 사회자는 현직 교사로서 관람석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곧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정수훈님의 지휘에 따라 ‘Hand across the Sea’로 힘찬 출발을 하였다. 지휘자의 역동적인 몸짓이
돋보였으며 심벌의 울림이 조화를 이루었다.
첫 번째 곡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곧 사회자의 합창단 소개가 있었고 ‘Valse des Fleurs’로 흥을 돋우었다. 이 곡은 ‘
꽃의 왈츠’로 왈츠 특유의 박자를 느낄 수 있었으며 간간이 나오는 트라이앵글이 즐겁게 해 주었다. 중간에 나오는 클라리넷
연주가 주를 이루었으며, 많이 접했던 음악이라 듣기 좋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관악기였다. 피콜로, 클라리넷, 바
순, 나팔, 오보에, 색소폰, 플롯 등이 있었고, 나머지 악기들도 제 음을 발휘하였다.
두 번째 곡이 끝나자 ‘새 몽금포 타령’, 우리 나라 민요가 선을 보였다. 들으면서도 역시 민요는 국악으로 듣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합창단의 화음은 관객들을 집중시켰다. 곡이 끝나자 합창단과 일부의 악사들이 퇴장하고 절반 정도만이 다음 곡
을 연주했다. S. E. S의 love라는 곡으로 귀에 익은 것이었지만 관현악으로 연주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잘 된 편곡
으로 매우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사회자는 관객들에게 즐거운 이야기를 해주며 다음 곡을 소개했다. ‘Voices of Spring’! 이것은 집에도 있는 곡으로 봄의 정
취를 느끼게 해주는 흥겨운 음악이다. CD로만 감상하다가 직접 들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다음으로 지휘자 김용호님과 함께 출현한 금혜주양은 ‘웃음의 아리아’,‘옥련화’로 소프라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웃음의
아리아’에서 웃음을 표현한 부분이 인상 깊었으며, 고음을 잘 처리해내는 모습이 놀라웠다. ‘옥련화’에서는 아름다운 손동작
이 감미로운 음악과 잘 어울려 관객들의 감탄사를 유도했다. TV에서만 보아오던 장면들을 직접 보니 지금도 생생하다. 기회
가 된다면 또 관람해 보고 싶다.
소프라노 금혜주 양이 퇴장하고 지휘자의 활약이 주(主)가되었던, ‘천국과 지옥’을 감상했다. 암울한 분위기와 경쾌한 분위
기가 조화를 이루었고 클라리넷 독주가 아름다웠다. 중간의 적막에서 빠른 템포로 옮아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으며, 점점 빨
라져 흥겨워졌다. 귀에 익었던 행진곡들이 나오면서 멋지게 끝마쳤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관객들의 의식이었다. 곡이 끝나
지도 않았는데, 박수를 친다던가, 떠들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1부가 끝나고, 휴식시간동안 고픈 배를 달래
보려 했지만 많은 인파와 높은 가격이 식욕을 떨어뜨렸다.
휴식이 끝난 후, 유응진님의 지휘로 ‘Glenn Miller Medley’, ‘ob-la-di, ob-la-da’를 들었다. 전자는 색소폰의 독주가 주(主)를
이루었고 드럼소리도 귀에 들렸다. 나팔과 플롯, 바순도 중간의 이음 역할을 잘하여 매끄럽게 해주었지만, 어색한 소리가 조
금 안타깝게 했다. 후자는 탬버린의 흥겹고, 경쾌한 박자로 리듬을 탔으며 플롯의 연음이 마음을 흥분시켰다.
다시 합창단이 나오고 김종환씨의 곡 ‘사랑을 위하여’를 불렀다. 긴장을 하셨는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 나온 ‘
Jesus Christ Super Star’는 은은한 음으로 관중을 사로잡았다. 절도 있는 연주로 플롯, 드럼이 주(主)를 이뤄 매우 좋았다.
사회자의 마지막 곡 소개와 함께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팜플렛에는 인쇄되었지만 연주하지 못한 곡 때문이었는지도 모른
다. 어쨌든 ‘개선 행진곡’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관객들의 부탁에 짧은 곡 하나를 더 연주하고 공연은 끝이 났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며 시끄럽게 하는지를. 더 이상의 교양 있
는 행동은 불가능 한 것일까? 수준 낮은 행동으로 나쁜 인상을 남긴 이들의 의식이 변화했으면 좋겠다. 나는 공연 내내 친구
에게 악기에 대해 물어 보았다. 내가 악기에 대해 무지했던 탓이다. 오늘의 계기를 통하여 더 많은 악기를 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번  호 : 6
제  목 : 2k.7.23 인천 문예부 연합 시화전-지하에서 세상을 보다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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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1-02-11 오후 3:08:00
내  용 : ‘인천문예부연합 시화전-지하에서 세상을 보다!’를 관람하고
약대(若大) 박영식(朴映植)
  
제 1회 인천문예부연합 시화전 “지하에서 세상을 보다!”를 관람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부평을 지나 예술회관역에
도착하였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그 시화전을 일부러 보러 가는 것은 손해이다. 그러나 하루밖에 볼 수 없는 것
이기에 기간에 가치를 두고 결정한 것이었다. 한 층을 올라가니 패널, 보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천천히 거닐며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얼마 후 선인고 ‘나무굶’과 연합‘아띠’의 시화가 보였다. 필체가 굉장히 독특했다. 그 필체는 그 옆
의 필체와 함께 후에 볼 수 있었는데, 그로써 ‘아띠’의 일원들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을 적어오려 했는데,
필요 없을 것 같아 쓰지 안았다. 지금 쓰려고 하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여러 학교의 소개를 보던 도중 ‘계산 여고’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가장 성의있고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번이 1회라
know-how가 없는 문예부들은 전지에 대충 썼다. 다음엔 좀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하나 확인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다. 그 옆에 화투를 붙이고 그와 같은 그림을 그린 ‘여름’이나 시가 가장 성의 없어 보였다. 일상적인 주제, 모방한 그
림, 날려 쓴 글씨가 그렇게 느끼도록 했다. 하지만 어쩌랴,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을......
이제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거나 한 곳에 모여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보드에 붙은 다과(초코
파이, 초콜릿, 사탕), 돈들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방문의 표시, 축하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해해 주었다. 이
윽고 ‘나무굶’의 권기우 작품이 보였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다. 방명록을 써주기 위해 시를 몇 번이나 읽었다. 평범
한 주제이기는 하나 작가 특유의 문체가 드러나 있었다. 교지에 실렸던 ‘아침’처럼 그는 평범한 주제에서 자신의 감정
을 드러내는 듯 하다. 진열된 작품의 주제는 ‘책상’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수한 성적
의 그는 문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림도 시와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었다. 난 간단하게 방명록을 써주었다. 옆
에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인사할까 했으나 그냥 지나쳤다. 그도 나를 모른 척 한 것 같다.
그 뒤쪽으로 보이는 2개의 보드가 보고싶어졌다. 그런데, ‘이게 왠 낙서냐?’할 정도의 시(?, 시가 아닌 것 같았다)가
적혀있는 것이었다. 시제는 ‘안중근’이었는데, 시인은 ‘윤’가(家)였다.(이름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 글을 읽고 문예
부로서 진열하는 사람이라면 아까의 ‘여름’처럼 최소한의 감정이 들어가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아 비난의 눈
으로 쳐다보았다. 그 옆의 글도 같은 이가 쓴 글인데 맘에 들지 않았다.
어느덧 30분이 지났다. 막 가려는데 선인고의 소개글은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찾지 못한것인지, 아님
없는 것인지..... 작품도 권기우와 강내현의 것 밖에 없었다. 좀 아쉬웠지만 그렇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지하에서 세상을 보다.
역 안으로 들어오는 나의 모습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 누구도 모르면서 정액권을 들고
혼자 왔느뇨?
저런 바보자식! 할 일 되게 없구나.  
그렇다. 난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여기 왔다.

그저 몇 발자국 몇 글자를 남기려,
1시간을 할애하며 이곳에 왔다.  

그 많은 작품들도
몇 개 기억 못하고.......
지하에서 세상을
지하에서 세상을
나는 지하에서 세상을 보았다.



번  호 : 7
제  목 : 2k.10.20  아프리카 목조각품 관람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9:00
내  용 : 아프리카 목조각품 관람  

서울랜드 입구 쪽에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목조각품이 무료로 전시되고 있었다. 그래서 서슴없이 발
을 내딛었다. ‘태즈매니아’섬에서 본듯한 조각상과 고대 유물을 다루는 만화에서 나온 것 같은 여러 조
각상들이 있었다. 그것은 돌이나 플라스틱 따위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소개에는 목각작품
이라고 쓰여져 있어 좀 의아했다. 대부분은 사람의 두상(頭像)과 흉상(胸像)이었고 생필품도 간간이 보
였다. 그 중에서 베개는 상당히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지도자는 절대로 머리
를 땅에 대지 않았다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그 베개는 실제로 안락함보다는 권위의식이 돋보이는 것 같
았다.
그 미지의, 오지의 사람들 중 마사이족은 여자들이 얼굴에 치장을 하고, 때론 매우 징그럽게 혹사하는
것 같다. TV에서 본적이 있는데, ‘역시 아랫입술에 둥근 모양의 돌을 넣는 것은 엽기적(獵奇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실제로 가져온 것 같은
북은 마사이족들이 그것을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도록 해주었다. 출구로 빠져 나오면서 모자이크
벽화를 더 보려 했으나 너무 잔인하여 눈을 돌리고 말았다. 팜플렛 등이 있으면 가져오려고 했는데, 그
것에 대한 것은 없었다. 세계가 좁아지고 있는 이때, 오지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겠
다.



