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히트맨, 해치지 않아, 두번 할까요.
기대 했던 영화들인데, 상영관이 적다는 건.
영화관에서 보지 말라는 것이다.
히트맨에서 기억나는 대사는 이것이었다.
정준호
히트맨
시말서? 못 써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디지게 생겼어 어떻게 할거야 개새끼야?
시말서 대신 '코로나'로 바꿔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야 그렇다고 치지만 예식장까지 예약한 사람들은 무엇인가?
손잡고 다니는 사람들은 부럽다.
아버지께서는 어릴 때 항상 이런말을 하셨다.
'나이먹으면 ~'
요즘의 '라떼는 말이야~' 와 연관해 본다면 습관에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어려서 부터, 성인에 이르기 전에 편한 환경에 익숙해 졌을 때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인데, 계속 직시하고 있다.
귀찮다거나 미래에 도움이되지 않을 것 같다는 합리화로 이행하지 않는 게으름, 편한 방식으로 행하는 습관이다.
이런 사소한, 작은 습관들이 쌓여서 꼰대의 행동이나 남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버리는 보통 이하의 인간이 된다.
최근 쉽게 쉽게 저지르고 방치하는 나의 모습들은 향후 몇 년 후, 더 심각한 상태의 인간 이하의 행동을 보이며 몰락해 갈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쓰기] 박은빈 2천명, 아이유 10만명, 50배 차이
노에가 욕심으루부힌죄
취약계층은 저금할 돈이 없다
과잉생산시대에서 팔아남기
나의 차는 게후동행카
헌혈의집 남자 간호사
추억의 브랜드라기 보다는 갈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일 뿐
외국인 헌혈자 시끄럽고 주차등록도 하고 가네
은빈이가 열어주는 출입문
메일 앱을 모니터링하는 일에 파묻힌 노예
노이즈 리덕션 해드폰을 뚫고 들어오는 카톡 소리는 날 미치게 한다
은빈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박은빈도 라면을 먹는다. 칼질 잘 못하는 은빈이
작용 반작용 - 자극은 강해진다
사는게 재미없니? 죽고싶어?
요청과 응답 - 자극과 반응
마체테. 피들러
[쓰기] 도서관은 언제나 나를 환영한다
보일러 땔 돈은 번다
놀이공원에서 학생증을 빌리러 온 타인
술을 반씩 남기다
졸업생은 퇴사자다
일은 안해도 밥은 먹는다
야긴 식대, 택시 시절
지출이 많아 매출을 늘려야겠다
나 안 먹을꺼야?
그냥 썩을게
의리파 통조림
밥값을 벌기 위한 설문과 이벤트 참여
비 올 줄 알고 다음주를 개화 일로 잡은 벚나물들
사십대가 되어버린 미혼
마포평생학습관 아현분관 도서대출증
별놈들이 다 있구만.
먹고 살기 위한 투쟁
[필담] 불평은 그만하자
부끄러움은 나의 몫
여의도. 불꽃 축제가 끝나고 예상된 반응. 쓰레기.
나는 가지도 않았고, 즐기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화끈거려야 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긴 연휴기간을 맞아 고속도로 통행료를 무료로 했다고 한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며, 역차별에 분노한다.
편한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 공무원을 준비하는 그들.
내 세금으로 저질 공공 서비스를 받으며 분개한다.
대학에서 일체형 책상(의자와 책상이 붙어 있는 형태)에서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학생회에서는 등록금 인상에 대한 반대만 했지, 이런 실제적인 외침은 없었다.
왜 이제서야 이슈가 되어 교체가 이루어진 거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가 되어서 좋기는 한데, 정당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들이 있다.
기자의 자기반성이 보이지 않는다.
기자수첩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는 기자의 모습을 보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휴게소 맛집이나, 유아용 시트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오늘 자전거로 압구정을 지나오며, 자동차 전시장에 갈일이 없음에 소외감을 느꼈다.
[고속버스] 프리패스 이용기
여행 주간이라 고속버스를 평일 4일권을 구매할 경우 7만원인 가격을 4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월, 화, 수, 목, 금 중 평일 4일을 택해 80% 정도의 버스회사를 이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하루에 2번을 이용해서 엄청난 혜택을 누렸다.
첫날만 1번 이용하고, 나머지 3일은 2번씩 사용했다.
