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박영식 홈페이지

[경험] 등기 치기

suritam92022.04.30 22:39조회 수 44댓글 0

    • 글자 크기

더 이상의 이사는 체력적으로 힘들어져서 소형 아파트(오피스텔)를 계약했다.

 

이미 이사한지 오래되었지만, 글을 바로 작성하기엔 꺼려지는 것들이 있어 이제야 쓰기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세입자가 아니므로, 버릴거 다 버리고 살 거 다 살 것이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마포작은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게 되었다.

 

2~3시간만에 완독하고 나서 눈물이 났다는 추천글에 공감하긴 했지만, 역시나 좋은 조건에서 출발했던 그녀라 반감되었다.

 

어릴 때 가난으로 인해 반지하에서도 살고 이사를 2년에 한 번씩은 갔던 것 같고, 인천으로 자가로 부모님이 이사온 이후로는 이사에 대한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내가 직접 이사다니면서 부모님의 고생을 조금은 이해했지만, 나야 홀몸이므로 부양 가족을 걱정해야 할 일은 없었다.

 

지금 어머니와 형이 사는 집이 노년까지 지내실 것으로 생각되나 재개발이 된다면 한 번쯤은 더 옮기실 것이다.

 

이제 나의 이사 이야기를 쓸 차례다.

 

주민등록 초본을 발급 받으면 전입한 이력을 확인할 수 있어 이를 보면서 적어 보려고 한다.

 

꽤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 보다 많지 않았다.

 

처음은 서울 중구 필동으로의 이사이다.

 

이사라기 보다는 친구가 얻은 집에 월세 내고 살면서 출장으로 6개월 간은 거의 없었다.

 

인천집으로 친구의 짐을 옮길 때, 세탁기와 냉장고를 받았던 것 같다.

 

그 후, 주소를 부모님 집으로 해놓고 계속 출장을 다녔던 것 같다.

 

이제 생각났는데, 신림동 고시원과 석촌고시원, 오금동 고시원(샤워기를 파손한 건 술 때문이다.) 생활이 있었다.

 

천주교 행사를 통해 가락동 성당에서 봉사활동한 인연으로 송파동으로 이사하여 송파구 생활을 해봤다.

 

고시원의 답답하고 소음에 민감해야만 하는 생활을 버리고 반지하로 들어갔는데, 이전 주인이 놓고간 세간을 받아서 사용했다.

 

나올 때 냉장고는 처분하고 조립식 테이블을 여러 해동안 유지 해왔으나, 영상 촬영한다고 가지고 왔다가 처분 당했다.

 

트럭의 공회전 엔진 소리에 잠을 못자고, 보일러를 고치다가 전기 차단기가 내려져서 주인집과 옆집의 할머니 방까지 보게되었다.

 

결국 차단기는 주방 수납장에 있음을 알고, 20000원을 집주인에게 받을 수 있었다.

 

보일러 수리비는 받지 못했지만, 조의금으로 생각하며 송파 생활을 마쳤다.

 

그분은 내가 이사 가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다른 데로 가셨다.

 

가락동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송파에서 멀지 않은 건대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사다닐 힘이 있어서 10개월을 계약하여 방음이 되지 않는 원룸 생활을 했다.

 

근생빌딩이라 주거용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었는데, 주거용 월세로 건대와 세종대 학생들을 품었다.

 

차가 있는 세입자가 있었는데, 주차를 더럽게 해서 언젠가 술을 진탕마시고 담배와 쓰레기를 투척했다.

 

아침에 수습이 가능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60만원을 주고 합의했다.

 

그 전에 사이드미러도 치고 다녀서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므로 수업료를 지불했다.

 

짧은 건대 생활이 끝나고(광어 두마리 횟집에서 몇 번 회를 사먹었던 것 같다) 강남으로 이동했다.

 

 

송파와 광진사이에 관악이 있었는데,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가 건너 뛰었다.

 

2014년 관악으로 간다.

 

처음으로 월세를 살았는데, 이는 회사 사무실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월세를 받았다.

 

물론 중간에 이직을 하여 월세는 다시 내가 냈던 것 같다.

 

방 세개에서 살면서 아직 가락동 성당 활동을 지속했다.

 

친구를 소개해 좋은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방에서 친구도 재워주고 교육생들도 재워주고 별 일이 다 있었다.

 

편의점 알바를 흠모해 보았지만 담배피는 것을 보고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왜 그런지 몰라도 떠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암튼 관악구는 정말 자취생이 거치지 않고 가기 힘든 곳이다.

 

"하재영" 작가도 신림동을 찍었고 애증의 동네이다.