번  호 : 8
제  목 : 2000. 10. 16. 오페라 LA TRAVIATA(춘희)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10:00
내  용 : 10월 16일 공연 오페라
LA TRAVIATA(춘희) 감상문

10월 16일 오페라 LA TRAVIATA(춘희)를 관람하기 위해 자율학습을 포기하였다. 식당에서 석식(夕食)을 한 뒤, 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오락실에 들어갔다. 할 것을 찾던 중 꼬마 애랑 시합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얍삽함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다른 게임을 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친구들이 돈이 남았다며, 그 꼬마 애와 게임을 하자고 했다. 이번에도 얍삽함을 보였지만, 기술에는 못 당하나 보다. 우린 승리하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버스가 도착했다. 1시간 정도를 달려 ‘신세계 백화점’에서 하차(下車)했다. 지금 ‘인천종합문화예술 회관’은 ‘국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LOBBY로 들어갔다. 좌석권은 C석이었으므로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불이 꺼지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막이 오르고 불이 켜지자 단원들이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옆의 자막이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행동을 보고, 줄거리를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연극보다 더 흥미로웠다. 주변에서는 경험이 적은 이들이 연실 박수를 쳐댔다. 막과 막 사이에 장과 장 사이에 치는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1막이 끝나고 2막이 올랐다. 우리들은 2막이 시작하기 전에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관객이 적었던 모양이다. 2막 1장, 무대 배경이 바뀌고 주인공 중심의 연기로 매우 흥이 났다. 오페라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직접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이들과 노래하는 이들의 조화는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2막 2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구성을 완전히 모르는 나로서는 3막이 시작된 줄 알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자막이 실제와 일치하지 않아 내용을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이번 장은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를 모욕하는 장면이었다.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그를 말리는 장면도 실감났고, 그 파티에 등장하여 흥을 돋우는 집시와 투우사들도 매우 잘 했다.
제 3 막, 막이 오르자 흰 침대에 비올레타가 누워있고, 안니나가 졸고 있었다. 의사가 들어오고, 진찰하자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알프레도’가 들어오고, 비올레타와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다. ‘알프레도’의 아버지도 그들을 축복하지만, 그녀는 ‘알프레도’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나의 앞좌석에 앉은 사람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으며, 다른 이들은 박수를 멈추는 것을 잊은 듯 하였다. 참으로 슬픈 사랑이야기 인 것이다. 다시 막이 오르고, 주연급 배우들이 나와 인사를 하였다. 머리가 하얀 지휘자 님을 비롯하여 ‘제르몽’역을 맡은 사람은 많은 갈채를 받았다.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밤은 늦었지만 돌아오는 얼굴들은 기쁨으로 환하게 빛났다. 집에서 INTERNET을 통해, 줄거리를 확인하면서 그 때의 감동을 되살려 보았다.




번  호 : 9
제  목 : 2000. 10. 31. 예*인 실내악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11:00
내  용 : 10월 31일 예*인 실내악 감상문

선인고 박영식

10월 31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 문의전화를 걸어 공연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표가 매진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 망설이다가 밥을 먹고, 허둥지둥 출발하였다.
버스를 늦게 타서 늦을까봐 걱정이 되었는데, 7시 정각에 도착하였다. 소공연장 입구에서 동일한 교복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있어서, 가보니, 표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들어보는 ‘예*인 실내악’이라고 적혀있었다. 대공연장에도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지만, 우선은 소공연 장에서 공연되는 것을 관람하기로 했다.
안에는 빈 좌석이 많았으며, 연령층도 어른인 것 같았다. 연주자들의 입장이 늦어지는 것 같아 팜플렛(pamphlet)을 펴보았다. 독일 대학을 비롯해 서울음대를 졸업한 사람들로 구성된 굉장히 실력있는 단체였다. Horn, Flute, Oboe, Klarinett, Bassoon의 5가지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악단(樂團)이다. 굉장히 생소했지만 연주곡은 독일어로 씌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주자들이 입장하고 그때부터, 또 불필요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쉬는 동안, 빠르기가 바뀌는 동안은 치지 않는 것인데, 무지(無知)한 탓으로 연실 손을 놀려댔다. 중간에 왔다갔다하는 무리들 때문에 장내는 좀 산만(散漫)하였고, 장난을 치거나, 떠들어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휴식이 끝난 뒤에 제일 앞좌석으로 내려갔다. 귻에서는 그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고, 호른과 바순의 굵은 음과 클라리넷과 오보에의 은은한 음은 눈을 감기게 하였다.
마지막 곡이 연주될 때는, 경쾌한 리듬이 이어져 나갔다. 서로의 호흡을 의식하면서 조화된 연주는 시간을 들여 연주횡에 참석한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연주 중간에 발견한 것인데, 바순과 오보에에는 공기주입구에 무엇인가를 껴서 사용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였다. 공부에만 구속되어 문화생활을 하지 못한 나에게 소중한 기회가 주어져 음악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제 이론도 조금씩 살펴보면서 악기에 대한 정보를 비롯해 관람태도도 습득(習得)해야 하겠다.




번  호 : 10
제  목 : 2000. 11. 4. eighth blackbird 초청연주회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12:00
내  용 : 11월 4일 eighth blackbird 초청연주회 감상문

11월 4일, 제 11회 이건 음악회 eighth blackbird 초청연주회를 관람하였다. 시작하기 전에 어떤 분이 나오셔서 eighth blackbird의 소개와 연주할 곡들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이 음악회는 ‘이건산업’과 관련된 계열사나 다른 사업자들을 초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설명이 끝나고 순서대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애국가로 멜로디를 연주하다가 편곡된 것으로 이어졌다. 굉장히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Variations’였는데, 플릇,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 타악기(명칭 모름)를 이용해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을 구사했다. 그것이 현대음악이라는 것을 직시(直視)했으며, 현악기, 금관악기 등으로 연주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이윽고, 아리랑이 흘러나왔고, 애국가처럼 변주가 있었다. ‘병사의 이야기’, 이것은 theme가 있는, 그 theme에 따라 음악을 만든 것 같았다. 줄거리와 함께 들으니 지루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피콜로가 사용됐을 것이다.
휴식시간, 1층으로 내려갔다. 설명해 주시는 분이 나와서 ‘고래의 노래’를 묘사하시는데, 듣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약간의 장난기 섞인 입담으로 관중들의 웃음을 유발하였다.
짙푸른 조명이 비추고, 얼굴에 눈가리개를 쓰고 나온 3명의 연주자는 플릇을 시작으로 자극적인 소리를 냈다. 플릇 연주자(몰리 알리사 바쓰)는 굉음을 내며 열정적으로 불었다. 첼로 연주자(니콜라스 포티노스)는 현을 뜯으며 아주 가는 음을 냈다. 피아노 연주자(리사 카플란)은 건반의 떨림을 이용하여 울림소리를 냈다. 분위기는 상당히 어둡고 신비로웠다. 한참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고요해졌다. 20초 정도에 누군가의 박수소리가 들렸고, 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제야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약간은 황당했다. 조명이 밝아지고, 한국 음악 ‘님이 오시는지’를 연주했다. ‘고래의 노래’보다는 훨씬 부드러웠다.
드디어 이 연주회의 high light! ‘Thirteen ways’가 시작되었다. 한 곡조씩 읊조리며, 그에 맞는 음악을 연주했다. 빠른 연주와 느린 연주를 번갈아 가며, 악기를 번갈아 가며, 청신경을 자극했다. 어디서 박수를 쳐야 하는지를 궁금하게 하는 긴장감속에 연주! 이번에는 잘 친 것 같았다. ‘encore song’을 듣기 위해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두 명이 나와서(플릇과 첼로로 기억된다) 보리밭을 연주하였다.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후, 6명은 모두 나와 아주 신나는 곡을 연주해 주었다. 피아노 연주자는 박수를 유도하였고, 타악기 연주자(메튜 듀발)은 드럼 비슷한 악기를 다루었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일어나 무대 문을 나섰다. 현관에서 sign회가 있다고 하여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하고자하며, 몇 마디 건넬 수도 있었으나, 관두기로 하였다.
지난 연주에서(예*인 실내악)도 플릇은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는데, 이번에도 듣게 되어 그것이 주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음악인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활기를 불어넣는다. 때론 가난한 이들을 돕기도 한다. 이들 음악인들을 본받아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으면 한다.




번  호 : 11
제  목 : 2001. 2.3~2.4 별마루! ........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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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1-02-11 오후 3:13:00
내  용 : 별마루! 천체를, 아니 내가 보던 것을 확대해 보다

약대(若大) 박영식(朴映植)

별마루? 천문(天文)이라. 그래 가보자. 토요일 제물포에서 일과를 마치고 부평에서 숙제를 한 후 지하철을 탔다. 인천터미널 역. 신세계백화점과 바로 통한다. 아이쇼핑(eye shoping)을 조금 한 후, 망원경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음, 뭐지? 우선 나는 자신의 별자리를 통한 신화와 모양에 대해 듣고 별자리파트에서 오리온자리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망원경을 통해 태양관측을 하려 했으나 건물에 가려 볼 수 없었다. 천체사진들을 보며, 약간의 담화를 나누고 달 사진을 얻기 위해 다른 것도 보려 했으나, 사진이 없다고 해서,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그들은 고등학생티를 많이 냈고, 그것을 핑계로 소홀히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행사 자체를 주관, 개최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난 버스를 타고 석바위로 갔다.
이튿날, 부모님과 신세계백화점으로 갔다. 난 구두를 샀다. 어 탈(mask)전시? 국내와 국외의 탈이 전시되고 있었다. 한바퀴 돌고 별마루 행사현장으로 갔다. 음, 이번에는 태양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실망. 흑점이라며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망원경 렌즈의 이물(異物)질 같았다. 어쨌든 다른데를 들려야 했으므로, 1시간 정도 비웠다. 해가 지고 달이 보였다. 난 일을 보고 와서 아스트로카(astrocar, 국내에 2대 박에 없다는)를 보기 위해 줄을 섰다. 그 전에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했다. ‘배율이 낮군..’ 좋아 내 차례. 아스트로카에 희망찬 발걸음으로 올랐다. "음? 달랑 망원경 1대?" 접안렌즈에 눈을 가까이 가져갔다. 크레이터와 달의 바다가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육안으로도 언뜻 보이는 것이다. 실망한 표정으로 담당자를 바라보자. “희미하게 보이지?” 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발이 절로 차 밖으로 향했다. 난 달 사진이라도 받기 위해 폴리네타리움으로 가서 말을 들었다. 다 아는 얘기들. 스티커를 받고 본부석으로 갔다. 난 1장을 붙이지 못했지만(스티커는 모두 6장) 사진을 주었다. “음, 뭐지? 겨우 줌 효과를 이용해서 확대했군.” 난 이 행사에서 비싼 망원경을 구경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 이렇게 실망일 줄이야. 난 또 다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로 갔다.




