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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홈페이지

[부산] 서면, 광안리, 연산동

suritam92012.08.17 22:22조회 수 147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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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은 너무도 자주온다. 이번엔 초량에 숙소가 있는게 아니라 그쪽은 둘러보지 않았군.


초읍과 서면은 매일 지나다니는 루트이고, 안평과 광안리는 어쩌다 보니 들리게 되었다.


내일은 다대포나 송정 쪽으로 가볼까 하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사직은 글쎄다...


연산동엔 친구가 있어 이번에 또 들리게 되었다. ㅎㅎ

suritam9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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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사태를 보며 (by suritam9) [상념] 내 10년 후의 모습 (by surita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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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지시한 사항을 역행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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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흡연 권장에서 흡연 금지로,

에스컬레이터 좌측 걷기, 우측 서기에서 두줄서기로,

카드 사용 권장에서 카드 사용 줄이기로.


이런 멍청한 사람들의 초기 지시가 잘못된 것임을 판단하고 돌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자리잡은 행태가 쉽게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나라 교육. 지식 중시 교육으로 다들 또라이로 만들고 있다. 강남. 또라이들이 늘어나 정신병원 진료 경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관계를 중시하는 교육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이건 1%도 안되는 앞서가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고 공공교육은 모두를 병신으로 만드려고 주입식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망함의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가다가 다들 자살하는 동물이되어 절벽으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나도 결국은 대출이자로 자멸할 위기에 처할 것이며, 대출을 권장하는 사회는 빚쟁이들의 천국으로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직장생활. 유흥업소도 피하며 성실하게 다녔고, 아르바이트로 부족한 돈도 채워봤지만, 남은 것은 빚 뿐이다. 무엇가 잘 못 되 었 다! ! ! ! !