첫째날 : 인천 -> 여수 35,000 : 대구로 갈 생각이었는데, 놓쳐서 일단 시간 맞는 차를 타고, 시외버스를 이용해 전라도에서 경상도의 도로 경치를 관람(대구서부 시외버스 27,000)
둘째날 : 동대구 -> 마산 -> 광주 10500 + 21,000 : 돝섬(왕복 8,000원) 및 해수욕장 구경 후 목포(시외버스 왕복 15,000원)로 가기 위해 이동(진도 여행을 위한 렌트카 5만원(운림산방 2,000원 포함, 우수영관광지는 일부 관광만 가능하여 입장료 없음, 송가인 마을에서 꽈배기 2,000원) 별도, 해상케이블카 2만 2천원-고하도 전망대 공사중)
셋째날 : 광주 -> 대전청사 -> 인천 17,600 + 17,100 : 목포에서 광주로 이동 후 유성온천(9,000원-노천 운영 안함)을 가기 위해 잠시 대전 경유(택시 11,000원) 후 집으로
넷째날 : 인천 -> 속초 -> 인천 23,200 x 2 : 마지막날을 쉬려고 했으나, 속조 당일이 가능할 것 같아 오후 2시 30분 차로 갔는데 2시간 20분 정도 다 돌아(튀김, 음료수 6천원, 등대 입장 불가, 동명항, 영금정, 조도해수욕장) 보고 귀가
수도권에서 강원도권은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총 금액은 147,600원 으로 프리패스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10만원의 혜택을 누렸다.
물론 장거리 이동에 따른 여러 불편함이 있었지만, 프리패스권을 구매한 사람 중에 상위 이용자이지 않을까 한다.
금번 코로나 감염병 여파로 주요 관광지는 한산한 편이라 사람 붐비는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이제 자중하고 시험, 업무, 논문 준비를 해야겠다.
[경험] 등기 치기
더 이상의 이사는 체력적으로 힘들어져서 소형 아파트(오피스텔)를 계약했다.
이미 이사한지 오래되었지만, 글을 바로 작성하기엔 꺼려지는 것들이 있어 이제야 쓰기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세입자가 아니므로, 버릴거 다 버리고 살 거 다 살 것이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마포작은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게 되었다.
2~3시간만에 완독하고 나서 눈물이 났다는 추천글에 공감하긴 했지만, 역시나 좋은 조건에서 출발했던 그녀라 반감되었다.
어릴 때 가난으로 인해 반지하에서도 살고 이사를 2년에 한 번씩은 갔던 것 같고, 인천으로 자가로 부모님이 이사온 이후로는 이사에 대한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내가 직접 이사다니면서 부모님의 고생을 조금은 이해했지만, 나야 홀몸이므로 부양 가족을 걱정해야 할 일은 없었다.
지금 어머니와 형이 사는 집이 노년까지 지내실 것으로 생각되나 재개발이 된다면 한 번쯤은 더 옮기실 것이다.
이제 나의 이사 이야기를 쓸 차례다.
주민등록 초본을 발급 받으면 전입한 이력을 확인할 수 있어 이를 보면서 적어 보려고 한다.
꽤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 보다 많지 않았다.
처음은 서울 중구 필동으로의 이사이다.
이사라기 보다는 친구가 얻은 집에 월세 내고 살면서 출장으로 6개월 간은 거의 없었다.
인천집으로 친구의 짐을 옮길 때, 세탁기와 냉장고를 받았던 것 같다.
그 후, 주소를 부모님 집으로 해놓고 계속 출장을 다녔던 것 같다.
이제 생각났는데, 신림동 고시원과 석촌고시원, 오금동 고시원(샤워기를 파손한 건 술 때문이다.) 생활이 있었다.
천주교 행사를 통해 가락동 성당에서 봉사활동한 인연으로 송파동으로 이사하여 송파구 생활을 해봤다.
고시원의 답답하고 소음에 민감해야만 하는 생활을 버리고 반지하로 들어갔는데, 이전 주인이 놓고간 세간을 받아서 사용했다.
나올 때 냉장고는 처분하고 조립식 테이블을 여러 해동안 유지 해왔으나, 영상 촬영한다고 가지고 왔다가 처분 당했다.
트럭의 공회전 엔진 소리에 잠을 못자고, 보일러를 고치다가 전기 차단기가 내려져서 주인집과 옆집의 할머니 방까지 보게되었다.
결국 차단기는 주방 수납장에 있음을 알고, 20000원을 집주인에게 받을 수 있었다.
보일러 수리비는 받지 못했지만, 조의금으로 생각하며 송파 생활을 마쳤다.
그분은 내가 이사 가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다른 데로 가셨다.
가락동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송파에서 멀지 않은 건대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사다닐 힘이 있어서 10개월을 계약하여 방음이 되지 않는 원룸 생활을 했다.
근생빌딩이라 주거용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었는데, 주거용 월세로 건대와 세종대 학생들을 품었다.
차가 있는 세입자가 있었는데, 주차를 더럽게 해서 언젠가 술을 진탕마시고 담배와 쓰레기를 투척했다.
아침에 수습이 가능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60만원을 주고 합의했다.