번  호 : 12
제  목 : 2001. 2. 4 제 26회 독수리 사진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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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1-02-11 오후 3:13:00
내  용 : 제 26회 독수리 사진전 관람 후

약대(若大) 박영식(朴映植)

2월 3일 한서신용금에 전화를 했다. ‘몇 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까?’ “관계자는 식사하러 가서 모릅니다.” 난 우선 헌혈의집과 신세계백화점을 들렸다. 다시 문의를 했다. “7시까지입니다.” 5시쯤 석바위에 도착했다. 한서신용금고를 찾는데 애를 좀 먹었지만 방향감각에 신용을 둬서 많이 헤매진 않았다. 짠, 입실. 엇.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막 화가 치밀었다. 젠장! 난 어쩔 수 없이 주안역으로 갔다.
2월 4일 신세계백화점에서 석바위로 가는 35번을 타고 인고에서 내렸다. ‘그래 100회 졸업 축하한다.’ 씁쓸했다. 어제 가 봤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니, 또!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절대후문이용’ ‘후문?’난 표지를 보고 후문을 찾았다. ‘설마, 어제도 열려 있었을까?’ 내 앞에는 선화여중 2명이 있었다.(방명록에 적힌글을 우연히 보았다.) 난 오른쪽으로 천천히 관람하였다. 사진부로 보이는 재학생이 사이다를 갖다 주었다. 이제 왼쪽으로 넘어가 전문적으로 제작된 액자를 둘러본 뒤, 동문으로 보이는 사진작가(아마도)님께 인사를 하고 작품설명을 들었다. 매우 친절하셨다. ‘가수 4명’을 촬영하셨다고 하셨다. 설명을 들으며 다시 관람하니 더 재미있었다. 아주 귀한 백두산 사진, 결혼을 앞 둔 신부의 사진, 잡지의 표지모델, 사막의 야자수, 공중에 부유(浮游, 벽면에 막대를 이어 물체를 뜬것처럼 보이게 함.)한 달걀과 초, 시골의 풍경.... 정말 멋졌다. 그래도 시골의 사진은 정서적 안정을 주는 유일한, 어떤 사진보다도 정감있는 사진이었다. 방명록에 인상 깊은 사진들을 적고, 인사를 드린 후 박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 숨’ 또 경솔한 행동을 했으며 못 볼 뻔했다. 난 다시 주안역으로 향하며 전에 봤던 ‘퓰리처 사진전’을 회상해 보았다.




번  호 : 13
제  목 : 2001. 2. 1.& 2001. 2. 10 교회 체험.....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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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1-02-11 오후 3:15:00
내  용 : 교회 체험. 중창단과 찬양의 밤.

약대(若大) 박영식(朴映植)

브니엘(peniel), 하느님의 음성이란다. 난 점심을 먹고 1반 애들을 따라 갔다. 시작 30분전에 가서 팜플렛을 들춰보고 있었다. 목사님이 나오시더니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시작되었다. 예배. ‘음, 미사와 다르군. 글쎄 나의 신앙은?’ 여러 생각을 한 뒤. 계속되는 스테이지를 보았다. 윗대선배, 후배를 차례로 보고, 단원소개. 차력, 율동이 좀 어색했다. 엘피스(elphis). 좋군. 마지막 스테이지. 울고불고. 그래 잘 했다. 마직막의 합창. 역시 어떤 발표회든 함께가 가장 멋지다. 난 방명록에 글을 남긴 뒤 영진이와 집으로 향했다.

울트라 성지야. 교회의 축제. 성당의 축제와 다를 것이다. 어떻게 찬양을 하며, 활동을 할까? 성당 행사만 보아오던 나에게는 이번 경험이 참으로 중요할 것 같았다. 늦게 도착하여,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보지 못했다. Opening 의 ''스킷드라마''는 절대적 신앙관련이었다. 다음 말씀, 축도가 이어졌다. 이들은 참 잘 구성했다. 늦게 오는 이들에게도 말씀과, 축도를 볼 수 있도록. 그런데 찬양 후, 착각으로 빠졌다. 사회자가 "''제 1회 찬양의 밤, 울트라성지야''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여태까지 뭐였지? 어쨌든 30분밖에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6시 30분에 성당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찬양이나 중창, 듀엣은 성당이랑 다를 것이 없었다. 수화! 성가로 하더군. 성당은? 대중가요. 수화는 2곡을 한다는데, 1곡이 끝난 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음 그래 어떻던가? 찬양이다. 성당의 행사는 찬양이 비교적 적다. 그리고 신부님이 나오시지 않기 때문에 행사를 통한 전도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어차피 좋지 않은 인상이지 않는가? 신부님과 학생들이 연계된 행사 진행과 준비로 전도는 물론이고, 준비한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게 진정한 목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신부님이 진정 원한는 행사는 무엇인가? 우리 성당은 항상 그 점을 간과해 온 것 같다. 했던 대로, 그렇게. 항상 그렇게 해 온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으로 피곤한 나는 미사 강론중에 졸았었다. 난 나의 신앙을 반성해 보고 있다.




번  호 : 14
제  목 : 2001. 2. 20 명동기행기(明洞紀行記)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20 오후 10:23:00
내  용 : <p align=center>명동기행기(明洞紀行記)
<p align=right>若大 朴映植</p>
집에서 마지막 확인 전화(관람가능 시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눈이 자꾸 가렵고 침침(沈沈)하기에 안과(眼科)에 들렸더니, 알레르기(독일어Allergie)라 하셨다. 처방을 받고, 철도(鐵道)로 25정거장을 서서 이동하게되었다. 인천 1호선 4정거장, 1호선 19정거장, 4호선 2정거장을 가서 ‘명동역’에 하차(下車)한 것이다.
건물의 높이는 인천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난 직감으로 무작정 걸었다. ‘음, “수도회”가 있는 것을 보니 여기쯤인가 보군.’ 그런데 ‘계화초등학교’라는 문패(門牌)가 있었다. ‘어?’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십자가가 있는 비교적 큰 건물이 보였다. ‘저기군.’ 굉장히 삼엄한 경찰서를 지나 육교를 건너 PBC(평화방송) 건물을 지나갔다. ‘이런, 교회잖아!’ 난 문의(問議)할 행인을 찾았다. 일단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질문했다. ‘저쪽에 있습니다.’(물론 자세히 설명했지만 그냥 이쯤 써둔다) 난 다시 역행(逆行)했다.
‘수도회’건물과 붙어있을 것이라고 직감했지만 도저히 입구를 찾을 수 없어서 상권(商圈)으로 진입(進入)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식당만이 즐비할 뿐 패션쇼를 하는 이들은 없었다.(물론 다 돌아보지 않아 그럴수도 있다.) ‘수도회’건물 쪽으로 가면 갈수록 뒷골목이라 무서워졌다. ‘어?’경찰들이 ‘계성여고’를 막고 서 있었다. 좌회전하여 우측을 보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가톨릭 회관’이 보였다. ‘찾았다!’ 가까이 가보니 경찰들이 늘어서 있고,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폐지를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난 자연스럽게 그러려니 했지만,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우선, 명동성당을 멀리서 훑어보고 가톨릭회관으로 들어갔다.
1층 평화화랑의 ‘주보사랑전’! 안내인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차례대로 주보 제작과정을 보고 나서, 역대 주보를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교회주보와 비슷한 형태였다. 특이한 점은 광고가 삽입되었다는 것이다. 타종교와 세계의 주보를 보며 어떤 것이 좋다는 평가는 할 수 없었다. 불교의 주보는 불교사보(佛敎寺報)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주보삽화(성화, 聖畵)를 관람하였다. 지역 주보도 있었는데, 인천교구주보는 2000. 12. 31일 판이 전시되어 있었다. 도서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서울주보’라는 모음집말고는 관심이 가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어 ‘관람느낌’을 기록하고 나가려는데, 달력과 포스터를 주셨다. 팜플렛이 없어 아쉬웠지만 포스터로 대치했다.
가톨릭회관에서 나와 명동大성당으로 향했다. 생각만큼 크지는 않았다. 위치도(位置圖)를 보고 대성당안으로 들어갔다. 대성당의 문은 4개인 것 같았다. 좌측으로 가서 앞으로 가니, 왼쪽 중앙에 ‘79위 복자회’액자가 있었다. 필요한 내용들을 간략히 기입하고 있는데, “저기 5000원 짜리 있어요?” “네” 아무 생각없이 5000원을 내주었다. “저, 가져도 되죠?” ‘어, 당했다.’ 순간 “왜요?” “밥도 못 먹고, 배고파서요.” “……”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30대 중반으로 보이고 구걸할꺼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외모와 옷차림이었다. 난 속으로 그냥 기도했다.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 액자 좌측에는 이승훈베드로님의 영정(影幀)이, 우측에는 김대건 안드레아신부님의 영정(影幀)이 있었다. 성당의자에 앉아 1분정도 기도했다. 아까 그 사람에 대해서도... 우측으로 가니 중앙에 ‘명례방 초기 천주교 집회’액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우측에는 김범우 토마스님, 좌측에는 이벽 요한님의 영정(影幀)이 있었다. 제대(祭臺)는 답동성당과 비슷하게 첨탑(尖塔)모양의 집과 여러 초로 되어있었다.
난 중간의 문으로 나왔다. 성수대(聖水臺)가 있었다. 각 문마다 배치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만나는 방’과 ‘계성여고’가 보였다. 더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에 ‘성모무염시태’가 있었고, 그 좌측에는 무인 초판매대, 우측에는 봉헌함이 있었다. 더 안으로 들어가자 ‘수도회’, ‘계성초등학교’가 있었다. 난 이런 학교는 별로 다니고 싶지도 내 자식을 보내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잦은 농성과 아까 지나왔던 살벌한 경찰서로 주위 환경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인천 도화동천주교회와 연결되어있는 박문여고는 최소한 농성과 경찰들로 인한 저해요소가 없는 듯 하다.
‘만나는 방’옆에 있는 ‘소성당’으로 들어가 보려 했으나, 왠지 분위기가 안 좋아 나가려고 했다.(성가 부르는 소리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대교구청이 보고 싶어졌다. 관리인이 묻길래, “그냥 둘러보려고요.” 하도 수상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내가 성당에서 나올 때, ‘나의 돈을 받은 이’가 서성거리고 걸인같은 할아버지가 다른 이에게 “1000원 있소?”그랬다. 난 모든 이들을 무시하였다. ‘국가 보안법폐지’를 외치는 이들 ‘이상한’전단지를 배포하는 이들, 검은 옷을 입은 경찰까지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빠른 걸음으로 ‘명동역’으로 가고 있을 때, 반짝이는 물체! ‘앗, 조춘이다’ 진짜였다. 그가 지나가고 웃음이 났고, 발걸음이 쳐졌다. 그러나 ‘계성여고’앞의 경찰을 보고 다시 서둘렀다.
명동역에 온 것과 마찬가지로 부평역까지 가서, 부평구청역에서 내린 뒤, 도서관으로 갔다. 전철에서 앉지 못해 다리가 무지 아펐다. 열람실(閱覽室)에는 ‘차영식’이 있었다. 얼마 후, ‘배진’도 왔다. 난 모의고사 ‘수탐2’를 풀고 배진과 함께 나왔다. 난 마을버스를 타러 갔는데, 대우자동차 시위사태로 집중(集中)된 경찰들이 있었다. 이젠 그 검은 옷이 지겨워졌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빨리 모든 일이 해결되어, 구걸하는 이들, 농성하는 이들, 시위하는 이들이 없어지길 바랬다.