[수필] 고시원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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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시원 생활은 2012년 2월에 시작되었다. 충무로에서 친구와 같이 살던 계약기간이 끝나고, 인천에서 신촌 쪽으로 출근하는 때였다. 구글에서 '고시원'이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하면 '고시원넷'이라는 사이트가 나오는데, 지역별, 지하철 역별로 종류별, 가격별 고시원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고시원, 고시텔, 원룸텔 등의 다양한 종류의 숙박업소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30~40만원 대라고 생각한 평균 가격 말고, 15만원, 50만원 등 최저, 최고가의 1인 생활 가능 공간 제공 업소들까지 나와 최저가를 찾기로 했다. 신촌 근처로 알아볼까도 했으나, 대학교에서 가까우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숭실대입구에서 가까운 서울대입구 부근의 고시원을 찾았다. 한달에 17만원. 밥과 김치는 제공되고, 교통편도 나쁜 것 같지 않아, 실(室)이 있는지 전화 확인 후, 방문하였다. 처음 방문하는 고시원. 어둑어둑한 조명에 매우 좁은 복도로 늘어서 있는 수 많은 방들. 학교 앞의 선배가 살던, 대학원 후배가 살던 고시원을 본 적이 있어 아주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내가 살 거라고 생각하니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고시원 생활을 결심한 나로서는 싼 값과 공동시설(화장실 등)의 청소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현금을 지불하고 세탁, 식사, 빨래 건조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1.8평 방의 문을 닫았다. 얼마 후,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시원 총무는 이동할 때,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다니라는 말을 하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왜 그 말에 눈물이 핑돌 정도로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첫번째 고시원 총무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성격 좀 있는 사람이라 억압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텔레비전은 보지 않기 때문에 책상위에서 치워달라고 하여 이동시켰고, 맥북에 USB to Lan 케이블을 이용해 인터넷을 사용했다. 음, 그랬던 거 같다. 벌써 부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고시원으로 가는 길의 할인 마트를 잘 봐두었는데, GS마트가 규모도 크고 괜찮은 거리에 있었다. 그곳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카레와 짜장을 대량으로 사서 밥하고 김치로 끼니를 가끔 때웠는데, 그 이후로 카레를 싫어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카레를 좋아하지 않는데, 완전 증오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유감이다. 짜장은 아직도 먹는데, 어려서 그런지 질리지 않는다.(어떤 영화에서 어른과 어린이를 구분하는 기준을 짜장면을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로 나눈 적이 있다.) 카레와 짜장을 어떻게 해서든 처리해야 했는데, 곤혹을 치르며, 1주에 한 번 정도만 먹는 걸로 하고, 아예 밥을 거르기 까지 하였다. 다행이 그 때, 참치를 발견했던 것 같다. 참치와 밥을 비벼 먹으면 그런데로 끼니를 때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추참치를 먹으면 김치를 안 먹어도 전혀 문제가 안되었다. 빨래를 하여 방안에 너는 일, 밥먹고 설거지 하기 등은 큰 문제 없이 해결하였으며, 화장실 사용도 출근 시간에 타이밍을 놓치거하 하는 등의 일은 없었다.
서울대입구 근처에 전 직장 상사의 집이 있어, 그 분의 권유에 의해 낙성대 근처의 관악구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등록하였다. 월, 수, 금 새벽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실내 수영장에서 진행되었다. 정신력이 높은 때였는지, 한 달은 문제 없이 다녔는데, 갑자기 어금니의 금이 가는 바람에 발치와 치료, 여러 이유로 몇 주를 빠지고 더 이상 결제를 하지 않게 되었다. 3개월 등록하여 2개월 남짓 이용한 수영 수강이었다. 그런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던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추운 겨울 자전거를 타고 어둠을 헤쳐 수영장에 도착한 젊은 혈기는 지금 생각하면 짜릿하다. 귀가 시려웠지만 모자를 쓰면 시야 확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모자를 적당히 덮거나, 쓰지 않고, 페달을 밟은 5시 30분의 열정. 그건 군대에서 근무를 서기 위해 12시나 2시, 4시에 상황실로 올라갈 때, 맞았던 싸늘한 바람을 연상시켰다. 내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찬 공기를 받는 느낌은 너무 자유로워 초반에는 열심히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수영장에 다녀와서 빵으로 주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호이호이 호떡이 정말 저렴했으며, 샤니에서 나온 밤만주도 값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가끔 컵라면도 먹고, 팝콘이랑 맥주로 외로움을 달랬다. 호이호이 호떡은 지속적으로 사 먹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가격대비 포만감이 굉장히 높은 상품이다. 어렵고 힘들 시절 이런 일용할 식품이 있다는 건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었던 것이다.