그 전에 사이드미러도 치고 다녀서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므로 수업료를 지불했다.
짧은 건대 생활이 끝나고(광어 두마리 횟집에서 몇 번 회를 사먹었던 것 같다) 강남으로 이동했다.
송파와 광진사이에 관악이 있었는데,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가 건너 뛰었다.
2014년 관악으로 간다.
처음으로 월세를 살았는데, 이는 회사 사무실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월세를 받았다.
물론 중간에 이직을 하여 월세는 다시 내가 냈던 것 같다.
방 세개에서 살면서 아직 가락동 성당 활동을 지속했다.
친구를 소개해 좋은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방에서 친구도 재워주고 교육생들도 재워주고 별 일이 다 있었다.
편의점 알바를 흠모해 보았지만 담배피는 것을 보고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왜 그런지 몰라도 떠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암튼 관악구는 정말 자취생이 거치지 않고 가기 힘든 곳이다.
"하재영" 작가도 신림동을 찍었고 애증의 동네이다.
겨우 겨우 2년을 채우고 서울대쪽으로 통학을 하는 손녀가 있어 할머니인 집주인이 거주하신다고 하여 잘 빠져나왔다.
창문이 너무 오래되어서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소리가 난다고 나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몇 번 받아주다가 수신 찬단을 하였다.
난 광진구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살아보지 않은 동네에 사는 것이 위시리스트였기에 건대 앞으로 가서 계약을 했다.
그당시 집을 같이 보러 가준 친구가 중구 필동에서 같이 살았던 군대 동기이다.
한 기수 위였지만, 동갑이었고 대학교도 편입하여 좋은 곳에 취직했다.
광진구까지 찍은 이후로 다시 반지하 반포동으로 가게된다.
화양동에서 입금이 되지 않아 보증금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짐을 문 앞에 놓고, 10년간 원격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무실로 갔다.
강남 술집 한식 부페를 먹고 짐을 정리했다.
반지하 특성상 어두워서 AAA건전지 3개가 들어가는 센서등을 사서 설치할 생각도 해봤지만 일반 등에 비해 너무 어두웠다.
뭐가 좋은지 옆 방은 남녀 둘이 복작복작 살았던 것 같다.
과메기를 먹으며 침대 다리를 부셔 먹었지만 테이프로 붙이고 이사를 나갔다.
프리랜서식 계약으로 돈을 조금 벌게되어 사무실 근처로 이사를 계획하게 된다.
2년 계약이었지만 1년만 하고 다른 세입자를 기다렸다.
전세 계약서를 꼭 주고 가라는 집주인에 대해 이를 찾느라 약간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소리를 듣고 나갔다.
이후 세입자는 월세였고, 복비까지 내가 지불해 주는 것으로 해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할머니 할아버지 집주인들을 너무 꼬장꼬장하다.
화양동에서는 형과 나이가 같은 건물주였는데, 대출이 많이 들어있고 불법 증축도 있는 문제(?)가 많은 물건이었다.
사무실 근처인 서초동은 역시 원룸이었지만 4층이었고, 지하로 지하철이 지나다녀 상당히 운치(?) 있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잘 되어 있었고, 사용량이 많지 않아 누가 타고 있으면 깜짝 깜짝 놀랐다.
메인 현관에서 5만원을 습득해서 잘 썼다.
밤에는 고양이 울음소리, 아침에는 윗층에 사는 사람의 알람이 날 괴롭혔다.
지하철 소리는 정말 낭만적인 소리였던 것이다.
서초동 사업도 접고 청라로 업무 공간으 옮겼다.
그래서 청라에 집을 알아보며 출퇴근 했지만 1년은 그대로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청라 업무도 수월하지 않아 같은 계열사로 옮기기 위한 시도를 하여 성공하였다.
그래서 청라로 이사하여 투룸에 차까지 샀는데, 고객사의 갑질로 퇴출되었다.
코로나 초반으로 2~3개월은 작은 일들을 하며 여행을 다녔다.
대학원에 들어가 학교를 다녔으며, 1년 간은 오프라인으로 회식도 많이 하고 어르신 동기들을 많이 만났다.
산업통상자원부 일을 하면서 군대에서 장교를 했던 (수석으로 기사도 났던) 분과도 몇 번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연락이 되고, 환경부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동서울대에 강의를 나가게 되면서 상주 프로젝트가 불가능하게 되어 항공사 홈페이지 개발을 하게 된다.
강원도와 서울 소재 두 군데를 하고 나서 지난 토요일에 마무리 했다고 믿고 싶다.
청라를 떠나기 전에 코로나에 걸려야만 했다.
넓은 공간에서 쉼을 유지해야하는 것도 있고, 다른 프로젝트를 나가서 격리되면 곤란하므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행이(?) 양성이 나와서 일주일 격리 하면서 이사 준비를 할 있었다.