번  호 : 15
제  목 : 대학 첫 여행 OT!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http://pys.i21c.net
시  간 : 2002-03-11 오후 7:31:14
내  용 :  대학에 입학하여 첫 여행을 가게 되었다. 이름은 흔할지 모르나, 누구나 새내기라면, 첫 OT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 할것이다. 나도 대학 생활의 첫 행사인 이 OT에 대한 엄청난 흥분으로 걱정도 있었지만, 기대감에 가득차 있었다.
당일, 일찍 나가서 기다렸지만, 추운데서, 인솔자(집행부라 하더군)들이 늦게 나올줄은 몰랐다. 출발이 매우 지연되었다. 실질적으로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행사에 미흡한 탓이 많아 항상 지연되기 일쑤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일단 출발.. 3시쯤 휴게소에서 찬밥을 먹고,. 그렇게 숙소에 도착...
간단한 입학식(입소식이겠지...)을 하고, 좀 쉬는가 싶더니, 조별로 구호 등을 준비하래나.... 어쨌든, 이런 단체활동이 OT인줄 알았다면, 안 갔지.....
일단, 첫날 행사는 그렇게 끝내고, 술자리... 술도 술이지만, 먹을 것이 너무 없어, 배고픔을 달래느라 힘들었다. 다음날, 일찍일어나야 했고, 체조... 학부에서 준비한 행사들을,,, 참으로 힘겹게 마치고, 총학생회에서 마련한 행사에 참여하고... 매우 힘들면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이끌렸다. 밤.... 술이나 먹고, 사고 나서 그냥 자버렸다...
음, 대학 첫 여행치고는 실망스러웠지만.. 이런 것이 OT라는 생각에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이 OT로 대학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번  호 : 16
제  목 : 2002년 4월 18일 여의도유기(汝矣島游記)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http://pys.i21c.net
시  간 : 2002-04-18 오후 10:13:47
내  용 :  수학시험을 치르고, 시험장을 빠져 나왔다.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사물함에서 교재를 꺼내들고, 고민을 했다. 동아리방에 갈까.... 시험전에 시험장에서 우철선배를 만났다. 그 때,
"너 왜 동방 안와?"
"오늘 갈꺼예요."
라고 말도 했었고, 어제 안 갔기 때문에 오늘 가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생회관에 가서, 일단 교통카드 충전을 했다. 우철 선배가 동방에 있을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그제서야 학생회관으로 들어서고 있어서, 같이 올라갔다.
동방에 올라가니, 선배 2분이 눈을 감고 계셔서 조용히 나와, 전산원 농구장에서 잠깐의 농구를 했다. 미나가 기타를 들고 와서 잠시 구경한 뒤, 같이 원형 잔디로 갔다. 우희를 기다리기 위해서 였다. 그곳에서 섬유공과 선배의 리서치를 도와주고 대건선배의 기타연주를 들었다. 얼마후, 우희가 나왔지만, 소풍에 동참하지 못 한다고 했다.
일행은(우철, 선영, 영식, 미나) 한솥에서 도시락을 구입해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으로 향했다. 처음 가봐서 상당히 설레였다. 버스에서 게임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했다.
생각보다 빨리, 한강에 도착했다. 초등학생들이 있을 뿐, 공원은 한가했다. 연 날리는 것을 구경하면서 도시락을 먹었다. 잔디는 푸르고, 날씨도 매우 좋았다.
미나의 반주로 노래를 부르다가 자호선배가 도착했다. 자호선배가 가져온 글러브와 테니스공을 이용해 놀다가, 난 연을 날려보았다. 그렇게 멀리날린 것은 처음이었다. 연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이윽고, 투수, 타자, 포수만 있는 야구가 시작되었고, 도중에 효선선배가 도착했다. 이제 외야수도 있고, 1루수도 갖춘 제법 야구 다운 야구를 했다. 게다가 배트도 pet병을 이용했다. 손이 아팠기 때문이다. 얼마를 그렇게 놀다가, 혼자있는 미나가 춥다고 해서, 정리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효선선배와 선영선배, 우철선배가 계속 공을 주고받았다.
6시가 넘어가고, 효선선배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어디론가 갔다. 나는 중간쯤 와서야 63빌딩으로 가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농구장이 좋은 아파트를 지나, 63빌딩으로 들어갔다. 역시 처음 이었다. 그러나 놀랄만한 것을 없었다. 1층만 봤을때는 그냥 상점이었다. 식당가로 들어가,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치킨조각을 기다렸다. 치킨은 매콤한 맛으로 취향에 안 맞았지만, 그냥 먹어버렸다. 콜라는 coca cola.....
63빌딩을 나와, 5호선 여의나루역으로 갔다. 매우 매우 깊었다. 한강탓으로 그렇다고 씌여있었다.. 어쨌든, 모 기업의 멋진 광고가 즐비했다. 난 그렇게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을 구경하고, 신길에서 인천행 전철을 타고 귀가 했다.


번  호 : 17
제  목 : 2002년 4월 5일~7일 가대연 새내기 한마당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http://pys.i21c.net
시  간 : 2002-04-20 오후 5:58:01
내  용 :  4월 5일 식목일 날이 밝았다. 모임 시간이 1시라 여유가 있었다. 천천히 상경할 준비를 한 뒤, 편한 옷차림으로 지하철을 탔다. 1시간을 꽤 넘어 명동역에 도착했다. 명동의 거리는 비교적 한적했다.
가톨릭회관 앞마당에 들어서니, 이미 도착한 이들이 보였다. 아는 사람은 없었다. 10분정도 기다리다가, 조를 확인하고, 효선누나가 오기를 기다렸다. 동훈 선배가 자호형과 미나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빛나는 눈부신 받으며, 누군가를 계속 기다렸다. 어느정도 사람이 모이고, 숭실 프꼬인도 다 모였다. 접수를 하고, T-shirt와 책을 받았다. 일정을 보고, 조원들과 모여 담소를 나눴다.
4조인 나는 효선누나와 함께 조에 속해 정말 기뻤다.(+.+!) 우리조는 버스에 제일먼저 탑승해 뒷자리에 안자, 각자 소개하면서 얼굴을 익혔다. 조장님이 조별 모임시간에 하게될 조이름을 미리 생각하자고 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조들도 버스에 탔고,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차가 달리는 중에 조이름을 생각해 보았으나, 역시 특별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침체된 분위기 전환을 위해 게임을 하며,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차안에서의 전례 후, 김밥이 제공됬고, 음료수와 함께 먹었다.
우리조는 앞에 앉은 사람들이 자고 있었음에도, 상당히 시끄럽게 놀면서 갔다. 처음부터 너무 재미있었다. 이윽고, 덕평에 도착했다. 우리조는 식당위에 있는 방 하나를 배정받고, 조장님을 주축으로 조이름, 조구호, 조가를 정했다. 내가 MT와서 그렇게 많이 연습해 본 적은 없었다.(사실 MT를 많이 안 갔다.) 몸이 굳어있는 나로서는 계속 어설픈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잠시, 저녁밥을 먹으러 내려갔다. 음식은 맛이 있었고, 배식하는 분들도 참 친절했다. 식사후, 밖에서 여러가지 놀이를 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율동도 했던 것 같다.
그 후, 우린 모두 강당에 모였다. 의장님의 말씀이 있은 후, PROJECTOR에서 나오는 가대연에 대한 소개를 보았다. 가대연의 문화... 아직 잘 알지는 못하지만, 비교적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전례 프로그램도 마치고, 숙소로 모였다. 그곳에서 새로만난 선배들과 담화를 나누고, 얼마간 윗층에서 놀았다. 오랜만에 베개싸움도 하고, 몸에 땀이 날 정도였다. 자봉단의 제재로 다시 숙소로 내려와 잠을 청했다. 첫날, 난 같은 방의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순식간에 잠들었다.
다음날 6시 40분, 7시가 기상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일어나 머리를 감았다. 7시 누군가가 들어와 잠든 이들을 깨웠다. 강당으로 가, 율동을 몇 개 하고, 아침을 먹었다. 비가 내려 땅을 적셨다.
아침전례를 하고, 신문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조는 잡지 표지 형태로 제작했다. 발표는 하지 못했지만, 유익한시간이었다. 발표자들의 아이디어가 정말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그 사진을 다시 봤는데, 역시 재미있다.
점심식사 후, 공동체 놀이가 진행됬다. 우리조의 첫번째 post에서는 율동을 배웠다.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 더 재미 있었다. 다음으로 방석퀴즈 하는 곳을 갔다. TV를 잘 안 본 탓에 분위기를 알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곧 적응하고, 정말 망가져버렸다. 문제를 잘 맞ㅊㄴ 우리조는 상대조에게 너무 미안했다. 윤종신을 닮은 선배의 팔굽혀펴기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퀴즈 속에서 여러 사실을 배우고, 밖으로 나가면서 다들 좀 전의 일이 힘들었다는 것을 토로하는 듯 했다.
이번에는 말을 하지 않고, 문장을 설명하는 post였다. 난 잘 할수 있을 것 같아서, 설명자를 지원했는데, 문장이 많이 어려웠다. 매우 고전하다가, 진행자의 부연설명으로 5문제를 맞추게 했다. 상대편 조는 문제가 비교적 쉬웠고, 설명자도 매우 잘해, 6문제나 맞췄다. 그 때도 비는 계속 내렸고, 아쉬움을 남겼다.
네번째 post에서는 선을 밟지 않고, 자리를 옮기는 게임을 했다. 여러시도로 노하우를 익히 우리조는 두 번의 경기 모두 이겼다. 여인들이 내 앞을 지날때의 설레임은 아직도 잊을수 없다.
우린 밖으로 나와 강당으로 들어갔다. 고구마와 음료수를 먹고, 잠시 쉬었다. 이번엔 피구! 선배가 후배를 보호해 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빨리 끝날줄 알았는데, 선배들의 후배사랑으로(?) 정말 오래갔다. 그래서 1쌍이 남을 때까지 하는 것으로 정해서, 수적으로 유리한 우리편이 승리했다.
우리조는 마지막 post로 이동했는데, 끝나지 않은 조가 있어서, 조방으로 들어와 잠시 쉬었다. 얼마후 자봉단 선배가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갔다. 돌다리의 첫번재 돌을 의미하는 노둣돌. 그 이름을 가진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아, 열심히 했더니, 우리 조가 1등으로 들어갔다. 조금 싱거운 감이 있었지만, 기뻤다. 다음은, 발과 엉덩이를 이용한 달리기였다. 나도 참가 했는데, 매우 빠른 상대편에게 밀려 3등으로 들어갔다. 엉덩이가 뜨거워서 참 난감 했었다.
공동체 놀이가 끝나고, 저녁을 먹었다. 그 때부터 인지는 몰라도, 퇴식시 식판을 몰아주기로 했다. 정하는 과정이 너무 시끄러워 마음에 안 들었다. 어쨌든 식판을 물린 뒤, 비가 그친 밖에서 돌아다녔다.
이제 새내기 배움터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이다. 난 율동을 배우기로 했다. 한결같이였다. 효선누나와 상철선배에게 잘 배울 수 있었다.
문화제. 특정한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다 기억나진 않고, 촛불공연후, 내가 속한 율동팀이 나가게 되었다. 사회자가 나에게 마이크를 넘겨 줘서 약간의 소개와 느낌을 말했다. 음악이 나오고, 난 배운대로 율동을 했다. 그런데 관중이 자꾸 이름을 불러서 음악이 잘 안들렸다. 음악만 잘 들렸어도 안 틀릴수 있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문화패 공연. 내가 본 어떤 예술제 보다도 뛰어났다. 역시 장산곶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절도있는 동작.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다.
이젠, 물기가 약간 남아있지만, 그래도 뛸 만한 운동장으로 나갔다. 대동놀이.... 대학들어와 세번째 맞는 것이다. 그런데, 더 특별했던 것은, 청어엮기와 헹가레가 있었다는 것이다. 청어엮기는 처음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마이크를 잡은 자봉단의 목소리가 얄궂기는 했으나 재미있었다.
뒤풀이. 공동체 놀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모카 케잌을 받은 우리조는 화려하게 시작했다. 그리고 자봉단 방에도 가서 약간의 퍼포먼스(performance)를 했다.(아시는 분은 기억에 묻어버리시길...)
방에서 처음으로 pet병 소주를 받으며, 안주에 즐거워했다. 그러나 너무 쉽게 잠들어버리는 조원들을 보며, 밖에서 즐기는 이들을 무시한체 나도 자버렸다. 너무 뒤풀이를 싱겁게 만들어 미한했다.
마지막날 아침. 밥을 먹고, 학교별로 모였다. 학교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 이지만, 새로웠다. 자봉단 선배님들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자꾸 소감을 묻는데, 정리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린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갖은 후, 미사를 드리기 위해 강당으로 들어갔다.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었던 강론과, 묵상시간의 슬라이드는 참 좋았다. 미사후, 점심을 먹고, 방을 정리한 후, 버스에 올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다가 서울에 도착했다. 쌀쌀해진 날씨에 옷을 하나 더 걸쳤다. 우리조는 후일을 기약하고, 각 학교별로 모였다. 우리 학교는 chinese restaurant 에서 조촐한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새내기 한마당. 정말로 재미있었다. 가대연의 문화도 어느정도 알았고, 매우 좋다고 느꼈다. 다른 단체에 속했던 것과는 표현할 수 없는 다른 느낌 있었다. 특별히, 놀이를 통해 공동체감을 형성하고, 서로를 희생하는 것을 보았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내년에는 헌내기가 될 테지만, 그래도 올해의 새내기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번  호 : 18
제  목 : 영화-인생은 아름다워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pys.i21c.net
시  간 : 2002-06-01 오전 7:53:53
내  용 :  6월제를 지내는 숭실대에서 동화영화제가 열렸다. 월드컵 개막전과 겹쳐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난 어떤 이유에서 갔었다.
제목에서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동아리 연합 회장님의 설명으로 재미와 감동이란 말에 대충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역시 처음부터 흥미를 끌었다.