신촌으로의 출근이 끝나고, 곧 구로디지털단지로의 출근이 정해졌다. 굉장히 가까운 거리이다. 2달 정도인가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가끔 지하철을 이용했다. 자전거를 자동차들이 있는 곳에 묶어 놓았는데, 강제 철거하겠다는 경고를 받은 후로는 자전거가 세워진 자전거 전용 주차장(?)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도 뭔가 굉장한 서러움을 느끼며 경고 문구가 적힌 종이를 아무데나 꾸겨 버렸다.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면서 투표기간인 동네에서 국회의원들을 원망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버스와 지하철의 붐빔을 겪는 이들에게서 우월감을 느끼면 페달을 밟았다. 크리티컬 리전인 신림을 지나 낙성대를 거치면 서울대입구로 가기전에 고시원에 도착해 신한은행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눈치가 보였지만, 신한은행 직원인척 하며 또는 고객인 척하며 비올 때 비도 피할 수 있도록 괜찮은 자리에 자전거를 세웠다. 사장 자리라며 공간을 못 쓰게 한 주차 공간에 당당하게 자물쇠를 건 적도 있다. 자동차게 주차하기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 자전거를 세워도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무사했고, 술마시고 귀가할 때까지만 해도 잘 버텨 주었다. 어느 날 음주 라이딩(?)을 하다가 신림역 부근의 가파른 언덕에서 앞 바퀴가 심하게 마찰되면서 타이어 밖으로 튜브가 빠져 나왔다. 낭패였다. 자전거를 낙성대 부근에 걸어놓고 걸어갔다. 일이주 뒤에 자전거를 구입한 대학원 동기 부모님의 운영하는 매장에서 수리를 받았다. 장갑이랑 건전지 등을 받고, 세척해 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렸다. 자전거를 할인 받지 않았기 때문에 튜브 교체 등을 무료로 할 수 있었으며, 윤활제도 받을 수 있었다. 비타500도 주셨는데, 지하철역 계단에서 봉투를 뚫고 떨어지는 바람에 마시지 못한 유리병이 깨져버렸다. 자전거를 잘 이동시켜 서울대 입구로 다시 옮길 수 있었으며, 관악구청 등에 묶어 놓았다. 얼마 안 있다가 신한은행 공사로 주차장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여러 이유로 관악구청 앞이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지방 출장 프로젝트가 잡히고 4개월 동안 머물렀던 고시원을 빠져나왔다. 나가기 며칠 전 고시원 총무는 입실원과 큰 다툼이 있었다. 입실원의 소란이 원인이었으며, 강압적인 총무의 명령조가 섞인 말투가 문제였다. 어떤 나이든 여성은 문을 누가 자꾼 연다고 항의 하기도 했으며, 연로하신 할아버지는 '독재'라고 외치며 자신의 자유를 억누르는 총무에게 역정을 냈다. 상스러운 욕을 하며 싸웠지만 난 이어 플러그를 끼고 나갈 날을 기다렸다.
두 번째 고시원은 잠실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총무는 서울대 입구보다 성격이 괜찮았다. 호실에 해당하는 신발장 번호에 누군가 신을 넣어놓아 다른 신발장을 쓸 수 밖에 없었지만, 16만원에 이용할 수 있었으며, 에어컨 앞의 가장 구석자리가 할당되었다. 가장 싼 방으로 책상이 없고 책장만 있는 열악한 구조였다. 천장이 대각선으로 낮아져 그 방향으로 발을 뻗을 수 있었고, TV가 놓여져 있었다. 그렇게 작은 방에서 그렇게 작은 TV를 볼 수 있다는 건 신기(?)에 가까웠으며, 머무르는 동안 TV를 몇 번 보았다. 여기서는 공유기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맥북을 사용하는 나로서는 무선 인터넷을 이용해 휴대폰의 WI-FI도 이용하려는 생각으로 친구에게서 받은 공유기를 이용했는데,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음 날 전화가 오더니 공유기 얘기로 나를 또 슬프게 하였다. 정말 돈 없으면 눈물나는 일들이 많다. 아무튼 주인한테 소심한 변명과 항의를 하긴 했지만 아쉬운 건 나이므로 저녁에 들어와서 공유기를 해체하고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총무에게 말하러 갔다. 총무와 주인의 통화를 통해 내가 공유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시킨 뒤, 허부에 내 방에 해당하는 랜선을 다시 꽂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인터넷은 가끔 잘 끊어지긴 했지만, 맥북 무선 공유로 휴대폰 WI-FI를 쓰는 일은 잦았다. 저렴한 요금제 사용을 위해서는 3G 데이터를 아껴야 했기에 필요할 때만, 이용했다. 서울대입구에서나 잠실에서나 마찬가지였는데, 통화를 할 때는 밖에 나가서 하거나 이불을 덮고 아주 조용하게 속삭였다. 옆방의 코고는 소리 TV소리는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서울대입구에서 있을 때, 일본노래로 된 모닝콜은 살인 충동을 느끼게 한 적도 있다. 잠실에서는 다행이 맨 끝방이라 피해가 적었다. 