오래전부터 동경해 왔던 마포구에 매매 계약을 하고 지난 4월 입주하여 출장 가기 전 여유를 즐기고 있다.
다음주 부터는 지방 출장이다.
군산, 완도, 목포, 진도를 거쳐 여수에서 여정이 마무리 된다.
현재 이사온 집은 청라와는 다르게 쓰레기 버리는 것이 조금 신경쓰이긴 하지만, 어디나 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일단 상층에서 층간소음 피해를 당하지 않는 최상층으로 왔다.
고층임에도 엘리베이터가 한 대 밖에 없어 불편하긴하지만 버틸만 하다.
옥상에서는 그래도 담배피기가 어렵지 않다.
시장, 마트, 지하철역이 가깝다.
배수구 냄새는 잡았고, 책상과 매트리스, 서랍장도 자리를 찾은 것 같다.
오븐도 사고 오디오도 선물 받았다.
드럼 세탁기 분해 청소 이후로 배수가 안되는데, 세탁기 배수관의 높이 문제인 것으로 보여 조정하긴 했는데, 한 번 사용해 봐야 한다.
옷 넣을 곳만 좀 더 확보되면 좋을 텐데 아쉬운 점이다.
2015년 준공 되어서 그런지 수납장은 잘 되어 있다.
샤워부스가 반만 막혀 있는 것은 아쉽지만 내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비데를 설치해야하는데 귀찮다.
일단 출장 기간 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니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잡설] 스탠딩 코메디의 러닝타임
스탠딩 코메디는 코미디 빅리그나, 웃찾사,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를 말한다.
과거에는 코미디 프로나 녹화된 예능이 20~30분 아예, 40분을 채워서 하는 것도 있었다.
광고나 중간 진행, 채널 사수를 위해 점점 길이가 짧아져서 5~10분 정도로 컨텐츠가 조정되고, 메인 프로만 15~20분 연장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 러닝 타임은 지금의 유투브 컨텐츠 평균 길이와 유사하며, 짧은 시간동안 시청자를 잡아 둘 수 있는 전략적인 시간이다.
이젠 그것도 짧아져서 1분, 1분 미만의 컨텐츠가 빈번히 제작되고 있다.
신속한 문화의 한국 사회가 이에 걸맞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정보량이 굉장히 짧은 시간에 압축되어 순식간에 시각과 청각으로 전달되고 있어 점점 볼거리가 줄어 든다는 기분에 휩싸인다.
[도서] 진짜 소프트웨어 개발 이야기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매일 할 일을 반복하는 것은 실제 훈련이라고 보기 어렵다. 회의에 참석한다고 해서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연마되는 것도 아니다. 이메일에 답장을 쓴다고 해서 타이핑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뭔가에 대한 실력을 키우려면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서 집중적으로 훈련해야만 한다. ~중략~
내가 알고 있는 한 뛰어난 엔지니어는 바로 이처럼 끊임없이 이뤄지는 훈련 덕분에 그 정도의 실력을 유지한다. 신체적으로 좋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계속 운동을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매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과 엔지니어링도 이와 마찬가지다. 97쪽
제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접근법입니다. 하나를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적게 가지려고 하는 겁니다.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하는 겁니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오히려 더 적게 하는 방법입니다. 122쪽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도 책을 읽지 않는다. 쓰지도 않는다. 대다수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책을 읽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웹사이트를 읽지 않는다.
프로그래머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배우는 것일까? 그들은 고전적인 방법을 통해 배운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실제로 코드를 작성하면서 두 번째 창에 열려 있는 인터넷에 존재하는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프로그래밍 서적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인터넷은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것은 당연히 더 현명한 행동이다. 나는 더그 맥쿠인이 '나는 왜 책을 읽지 않는가에서 적절하게 설명한 자신의 경험이 상당히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271쪽
조엘의 책 이후 좋은 책을 발견했다. 번역은 임백준
[이사] 고인물은 썩는다
5년 아니, 10년 정도 썼던 호스팅 사에서 무료 호스팅사로 이사했다.
아직 완전히 테스트하지는 않았지만, 안정화 후에 기존 호스팅은 제거할 예정이다.
많은 게시글과 자료, 게시판 등이 있었지만 관리 안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기로 한다.
고인물은 썩는다.
아까운 자료이지만 관리되지 않으면 쓰레기일 뿐이다.
XE 3.0이 나온다는데, 1.X로 일단 운영하고 추후 재이전이 필요할 수 있겠다.
그동안의 자료도 거의 쓸모없어지고 있다.
무료 호스팅사가 필요하다면, https://kr.000webhost.com 를 알아보면 좋겠다.
nameserver 변경으로 포워딩 서비스를 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