주인공의 재치있는 행동과 대담한 언변으로 주위사람들을 포섭하고, 반동세력을 무마시킨다. 그러나 그는 유태인으로 독일인들에게 괄시를 당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열심한 연애(정말 천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성은 영화임을 거부하진 못 했다.)로 결혼에 이르고, 아들까지 갖게 된다.(비약적인 전개가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장모의 방문날, 유태인인 그는 숙부님과 함께 강제 노동을 하러 끌려간다. 그속에서 그는 희망을 잃지 않게 하려고 자식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열차에 오르기 전, 주인공의 아내는 자신도 탑승시켜주길 요구한다. 결국 열차는 잠시 멈췄다가 그녀를 태우고 정말 처참한 곳으로 떠난다.

주인공은 노역소에서 아들을 위해 온갖 거짓말을 하며, 숨겨준다. 숙부님은 가스 샤워로 명을 달리하고, 희망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신체검사일 귀도(주인공)는 지인을 만나게 되고, 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그곳의 아이들과 어울리게 한 뒤, 비밀리에 지인(의사임)과 여러 대화를 나눈다.(답이 오리가 맞나? 왜 확실하게 안 나오지?)

어느날, 전쟁이 종료됬다는 말과 함께, 수용소가 어지러운 틈을 타서, 귀도는 아들을 숨기고, 아내를 찾아 가지만, 독일군에게 적발되어, 사살된다.(반전을 기대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귀도의 거짓말은 현실이 되어 아들에게 전해진다. 아들과 어머니는 재회하며 자막이 올라간다.

감동과 재미. 지나친 우연성이 없지 않아 있지만, 민족에 대한 편견에도 반기를 든다는 여러가지 면을 담고 있다. 오랫만에 본 영화가 무료 관람이 됬다는 것에 대해 참 기분이 이상하다. 어쨌든, 아버지의 사랑은 대단하다. 또 남편으로서의 사랑도.......


번  호 : 19
제  목 : 민중해방열사 박래전 14주기 추모 유월제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amail.com
U R L  : http://pys.i21c.net
시  간 : 2002-06-08 오후 10:14:28
내  용 :                                          유월제를 지내고.

그 때가 화요일 이었을 것이다. 열사 평전 독후감을 공모한다고 하여, 난 비교적 구하기 쉬운 박래전 열사 평전을 읽기로 했다. 그래서 ‘박래전 열사 기념사업회’에 가서 약전 한 권을 받았다. 그래서 제출마감 전날 독후감을 쓰려 했었다. 그러나 동아리 MT로 상황이 안 되었다. 그러나 MT중에 아침시간이 남아 다이어리에 어느 정도 적었고, 그날 편집하려 했는데, 하지 못했다. 다음날 즉, 마감일 쓸까 말까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학과 실습실에 가서 전날 써 놓았던 것을 입력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이 나와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E-MAIL로 제출했다.
그리고 다음날 접수했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29일 날 참석하라는 글과 유월제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5월 29일 선포식.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그날 발표가 있어, 준비하느라 때를 놓쳤기 때문에) 3시경, 원형잔디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난 선포식이 취소된 줄 알았다. 10분정도 지나고, 멜빵바지를 입으신 분이 보였다. 난 내가 참석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쉽지 않았지만, 인사를 하고, 선포식에 참석했다. 총학생회장, 인문대 학생회장, 동연회장님 등의 말씀이 있은 후, 시상이 있었다. 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선포식이 끝나고 6월제 교양학교가 있었는데, 수업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영상자료도 있었다고 하는데, 아쉬웠다. 다음날, 강연회 역시 동아리 행사로 불참했다.
5월 31일 동화영화제가 있었다. 월드컵 개막전이 있었는데, 그냥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래서 과학관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를 관람했다.
6월 4일 추모식이 있었다. 88년 6월 4일에 분신하신 박래전 열사를 기리는 시간이다. 유가족분들과 기념사업회 회장님까지 참석하셔서 상당히 엄숙했다. 그날은 황토의 친구가 옆에 있어, 같이 참석할 수 있었다. 황토의 공연 후, 헌화도 하고, 향도 피우고, 여러 의식을 했다. 그 날은 수업 종료 5분전에 들어갔는데, 출석이 인정되었다.
6월 5일은 학회세미나로 문화제를 보지 못했다. 노랫소리와 사물소리를 멀리서 들었을 뿐이었다.
6월 6일. 모란공원참배. 이것이 가장 중요한 행사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박래전 열사께 직접 간다는 생각에 설레였는지, 일어나 보니, 9시 10분이었다. 학교가 집에서 멀어, 학교까지 가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10시까지 모이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부평에서 황토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학교가 가까워 집이었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학교로 갈까 직접 갈까를 계속 고민해야만 했다. 어쨌든, 신도림에 가서 또 연락을 취했다. 친구는 아직 학교에 도착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모란공원으로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원주 누나에게도 전화를 해봤으나,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난 청량리까지 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4호선이 지나는 동대문역까지 갔다. 다시 전화를 해 보니, 대절한 버스를 이용한다며, 학교로 왔으면 같이 갈 수 있었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 나는 여기까지 온 이상, 직접 가겠다고 말했다.
청량리. 모란공원까지 한 번에 가는 1330번을 타기로 했다. 어디가 정류장인지 몰라서 헤매다가 버스를 발견하고, 지하도로 재빨리 건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경기지역 버스라 버스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어쨌든 요금을 지불하고, 좌석에 앉아, 땀을 식혔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자료집대로라면 도착했어야 하는데, 어딘지 조차 몰랐고, 버스는 심한 정체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더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속 기다리며, 창밖을 보았다. 구리를 거쳐 남양주시로 접어들 무렵, 지나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같이 탄 사람들이 마석역에 간다는 것을 알고, 좀 더 기다렸다. 2시간 정도 경과하여, 간판에 ‘마석’이란 글자가 들어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님께, 마석역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여쭈고, 모란공원에 간다고 말했다. 잠시 후, 마석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다음에서 내가 내렸다. 그곳이 모란공원이었다.
미술관 옆에 공원입구가 보였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버스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무덤쪽으로 올라갔다. 그냥 둘러보고 있었는데, 낯익은 깃발이 보였다. 그쪽으로 가니, ‘당신이 서 있는 곳’이란 글자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친구를 찾았다. 휴~~ 무사히 도착했다. 행사는 지연되고 있었고, 친구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시작된 행사, 여러 사람들의 말씀 후, 헌화, 참배가 이어졌다. 그 후, 도시락을 받아 들고, 그늘에 모여 밥을 먹었다. 아침도 굶은지라, 매우 배가 고팠다. 식사 후, 묘지를 다시 둘러보았다. 박래전 열사 옆의 전태일 열사의 동상. 매우 인상 깊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내려오면서 열사들의 정신을 되새겨 보았다. 공원입구에서 사무국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올 때와는 다르게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됐지만, 다른 사람의 자리가 없을 까봐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편히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열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열사들의 희생정신을 다시 생각해 보며, 금년에 지낸 유월제에 대해 다시 돌아본다.