맞은 편 방으로 총무가 가끔 와서 운동을 하자고 하며 같이 나가는 일이 있었으나 큰 피해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매우 더운 여름이라 미니 선풍기도 갖다 주었는데, 더위를 많이 타는 총무 덕분에 에어컨과 인접해있던 나는 그나마 혜택(?)을 받았다. 매우 싼 섬유 유연제를 썼는데, 향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칙칙한 고시원 냄새는 어디나 같다. 그래서 나는 섬유 탈취제를 항상 갖고 다니며 난사하는 일이 생활화 되었다. 입실자 중에는 얼린 생선을 후라이팬에 튀겨 먹는 사람이 있었는데 냄새가 많이 나서 좋지 않았는데, 퀘퀘한 냄새보다는 나았기에 이해했으며, 오히려 안타까운 생각까지 들었다. 서울대입구에서는 바퀴벌레가 있어서 약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잠실에서도 사용하여 예방하였다. 또 다른 기억으로 김치를 후라이팬에 볶아 먹는 이가 있었다. 그 때는 그에게 삼겹살이라도 사주고 싶은 동정을 느꼈다. 그런데 내 처지를 생각하니 큰 절망감을 느끼며 이불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잠실에서는 두 달 입실료 지불 후, 10일 정도 더 있으면 지방으로 가는 일정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10만원을 더 주고 열흘을 있었다. 돈이 좀 아깝긴 했지만, 인천에서 다니기엔 답십리가 너무 멀어 밥을 많이 먹자는 얄팍한 생각과 시간 절약이라는 생각으로 생활했다. 버스에 맛을 들이면서 버스와 지하철의 환승 편의성을 체험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여유는 그 때가 절정이었던 것 같다.
지방 출장이 끝나고, 가락동 쪽으로 성당을 다니면서 오금동에 고시원을 또 잡았다. 값을 같은데, 침대가 없었다. 뭐 전에 있던 곳도 침대라고 하기보다는 매트리스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없어 바닥에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또 울컥하였다. 그래 좀 더 참아보자는 생각으로 입실했다. 보통 입실 초에는 현금으로 주는데, 나름 경력(?)이 있어 당당하게 인터넷 이체를 했다. 고시원장은 텔레뱅킹으로 입금을 확인하고 입실 증을 써줬다. 아, 정말 서럽다. 다음 날 보니 날짜도 하루가 잘 못 되어 있어 수정했다. 마지막 고시원은 엘레베이터가 있고, 샤워실도 두 개라는 메리트(?)가 있었다. 화장실은 좌변기가 아니고, 바닥에서 자야했지만 감수할 명목이 있던 것이다. 게다가 책상과 수납장의 활용도가 그나마 높았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역시 매트리스가 없어서 그런지,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소음을 막을 수 없었다. 입실 초기에 있던 걸레(?) 같은 수건으로 문틈을 막았으며, 발소리는 이어플러그로 방어했다. 그러나 이 둘을 막을 수 없어, 겨울 잠바나 후드 짚업을 입고 귀를 막았다. '그해 겨울을 유난히 추웠다.' 매년 내가 하는 멘트이다. 항상 겨울은 시련을 맞게 된다.
오늘은 고시원 생활 마지막 날이다. 월세를 계약했기 때문이다. 참치와 라면이 하나씩 남아있다. 내일은 뭘 먹을지 좀 고민하다가 라면을 먹을 것이다. 참치캔의 휴대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김치를 하나도 먹지 않았다. 참치, 라면, 호이호이 호떡, 초콜렛, 골든볼이 일용할 양식이었다. 끼니로 이런 것을 먹으며 근근히 살아가는 자신이 비참했다. 밖에서는 5천원 이상의 식사를 하지만 혼자서는 하층민의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 월세로 옮기면 더 열악하게 살아야할 것이다. 대출 이자를 갚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시원에 산다는 말은 안 해도 되기 때문에 창피함은 감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무 때나 편하게 통화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화장실에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혼자 쓰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는 씀씀이의 자유를 구속했지만, 창피해서 불편한 느낌을 조금은 해소해 줄 것이다.
'가난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불편한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그런데 창피함을 참지 못해 불편하다. 좁은 건 참을 수 있는데, 남들에게 거주지 없이 관(棺)에 산다고 말하는게 불편하다. 박민규의 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는 좁은 복도에서 밀착하여 길을 비키는 상황을 잘 묘사했다. 내가 있었던 고시원은 실제로 두 사람이 지나가기 어렵다. 게다가 발뒤꿈치를 들고 이동하는 배려심(?)을 보여줘야 한다. 그건 내가 쿵쿵거리는 소리를 견뎌봤기 때문에 아량을 베풀 수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한 상황이 있겠지만, 더 이상 내려가다간 미쳐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 고시원 탐방은 마치겠다. 이제 반지하 월세로 넘어간다. 대출이자를 갚는 빈한한 생활을 통해 하우스푸어(?), 아니 그냥 가난한 채무자의 생활을 체험하러 간다. 핑크(PINK)족이라고 있다. Poor Income No Kids. 난 그냥 PINK 다. Poor Income, No Know-what(수입이나 재산이 없어, 목적의식을 갖기 어려운 상태). 아, 마지막 고시원에서는 세제가 별도였다. 갑을고시원은 휴지가 별도였는데, 참 여러가지 옵션이 존재한다. 월세방에 냉장고가 없는데 세제를 써서 세탁하려면 하나 사야할 것 같다. 잠실 고시원에 있을 때 구입한 다이소의 2000원짜리 내 양은 밥그릇이 책장 위에서 빛나고 있다.