번  호 : 20
제  목 : 2002 서가대연 여름 농촌 공소 활동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pys.i21c.net
시  간 : 2002-07-12 오후 11:53:32
내  용 :  9시. 단대 동방에 모였다.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짐을 갖고, 명동으로 옮겼다.
접수 및 자료집, 옷을 받고.,,, 차에 올랐다. 석수, 성균, 기용, 동훈 선배님들이 오셨다. 매우 매우 반가웠다.
지훈형의 실수로 필름 1통을 날려버렸다. 명동에서 출발하여, 단국대를 지나갔다. 차량프로그램도 진행되었다.
12시 40분경 여주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1시 15분 다시 출발했다.
4시 구담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5시에 다시 선교리로 떠났다. 6시 20분경 도착했다. 저녁전례 후에 저녁식사를 했다. 10시와 11시 사이에 학생반 애들을 데려다 주었다. 그 과정에서 반딧불을 발견했다. 매우 매우 좋았다. 12시 15분 평가가 시작되어 언제 끝났는지도,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다음날 5시에 일어났다. 오전작업으로 피사리를 나갔다가, 12시 30분에 다시 들어와서, 밥을 먹고, 1시 30분에 출발했다. 계속 피사리를 하고, 5시 30분에 저수지에 가서 놀다가, 홍보와 길놀이를 하고, 신부님이 오셨다. 12시 30분정도에 평가가 끝나 그 때 잘 수 있었다.
3일째, 4시 30분에 시끄러운 소리로 깼지만, 좀 더 자고, 5시 5분에 일어났다. '한걸음씩'을 했다. 포도봉지싸기를 하며, 작업을 했다. 점심, 새참 모두 좋았다. (자세한 것은 다이어리에..) 청장년반이 운영되었다. 첫날 포도나무의 생식법에 대해 들었다. 안주없는 막걸리로 당황했었다. 미사를 드리고 도중에 평가를 했다.
4일째, 나는 포도농장에서 아주머니들에게 물을 갔다 주는 일과 여러 잡일을 했다. 실질적으로 한 일은 없어보였다. 물빼기, 줄기 올리기, 포장하기로 요약된다. 매우 더웠다. 너무 쉬엄쉬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반면, 평가 때, 모두 즐거웠고, 할 맛 난다고 했으며, 많이 먹었다고 해서 덜 미안했다.(권오수 님 댁이었다.) 첫 머무르기 평가가 있었다. 그것을 듣고 희망에 벅차올랐다. 와우.1!! 서로 긴장하기로 했다. 힘내자..
5일째(7월 5일) 비가와서 피사리에 나섰다. 힘들고 열악한 환경, 날씨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가 일했다. 소방서에서 화장실을 이용했다. 새참이 인상적이었다. 대건이형이 아퍼서 수면후에 나아졌다. 우철형도 아픔을 호소했다. 즐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7월 6일 6일째, 난 피사리를 하는 집에서 머무르기를 했다. 컵라면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머무르기 집에서 TV, 인터넷도 하고, 집에 전화를 했다. 그댁의 어머님과 전화요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버님과는 귀농이야기를 했다.
7월 7일 일요일이다. 아침에 마을 청소를 했다. 미사를 드리고 나서, 점심을 먹었는데, 설거지 등의 정리를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이 소백이와 한과를 얻었다. 물놀이를 했고, 해가 잘 들어서 빨래를 했다.
7월 8일 나는 지킴이다. 아침밥은 망했고, 잠으로 일관했다. 주방을 깨끗하게 닦았다. 재료가 없어서 카레를 자장으로 대체했다. 비가 와서 빨래를 걷었다. 새내기의 날이라 난 전례주체를 했는데, 형식에 얽메이고 말았다. 난 사실 바빴다.
7월 9일 논매기 작업을 짧게 했다. 마을잔치날이기 때문이다. 잡풀이 너무 많아서 죽는줄 알았다.
마을잔치!!! 동네분들의 엄청난 호응으로 광란의 밤이었다. 2차도 장난이 아니었다. 어떻게 잤는지 알 수 없었다.
7월 10일 파리때문에, 8시경에 일어났다. 비비적대다가 8시 반에 세안을 하고 안경을 찾았다. 다리에 쥐가 나서 소리를 지를뻔 했다.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하고, 속이 쓰린 것 같기도 하다.
2시 10분 회관 정리를 하고, 출발했다. 3시, 해단식 장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갔다 오다가 적십자 간호대, 중앙대(풍양마을)을 만났다. 새한 때, 옆조였던 사람들과 같은 방이 되었다. 반가웠다.
체육대회의 줄다리기에서 우승했다. 손에 부상을 입었다. 윷놀이는 2등을 했고, 계주는 4등을 했다. 주체님의 낙상으로 걱정했다. 마을별 장기자랑에서 우리마을은 매우 노력했고, 대동놀이에서 나는 북을 쳤다. 뒤풀이... 미지근한 막걸리에 실망했지만, 그냥 마셨다. 그리고 안주를 찾아 풍양마을로 갔다. ㅋㅋㅋ. 신부님과 재미있게 놀면서 여러가지를 했다. 다시 선교리 모임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엄청난 음주에 떨어야 했다. 어떻게 잤지???
7월 11일 마지막 날이다. 일어났는데, 술이 안 깼다. 이런적은 처음이다. 샤워하고 밥먹고, 짐정리를 했다. 땀이 흐르니 잠이 깼다. 버스에서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지금도(당시 글을 쓸 때) 우울한 기분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명동이다. 선배들이 나오셨다. 감동이 물결.. 이렇게 많으신 분들이 나오시다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저녁을 먹고, 합정으로 갔다. 에수살이 공동체에서 총평가 MT를 가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총평가 MT(7시간이 넘었지???) 그것을 마치고 나는 형을 배웅하기 위해 먼저 떠났다. 그 때가 5시 30분 이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농활이 끝이 났다.


번  호 : 21
제  목 : 경북방문기(慶北訪問記)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시  간 : 2002-09-09 오후 5:23:17
내  용 :  경북 상주. 내가 여름에 농촌공소활동을 하러 갔던 곳이다. 이번 가을을 맞아 농활의 지속성을 살리기 위해 수업까지 빼 먹으며 그 먼길을 사비를 들여 갔다. 예상했던 만큼의 작업과 교류는 하지 못했지만, 어른들을 만나뵐 수 있어서 반가웠다. 다음 여름 농활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주주변지역 화령, 화동, 모동, 모서에 대해 알아가면서, 생활반경이라던가 생활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농활을 마치고 시골 버스를 타봤다. 손들면 세워준다. 그러나 속으로 욕한다. 상주시내를 뛰어보고, 상주역에서 영주역까지 이동을 했다(함창->점촌->용궁->예천) 그리고 택시로 영주에서 유명한 "장춘당약국"에서 또다시 버스를 탔다. 대부분의 버스가 목적지에 따라 기사가 요금을 말해주는 시스템 같았다. 어쨌든, 영주역에서 부석사를 가는 관광객을 봤을 때, 나도 그런 재미있는 일을 해보길 원했었다.
동양대학교 캠퍼스를 둘러보았고, 상경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상북도...... 다음엔 종단하리라...


번  호 : 22
제  목 : 노벨상 100주년 기념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suritam9.netian.com
시  간 : 2002-10-31 오전 2:27:19
내  용 :  대학을 서울로 가게된 이후, 서울에 있는 전시회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던 중, 과학잡지 뒷 면의 전시회소개글을 읽고 로댕갤러리를 찾게되었다.
초행길이라 찾는데에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그리 오래걸리지는 않았다. 입장료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매표소 앞의 글을 읽고 입장료가 3000원임을 확인했다. 일단 표를 구입하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지를 보고 대충의 배치를 살핀후에 천천히 돌아보았다. 수상자 퍼레이드라고 분류된 곳에는 수상자들의 사진과 설명이 도안되어있는 천이 어떤 장치물에 달려 하늘거렸다. 빛을 살짝 투과하는 매우 고급스러워 보이는 천이라 매우 멋졌다. 그러 수상자들의 사진이 각각의 천에 의해 가려져 있어 제대로는 볼 수 없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여성수상자들을 보았다.
안쪽은 매우 반짝이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눈이 피곤할 정도로 반짝여서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여정파빌리온, 케임브리지 파빌리온, 자료전시 부분을 사폈다. 그렇게 시선을 잡아둘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오디오 파빌리온에서는 수상자들의 인터뷰라든가 연설을 들어볼 수 있었다. 헤밍웨이와 어떤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참 느낌이 새로웠다. 천천히 그 주위를 도는데, 김대중대통령의 사진이 보였다. 음. 역시 그의 목소리도 들어봤다. 그의 진실된 음성이 아직도 맴도는 것 같다.
노벨의 생에 만찬 시스템이 전시된 것을 보며, 고등학교 때 가졌던 노벨상에 대한 관심을 기억해 보았다. 평화관에 들어가기 전에 설치되어있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평화상 수상자들의 다큐멘터리식 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었다. 달라이라마의 것을 보았는데, 정말 잘 만들어 놓았다.
평화관에 입실하자, 영화에서만 보았던, 다중 디스플레이 방식의 전시관이 드러났다. 물론 전시장을 별로 안 가본 탔도 있겠지만, 너무나 멋지게 꾸며놓은 것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는 마더데레사의 비디오를 보며 다시 한번 그녀를 생각해 보았다. 아, 중간에 홀로그램으로 떠오르는 노벨 메달을 살펴보았다. "만져 보세요"라는 글이 써 있었서, 속으로 의심은 했었으나, 만져지지 않아, 또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평화관을 빠져나와 영상관으로 들어갔다. 개인과 창조성에서는 영상물보다는 전시된 기념물에 관심을 가졌다. 8가지씩 양쪽에 진열된 과학자들의 연구도구라든가 문학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물건들은 생소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거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알록달록 옥수수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DNA구조와 관련하여 생명에 대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하지만 창조적 환경서 본 영상물도 생물학에 관련된 것이었다.
창조적 환경에서는 BII(바젤면역학연구소)에 대한 영상물을 관람하였다. BII는 면역학에 대한 연구소로 과학자들이 모여 매우 대단한 연구를 하는 곳이다. 물론 2001년에 문을 닫았다고는 하나 좋은 시설과 자유로운 환경을 창조적 환경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제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영상물이었다.
내가 가장 오랜 시간동안 있었던 곳은 노벨인터넷박물관으로 매우 재미있었다. 사실 모두 영어로 되어있고, 키보드 사용도 제한적이었지만, 몇 번 클릭해 보면서 이용방법을 찾은 후 부터는 정말 재미있게 빠져 들었다. 특히 EDUCATINAL 부분의 GAME은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TR을 이용한 폭탄해체와 TR의 유무에 따른 재활용, 조건반사 만들기, William Golding의 작품 Lord of the Flies를 게임화 한 것을 해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화학실험실을 가상적으로 구현하여 실험장치라든가 도구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도 만화로 되어있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생들과 다른 관람객이 지나다녔는데, 혼자 관람하는 것보다는 시끄러웠지만, 다른 사람이 전시회를 관람하는 관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100주념 기념도록을 다시한번 살펴보았다. 이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소장가치가 있으면 구입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도 물론 노벨상에 대한 여러 책이 있지만, 여기서 발간된 책은 다른 느낌이 있어 사기로 했다.
갤러리를 완전히 빠져나와 전시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창조성의 문화 : 개인과 환경"이란 주제를 놓고는 영상물이 전부였지, 특별히 관련된 것은
박영식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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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대가 개꿀인 이유

서울대 나온 현대 음악과 즉석 라이브 콘서트를 방구성 1열에서 직관 가능

 

이창섭 ㅊㅎㅅ

 

개귀에 빈대

 

60cm 는 글로벌 스탠다드인가

휴지를 절도하는 중국인들을 안면인식으로 10분에 1회 60cm 휴지 제공

 

강한자만이 살아남았던 90년대를 지나 생존에 이르렀다

 

이준석 ㅊㄷㅁ

 

오늘 공쳤네

그래도 탈옥, 루팅 성공으로 만회했다

 

무인 계산이 변수가 적다

대형 마트에서는 무인 계산으로

 

키오스크 도입한 치킨집

사장이 잘하네

 

시간은 항상 궁금하다

 

인생역전

인생여전

 

치킨집이 전화를 안 받네

키오스크로 주문해야하는 시대

 

모두가 즐길 수 있다는 건 가치가 떨어진 것인가

넓어진 것인가

 

비버 한 마리

 

취약점 진단은 고고학인가?

취약점 진단 문진표

 

이 시장이 내 시장이 아닐 수 있다

휴식기에는 도끼날을 간다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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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오더

 

인생이 비루하다2

 

집에 가니 일이 기다리고 있다

 

윈도우 제품키를 외었던 친구

 

남은 건 빚 뿐

남은 건 일 뿐

 

거북에게 메뚜기를 먹이던 소년

 

노트북은 가전이 아닌 생필품이다

 

나에 일하고 밤에 먹는다

 

식사는 없어 배고파도

 

우리는 100단위 시대에 살고 있다

퍼센트의 시대

 

클레이 모레츠

박은빈

 

크기가 커질 수록 단위는 로그스케일이 된다

 

로그마함수?->로그 마이너스? -> 로그 감마?

 

생각의 속도가 실행의 속도보다 빠르므로 성과가 없으면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므로 자괴감이 들면 생각을 하지말고 실행하거나 쉬어야 한다

쉰다는 것은 치팅이 아닌 1/10만 일하기이다.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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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레벨 - 라디오 비제이

 

환경탓 = 내탓

원방하며 사는 인생

 

fps와 tps

더 높은 시점이 필요하다

 

이제 허탈하여 웃음만 난다

 

중국 조선족들이 서울에서 부천을 간다

by 1-ho line

 

유투브 컨텐츠에서 모녀들이 세상을 떠나는 수순을 볼 수 있다

쉬케치

 

농부와 고블린

워크래프트 2에서 피션트와 고블린이 있다

고블린의 노고를 너희들은 아냐

 

장난전화 컨텐츠가 통하는 이유

박승현을 봐라

 

처음이란 걸 첫눈에 가사에 녹여 둔 겨울이기는(캔)

이제야 발견할 수 밖에 없었다

 

 

[컨텐츠] oddly satisfying video

[원문보기]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영상이란 해석의 oddly stisfying video는 매우 주관적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기분이 별로 안 좋거나 '비호'일지라도 매니아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일단 만들면 시장에서 소비가 될 것이다

수요를 만드는 것은 공급이다

 

공부도 재능이지만 국가에서는 노력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희망을 준다

희망고문을 통해 산업 역군을 양성하는 노력은 가상하다

그러나 이런 등용문을 세습화해 놓으면 누가 공부하고, 일하려고 하겠는가

 

캐나다 세제 스테이크

해외에서는 세제를 넣은 물에 거품을 일으켜 접시를 세척하고 행주 등으로 물기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설거지를 한다

세제가 잘 제거되지 않으면 세제를 먹게되고 맛까지 느끼면 구토를 유발할 수 있다

캐나다의 어느 식당에서 세제 맛이 강하게나는 스테이크 소스를 먹으며 이상함을 얘기한 적이 있다

그것은 세제가 맞았던 것 같다

배 안에서 코코아를 마시며 맛이 덜하다고 분말을 더 타달라고 영어로 떠듬 거리던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어떻게 보였을까

 

'잘 해결되어 다행이다'의 의미

일어나보니 새벽 2시에 돈이 급하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되었다는 메시지도 남겨져 있었다

다행이다라고 보냈다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인 것과 그가 잘 해결되어 다행이다의 적절한 비중의 메시지이다

 

확실히 브리츠가 좋다

번들로 포함된 이어 마이크는 음량을 70% 정도로 사용해야하는데, 브리츠 헤드폰은 35%면 된다

노이즈 캔슬링으로 주변으로 새는 음악을 막아서 그런것일지도 모르는데 잃어버리지 않게 잘 챙겨야 한다

분실 것을 2번 겪었으며 놓고 나와서 되돌아 간 것이 5번은 될 것이다

 

나를 아빠라고 부를 뻔한 동료 교사

교리교사를 할 때 10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동료 교사가 회계인 나에게 지출 승인을 받을 때 아빠라는 명칭을 쓸 뻔 했다고 했었다

돈을 타서 쓰는 대학생들이 부모님에게 용돈을 요구할 때는 그런 텐션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예산은 충분치 않고 돈은 쓸 데가 많다

부모는 ATM이 아니지만 ATM을 자처하게 된다

 

샤무라는 고래

대학원 동기가 미국으로 학술대회를 가장한 여행을 갔다 와서 돌고래 쇼를 보고 온 것 같았다

샤무라는 돌고래 인형도 있었던 것 같고, 이를 화제로 같이 갔다온 선배와 대화의 소재로 삼았다

 

프린터는 3000원의 사용비, 자전거는 3만원

정신적 스트레스는 자전거가 크다

자전거는 부피도 크고 무게도 나가서 보관이 용이하지 않다

금번에 또 사용해야하는데 렌탈과 구매의 갈림길에 서있다

전기자전거라서 비용도 있고, 분실시의 리스크도 크므로 아직은 렌탈의 비중이 크다

자동차도 사기 전에 10여 회 이상 빌려서 운행해 봤으니, 자전거도 당분간은 렌탈로 가기로 할 것 같다

프린터, 스캐너도 4000~5000원이 드는데, 1년에 10번이라고 하면, 5만원이니 좀 더 고민을 해보자

한 달에 한 번 정도 쓰는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좁은 원룸에 가당치 않다

 

정신없이 노래부르던 때

중학생이었나 성가대 활동으로 노래를 부르고 이에 집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왜 그걸 했을까. 아마도 친구를 사귀는 채널로 사용했던 것 같다

동기라던지 의무가 없었고, 아무 생각없이 해야만 한다라는 강박이 있었다

 

학창시절 망보기

'떳다'를 외치며 늦게 들어오시는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노는 학생들과 그렇게 놀았다

이제 학교에서 담임도 맡지 않으려고 한다지

그건 행정 업무가 너무 과도하게 늘어나 훈육과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 그럴 수 있다

보조 자료나 기기가 도입되고 강의 자료도 다 주긴 하지만, 관리해야할 업무일 뿐 전혀 편하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고인물을 썩어가기 마련이다

 

지쳐가는 유투버들

방송국놈들이 살아남는 이유는 롱런 할 수 있도록 체력을 안배하기 때문이다

녹음하고 녹화하고 편집하면서 모니터링하는 유투버들은 지칠 때가 되었다

이들은 유재석 같은 사람에게 지속할 수 있는 체력 관리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나는 AI를 이용한 작업을 하기 때문에 힘든 것들을 외주화 했다

지금부터 지치면 바로 장비를 팔아야 한다

중고 매물로 영상장비가 나오고, 요즘은 전기자전거(배달 아이템)이 쏟아지고 있다

주식을 하면 장비가 남는다고 하는데, 이젠 중고거래로 다 팔고 나면 남는게 없다

 

[쓰기] 붐비지 않을 때 가자

[원문보기]

사람이 많을 때는 대접 받기 어렵다.

희소할 때 참여해야 관심을 더 받을 수 있다.

관심을 받지 못하면 사라진다.

 

복권방 아저씨

편의점을 동시에 운영하지만, 다른 편의점에 비해 친절하다.

다른 사람의 희망을 보고 살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친절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미래에 복권방 아저씨 같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폐지 줍는 노인보다는 낫다.

 

비교 - 최고의 생존본능

비교하는 능력은 최고의 생존 수단이다.

좀더 크거나 맛있거나 예쁘거나 아름다운 것을 판별해 선택하는 것은 인류를 지속시켰다.

비교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 더 우위에 있다.

또는 비유나 경험한 것을 토대로 유사성을 설명하여 이해시키는 것이 수월하다.

 

세상이 날 괴롭히고 싶어 안달이 났다.

 

오늘의 집 전략

기사를 취재하지 않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

제보만 받는 한문철 티비는 이제 판단도 하지 않는다.

판단이 모호한 영상보다는 자극적인 영상으로 조회수만 늘리고 있다.

컨텐츠를 직접 만들기 보다는 갖춰진 컨텐츠들을 자발적으로 제출하게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은빈은 나를 보고 웃지

강남구청역 1번 출구의 팬들이 세워준 광고판은 강남의 사무실이 있는 동안의 최고의 혜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정릉역의 구내식당과 강남구청역의 다이소, 박은빈은 2022년 후반기의 매일의 일상이다.

백만불짜리 미소를 부끄러워 쳐다보기 어렵다.

사진으로 저장하여 아껴 봐야지.

 

감귤페이, 알리페이, 카카오페이

제주도 등 섬, 도서 지방에 붙는 추가 배송료를 감귤페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서울세는 높은 인구밀도로 삶의 질이 저하되는 간접세이다.

교통편은 좋지만, 이를 이용하는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

 

술은 시공간을 초월함

시간을 빠르게 가도록 하거나 느리게 가도록 하여 공간의 이동을 상대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시간을 제어하면 공간의 제어도 가능하다.

시간을 관찰하면 위치를 알 수 없고, 위치를 알면 시간을 알 수 없다.

 

집에 가자

 

큰 물이 얻을게 많다.

어떤 사무실에 갔다가 이런 저런 아이템을 받았다.

다른 사람에게 줘야지.

 

혼자 영화 보기도 바쁘다.

새로운 영화 채널을 얻었다.

볼만한 영화가 없다.

혼자 영화 보기도 바쁘다.

이제 드라마도 봐야지.