그 밖의 참 기록할 만한 일들이 많다. 빨래를 널기 위해 빨래집게를 사용하거나 사무용 더블클립을 썼던 일, 맥가이버 칼로 벽에 나사못을 박았던 일, 마지막 고시원에서 랜선을 이용해 빨래줄을 만들었던............. 테이프를 이용해 청소하고, 샤워기를 파손시킨 일 등. 비상탈출로를 보며 화재대비책을 세우게 한 고시원에 살았던 숭고한 사람들(?, 예전에는 고시원 화재 사고가 많았다. 소설에 조금 드러나 있다.) 개인정보 수집 정책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입실원서. 내일 빠진 물건 없이 잘 챙겨야 할텐데. 일찍 일어나야겠다.

복도에서 사람을 마추지면 시선을 내리고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다. 서로 부끄러우니까. 

대학원 동기가 이런말을 했다. 고시원에 간다니까, 그런데 가면 사람들이 손도끼를 들고 다닐 것 같다고 했나? 그는 비싼 월세를 내며 수입에 맞지 않게 살고 있었는데, 그런 서울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하우스푸어들을 양산시켰을 것이다. 지금 그는 어떻게 살까? 뭐 내 자신이나 걱정하자. 북한사람들이 뿔이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환경을 만드는 세상이 싫다. 손도끼라니.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인다. 물론 코쿤족, 히끼꼬모리처럼 TV만 보는 답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열심히 살고, 상황을 진전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고시원 산다고 무시하지 마라. 허영에 찬 니들 보다 낫다!

[헌혈] 100번 하면 명예의 전당에 등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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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기록할 만한 일은 헌혈 100회 달성이다.


비록 무료 라식수술 이벤트에 당첨되지는 못 했지만, 양적으로 헌혈 횟수를 채웠다.


후배의 동생은 조혈모 세포를 기증한다는데, 나는 서른이 넘어서 여기까지는 못할 듯 하다.


기부를 못하니 몸으로 때우자는 정신으로 피를 기부해 온 나는 장기까지 사후 기증한다고 했으니 할만큼 했다.


집에 있는 50원짜리 1개와 10원짜리 5개를 구세군 자선냄비 안에 넣으며 언제쯤 나도 1억원짜리 수표를 넣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돈으로는 절대 기부할 수 없을 것 같고, 지적 노동이나(좋은 말로 재능기부) 몸을 던지는 것으로 대신해야할 것 같다.


헌혈 100번하면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달라지는 건 없다.

[월세]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도 투표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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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시원의 엘레베이터를 타려다가, 우편함의 투표용 우편물을 보았다.


많았다. 주소지가 고시원인 사람이 그 만큼 많다는 것이다.


난 다음주에 떠난다.


반지하의 월세를 계약했기 때문이다.


열 흘이 넘어가고 있는데, 보증금을 구하기 위해 대출을 신청해야 한다.


2년 정도의 직장생활로는 크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없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고시원보다는 나으리라는 생각으로 계약을 했다. 


사실 고시원에 산다고 말하기 창피해서, 월세로 전환한 것이다.


고시원은 밥이라도 나오고 쓰레기 버릴 걱정을 안 해도 되는데, 월세는 밥도 해야하고, 쓰레기도 버려야하고, 각종 세금을 혼자 부담해야 한다.


그래도 지인들에게 고시원에 산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게 좋을까?


고시원에 살면, 적어도 대출 이자 걱정 안하고, 맛있는 것을 별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는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 하게 생겼다.


나도 하우스 푸어인가?


아니, 걍 하층민일 뿐이다.



국가는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투표권을 준다. 앞으로 살날이 막막하다. 2년 동안 반지하 생활을 거치면, 과연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노래] 10cm - Fine thank you an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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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m 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래와 같은 가사를 썼다는 건 동병상련할 일이다.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에서도 밴드를 하려고 연습실을 구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나오는데, 이 노래를 들으니 그들의 신세가 보이는 듯 했다. 정말 좋은 환경에서 어려움 없이 노래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순탄하게 가수의 길을 걷는 이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유명세를 탄 가수 싸이는 고생을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뭐가 되었든, 군대도 두 번 갔다오고, 문화관광부에서 상도 받은 박재상은 국가의 혜택을 무진장 받은 인물이다. 불공평함이 넘치는 사회에서 좁은 방에 갇혀 불평이나 써야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불평을 서슴치 않던 망치부인도 구속되었다. 유명세를 타지 않으면 파급력이 크지 않으므로 조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 조용 조용히 살면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군대를 안 가도 조용히 살면 안 걸린다. 오늘 저녁은 복부비만의 둔화를 위해 거르고 내일 영양분을 보충해야겠다. 라면은 짜다.






너의 얘길 들었어 너는 벌써 30평에 사는구나

 

난 매일 라면만 먹어 나이를 먹어도 입맛이 안변해

 

I'M fine thank you thank you and you

 

우리 옛날에 사랑을 했다니 우스워

 

좋은 차를 샀더라 네가 버릇처럼 말한 비싼 차

 

나도 운전을 배워 이리도 얼운건지 모르고

 

I'm fine thank you thank you and you

 

우리 옛날에 사랑을 했다니 우스워

 

나는 정말로 괜찮아 행복해 내 걱정 말고 잘살아

 

I'm fine thank you thank you and you

 

우리 옛날에 사랑을 했다니 우스워

코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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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온다.