 

 

[쓰기]

[원문보기]

애들 보는 것은 더 이상 애들만 보지 않는다

 

알바야 알바노

노인도 일해야 하는 힘든 노후

 

프레임을 벗어나려해도 절차가 복잡하여 그냥 살게된다

포기시 제출해야할 서류가 많다

 

대화형 프롬프팅 - 파인튜닝

AI 2.0, 3.0, 얼마나 더 학습 능력과 방법이 더 인간화 될 것인가

 

누군가를 기다렸던 어린 시절

반주자는 항상 주목 받는다

 

대학이 폐교되듯 군읍면도 소멸한다

경쟁력이 없는 집단이나 개체는 도태되어 사라진다

 

너구진라면

너구리와 진라면을 섞으면 구진 라면이 된다

 

자막 작성자들이 너무 무지하여 화가난다

기본적인 용어를 너무 모른다

맞춤법이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 없다

 

권성동 권은동 권택동

 

김포골드라인 빠르다

 

무신사 관태료가 더 싸다

어린이집 설치 회피

 

태어나 보니 흙수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소주값이 올랐다

 

고촌에서 김포공항 멀다

 

날씨로 인한 노인들의 죽음

 

사은품을 받기엔 늙었다

[겨울]

[원문보기]

실험 카메라, 몰래 카메라

 

옷차람만 봐도 인생이 보인다

 

치킨 시큐어

 

발빠짐 주의, 나빠짐 주의, 나삐짐 주의

 

커플 NPC가 출생률에 비해 많다. 버그다

 

취약점 진단과 생선 해체

 

업체는 많은데 나까마들만 있다

 

날이 추위니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용돼지꿈이 아닌 용꿈돼지꿈

 

우산을 주겠다는 사람과 팔겠다는 사람

 

젖은 우산을 아니 받은 우산, 부러진 우산을 들기 싫었던 것이다

 

 

[쓰기] 남들이 안 하는 걸 해야

[원문보기]

미래의 행복을 대출하자

 

복귀 출발

복귀를 위해 도착지에서 다시 출발지로 오는 것

 

아버지의 퇴직금

은행 VIP실에서 얼마 안되니까 계좌에 넣어 달라 얘기했다

실망하셨으려나

 

점심식사 시간의 공연

하나금융타운 청라에서 가끔 공연하고 간식도 나눠줬다

빨리 가야 받을 수 있으므로 외주 직원인 나는 과감히 포기했다

 

삵 문제를 맞춘 그녀

잘 살겠지

 

가장 나이가 많은

어느 신문의 신입생 때 들어간 선배의 소개가 그렇게 나왔다

다른 선배들이 다들 웃었는데 의미를 몰랐다

이제는 안다

그런데 왜 가장 나이가 많은 이란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 취재원도 그 의미를 잘 몰랐나 보다

 

악성 채권 같은 알바와 사업들

그런 일들을 깔때기 처럼 받아 소소한 돈 벌이를 하는 내가 그렇게 달갑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옥수수를 받아 다른 이에게 전달

그녀는 누구에게 받았던 내가 준것이니 그것은 네가 준 것이다라며 고마워 했다

초콜릿을 받아 원 소스의 전달자에게 건네주도록 하였다

잘 전달 되었다

나는 그런 걸 잘 한다

나의 공으로 돌리지 않으면서 최후까지 챙긴 사람

 

하수처리장 역할을 하는 장기

내 몸의 하수처리시스템, 림프계

나는 보안 사업의 림프계인가

 

로고송을 부르면 햄버거를 주던 시절이 있었다

빅맥이었던 거 같은데, 후배들을 시켜 노래를 10여회 불러 다 같이 햄버거를 받아 먹었다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쥐잡이라고 불렀던 가혹행위 비슷한게 있었다

선배들에게 엿치기를 못 시켜준게 미안하다

떡 받기 행사만 해서 전통을 잇지 못했다

 

하이 리스크 오아 망

하이 리스크는 마이너스 리턴이다

 

전산부 행사를 위해 PC를 가져갔다가 다시 집으로 가져와서

어처구니 없는 게임만 하다가 돌아가게 된 나, 그리고 선배

그 선배는 욕을 많이 먹었는데 지금도 그런 캐릭터 이려나

 

부자는 넉넉히 돈을 쓰더라도 모이는 속도가 더 빠른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넉넉히 쓰지 못하고 찢어지게 아껴써서 겨우 모으는 축에 속한다

 

[기억] 결국 꾸준함이다

[원문보기]

어디서는 알려주는 투자 방법은 하는 것은 쉽지만 꾸준히 해야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1년을 하던 2년을 하던 평생 살아온 것 보다는 짧다

하루하루 할일은 있다

그게 숨쉬기 일지라도

밥먹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식사라고 하지 않는가

 

마포로 이사 온지 1년이 되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마포는 살아보고 싶은 지역이었다

그녀는 아예 외국으로 가버렸다

 

3보 1고백

3보 걸어서 고백이라도 해야할 만큼 절박하다

 

갓파더라는 이름과 별명으로 불렸던 대부

수학을 잘했다

복학생 수학 잘하는 사람과 경쟁을 시켰다

지금은 그게 중요할까

중요하다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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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포머니라고 했던 사돈

Four money 이다

파이어 에그 같은 언어 유희 인것이다

 

사진을 찍거나 연출해서 그려야 했다

지금은 인공지는 생성 서비스로 만들면 된다

합성, 조합이라고 폄하하지만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다

 

전혀 모르는 반과 축구

전학와서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내 반, 팀이 어디인 줄 모르고 다른 반 용병으로 활약했다

미친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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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먹고 넘어지기

어제 술먹고 넘어져서 흔적이 남았다

옷을 세탁이 가능하지만 외상은 이제 잘 지워지지 않는다

내상으로 토악질을 한 것도 큰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런 걸 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이 있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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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매권 긁고, 편의성 상품권 긁고

헌혈하고 받은 쿠폰을 등록하기 위해 동전을 든다

강남구에서 1만원권을 줬지만 가치있게 쓸 수 있을까?

 

막 올리는 구나

유투브 숏츠 컨텐츠는 부담이 덜하다

1분안에 맞춰야 하는 게 어려울 수 있지만 편집은 안해도 된다

그렇다고 막 올리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시나리오와 서사가 있다

삶은 영화이며, 드라마이고 숨쉬는 순간 하나하나가 기적이다

 

북밴

책으로 음악을 만들었던 그룹

나는 글과 그림으로 만들 예정이다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해당 글과 그림으로 백그라운드 뮤직도 생성할 것이다

 

어머니는 세족례를 집에서 해 주셨다

내가 발을 씻기신 예수 노래를 좋아하셨다

 

캠프에서 발씻기 예식 후 나도 발을 닦았다

시원했지만 물은 완전히 더러워졌다

내가 씻지 않으면 스스로 당당하지 못할 것 같아 그랬던 것 같다

여름이라 너무도 땀도 나고 더러웠던 나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이 있다는 것은 좋았던 추억이라는 것

 

캠프에서 어린아이가 없어져 찾을 때까지 숨죽여 기다려야만 했다

어떤 자신감 이었는지 내가 맡은 친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그는 아니었지만 만연하게 퍼졌던 것 같다

나의 과실이었지만 다른 친구를 탓했다

그래도 해결사가 잘 해결해 주었다

 

한의 민족

락 발라드

영화의 신파가 나오는 이유

나의 삶도 한민족의 삶과 다르지 않다

한이 맺혀서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눈물이 난다

그 때 그시절은 눈물이 없으면 되뇔 수 없다

 

집에 보내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다

어제는 집에 보냈어야 했는데 오버했다

그 전에 집에 보냈기 때문에 어제는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만 걱정하면 된다

그들은 갔을 것이다

[컨텐츠] 정해주는 사람

[원문보기]

이제 내가 정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수동적으로 했지만, 이젠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정했을 때 나도 상대방도 편하다

그런게 싫은 사람은 미리 정하고 표현하므로 내가 나설 필요가 없다

 

포켓몬 같은 AI가 생성한 캐릭터들

자동화로 생성하여 출격시키면 된다

오늘은 이 캐릭터로 컨텐츠를 만들자

자동차가 많은 사람은 기분에 따라 다른 차를 타고 나간다지?

 나는 컨텐츠의 성향에 따라 준비된 여러 캐릭터를 사용하면 된다

여자들도 화장할 때 여러 효과를 주듯이 나도 컨텐츠에 따라 적절한 캐릭터를 쓰면 된다

 

버튜버나 AI로 만든 영상이나 화장한 사람이, 가면쓴 사람 모두 같다

나 자신을 꾸며서 영상을 찍고, 편집한다

화장하거나 옷을 다르게 입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어떤 수단이나 도구를 사용해서,

적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필터? 버튜버? 님들이 화장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가면, 인형을 쓰고 나오는 것과 같다

 

3.1절 영웅 보다

또 보고 다시 보고 계속 보고 모두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정성화 닮은 지인

좋은 사람이었다

 

가정집에서 노래부르기

민폐를 끼지지 않게 절제하면서 노래를 불러봤던 기억이 있다

그 집의 주인도 조심해서 하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이 용인 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포장이 처리 봉투로

개별 포장이 된 과자류를 먹게되면 개별 포장지가 쓰레기로 발생한다

그 포장지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본 포장지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아버지는 생산직이셨다

하청의 생산직

형도 그런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제조업이라 표현했다

 

이혼 별거 상황은 시대적 현상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과거 미국 영화가 항상 가정 환경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를 따라한다고 한국 영화를 비판했다

지금 한국 상황이 그렇다

따라한 것도 있겠지만 상황이 그렇다

조만간 가정은 소멸할 것이다

출생률 0.78

과연 통계적인 수치일까?

 

처자식이 있었던 건 그 당시 문화지 자의지거 만남은 아니었다

조신시대나 그 전후의 상황에서는 항상 처와 자식이 존재한다

지금은 50%가 아니고, 가족 영화를 표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공감대를 얻기에 부족하다. 적어도 나에겐

그래도 5년 전후로는 동일한 환경을 제시할 것이다

아예 맞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하지만 한구은 10년 후도 동일한 체제가 계속 된다면 더 이상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자식이 한 명 이고 없는 가정이 더 많아질 것이므로

 

학교에 제출한 사진이 있다

신기하게 표정이 밝았다

선생님이 칭찬하셨다

연출인지 아닌지를 판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정말 리얼한 사진임은 부정할 수 없다

아버지의 작업 모습

그 당시 방송사에서 촬영을 와서 우연해 찍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10였으니 아버지는 40대를 바라보는 30대 였을 것이다

아무튼 30대 젊고 힘있는 나이.

지금은 왜 인지 모르지만 아무런 희망도 없다

왜 왜 왜 . IMF를 세게 겪고 친척에게 빌려준 돈도 못 받아 위축되어 그럴 수 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그냥 그렇다

어제 누군가에게 위축된 것을 극복하도록 다른 이에게 전달해줄것을 이야기 했지만, 그건 나에 대한 반향이었다

오늘은 나도 이상하게 자존감이 올라갔다

물론 지금은 예상했던 점약 캔슬이 생겨 다시 텐션이 낮아 졌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만은 내가 주인공이다

 

형은 독립 운동가 상이다

그 형이 요즘 연락이 없다

뭔가 자신감이 떨어졌나보다

조만간 연락해 봐야지

내일 가스 점검이 올 것 같은데

보일러실을 치워하는 부담감이 있다

에어컨 실외기 까지는 분리했는데 보일러는 아직 기술이 안되나 보다

보일러실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럽다

보일러가 있는 돌출된 부분의 잔여 공간을 정리해야 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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