코가 막혀서 숨을 쉬기가 어렵다.

그래도 수확의 계절 가을이라, 통장에 잔고가 꽤나 늘어날 것 같다.

이번 달은 엄청 돌아다녀서 교통비가 120,000원 정도 나올 예정이다.

다음달에도 경부라인을 돌아다닐 예정이라 꽤 많은 금액의 지출이 예상된다.

집에 아이스크림이 없으니 초콜릿이나 먹어야 겠다.

담배는 안 땡긴다.

지금의 게으름은 내일의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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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부리면 지금은 편하겠지만, 결국 가난이나 나중의 더 힘든 과업으로 이어진다. 몸이 편하다. 내일 고생할게 분명하다. 쳇.

[자조]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사태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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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의자 놀이>를 읽었다. 이 책은 헨리 나웬 신부님의 책에 대해 모임을 갖고 나서 추천 받은 책이었다. 짧기는 했지만, 공지영이 조지 오웰처럼 르포르타주를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헨리 나웬의 책에서 제시한 관조하는 태도로 계속 갈 듯 하다. 투쟁에 대한 무의미함은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방에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 있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뭐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는 때는 아니나, 정권에 의해 현대차가 독식하고, 쌍용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초토화 된 것은 정말 개쓰래기같은 개자식들의 농간이 확실하다. 나쁜놈들에 의해 짓밟혀진 것을 다시 세우긴 힘들다. 서명운동? 후원? 절대 안 된다. 힘으로 안 되니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 서로 다칠 수 밖에. 아니 힘 없는 사람들만 다칠 수 밖에 없다. 동일 선상에서는 이길 수 없다. 다른 전략으로 이겨야 한다. 평화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하는 어리석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괴롭다.

[자조]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사태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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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의자 놀이>를 읽었다. 이 책은 헨리 나웬 신부님의 책에 대해 모임을 갖고 나서 추천 받은 책이었다. 짧기는 했지만, 공지영이 조지 오웰처럼 르포르타주를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헨리 나웬의 책에서 제시한 관조하는 태도로 계속 갈 듯 하다. 투쟁에 대한 무의미함은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방에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 있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뭐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는 때는 아니나, 정권에 의해 현대차가 독식하고, 쌍용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초토화 된 것은 정말 개쓰래기같은 개자식들의 농간이 확실하다. 나쁜놈들에 의해 짓밟혀진 것을 다시 세우긴 힘들다. 서명운동? 후원? 절대 안 된다. 힘으로 안 되니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 서로 다칠 수 밖에. 아니 힘 없는 사람들만 다칠 수 밖에 없다. 동일 선상에서는 이길 수 없다. 다른 전략으로 이겨야 한다. 평화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하는 어리석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괴롭다.

[상념] 내 10년 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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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주거 환경에 살다보니, 내 10년 후의 모습이 깜깜해 진다.


TV나 보며 시간을 때우는 변변치 않은 삶을 사는 이들을 보며, '아! 나는 10년 후에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저렇게 살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달 후에도 유사한 형태의 주거지를 알아볼 수 밖에 없는 신세에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내돈, 내돈'을 외치고 있다. 허영을 부리지 않으면서 적당한 수준의 주거지를 찾아볼까 하나 지금 있는 곳 만한 데를 찾을 수 없다. 


이 곳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워머, 난 외국인 노동자구나.

원래 거주지도 서울이 아닌 인천이니 타지에 일하러 온 일개 노동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이 나보다 더 값이 나가는 방에 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한 없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길래 지금 이렇게 밖에 못 사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하면 후회가 몰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랴, 성격이며 운명인 것을.


결혼이라도 하면, 그나마 직장인들이 유지하는 주거 형태에 입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보지만 카드 한도초과로 현금을 주시해야 하는 상황은 이른 더욱 어렵게 한다. 오늘은 큰 맘 먹고 머리에 투자를 했는데, 어떻게 보면 더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또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의식주에 사용하지 않고, 외모에 더 돈을 들인다라. 뭐 가치관의 차이다. 이번 의료비 정산이 끝나면 저축모드로 들어갈지 다른 데로 돈을 쓰게 될지는 알 수 없다. 10년 후의 모습을 다시 한 번 그려보며 이 어두운 쪽방에서 출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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