 

겨우 겨우 2년을 채우고 서울대쪽으로 통학을 하는 손녀가 있어 할머니인 집주인이 거주하신다고 하여 잘 빠져나왔다.

 

창문이 너무 오래되어서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소리가 난다고 나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몇 번 받아주다가 수신 찬단을 하였다.

 

난 광진구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살아보지 않은 동네에 사는 것이 위시리스트였기에 건대 앞으로 가서 계약을 했다.

 

그당시 집을 같이 보러 가준 친구가 중구 필동에서 같이 살았던 군대 동기이다.

 

한 기수 위였지만, 동갑이었고 대학교도 편입하여 좋은 곳에 취직했다.

 

 

광진구까지 찍은 이후로 다시 반지하 반포동으로 가게된다.

 

화양동에서 입금이 되지 않아 보증금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짐을 문 앞에 놓고, 10년간 원격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무실로 갔다.

 

강남 술집 한식 부페를 먹고 짐을 정리했다.

 

반지하 특성상 어두워서 AAA건전지 3개가 들어가는 센서등을 사서 설치할 생각도 해봤지만 일반 등에 비해 너무 어두웠다.

 

뭐가 좋은지 옆 방은 남녀 둘이 복작복작 살았던 것 같다.

 

과메기를 먹으며 침대 다리를 부셔 먹었지만 테이프로 붙이고 이사를 나갔다.

 

프리랜서식 계약으로 돈을 조금 벌게되어 사무실 근처로 이사를 계획하게 된다.

 

2년 계약이었지만 1년만 하고 다른 세입자를 기다렸다.

 

전세 계약서를 꼭 주고 가라는 집주인에 대해 이를 찾느라 약간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소리를 듣고 나갔다.

 

이후 세입자는 월세였고, 복비까지 내가 지불해 주는 것으로 해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할머니 할아버지 집주인들을 너무 꼬장꼬장하다.

 

화양동에서는 형과 나이가 같은 건물주였는데, 대출이 많이 들어있고 불법 증축도 있는 문제(?)가 많은 물건이었다.

 

 

사무실 근처인 서초동은 역시 원룸이었지만 4층이었고, 지하로 지하철이 지나다녀 상당히 운치(?) 있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잘 되어 있었고, 사용량이 많지 않아 누가 타고 있으면 깜짝 깜짝 놀랐다.

 

메인 현관에서 5만원을 습득해서 잘 썼다.

 

밤에는 고양이 울음소리, 아침에는 윗층에 사는 사람의 알람이 날 괴롭혔다.

 

지하철 소리는 정말 낭만적인 소리였던 것이다.

 

서초동 사업도 접고 청라로 업무 공간으 옮겼다.

 

그래서 청라에 집을 알아보며 출퇴근 했지만 1년은 그대로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청라 업무도 수월하지 않아 같은 계열사로 옮기기 위한 시도를 하여 성공하였다.

 

그래서 청라로 이사하여 투룸에 차까지 샀는데, 고객사의 갑질로 퇴출되었다.

 

코로나 초반으로 2~3개월은 작은 일들을 하며 여행을 다녔다.

 

대학원에 들어가 학교를 다녔으며, 1년 간은 오프라인으로 회식도 많이 하고 어르신 동기들을 많이 만났다.

 

산업통상자원부 일을 하면서 군대에서 장교를 했던 (수석으로 기사도 났던) 분과도 몇 번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연락이 되고, 환경부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동서울대에 강의를 나가게 되면서 상주 프로젝트가 불가능하게 되어 항공사 홈페이지 개발을 하게 된다.

 

강원도와 서울 소재 두 군데를 하고 나서 지난 토요일에 마무리 했다고 믿고 싶다.

 

청라를 떠나기 전에 코로나에 걸려야만 했다.

 

넓은 공간에서 쉼을 유지해야하는 것도 있고, 다른 프로젝트를 나가서 격리되면 곤란하므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행이(?) 양성이 나와서 일주일 격리 하면서 이사 준비를 할 있었다.

 

오래전부터 동경해 왔던 마포구에 매매 계약을 하고 지난 4월 입주하여 출장 가기 전 여유를 즐기고 있다.

 

다음주 부터는 지방 출장이다.

 

군산, 완도, 목포, 진도를 거쳐 여수에서 여정이 마무리 된다.

 

현재 이사온 집은 청라와는 다르게 쓰레기 버리는 것이 조금 신경쓰이긴 하지만, 어디나 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일단 상층에서 층간소음 피해를 당하지 않는 최상층으로 왔다.

 

고층임에도 엘리베이터가 한 대 밖에 없어 불편하긴하지만 버틸만 하다.

 

옥상에서는 그래도 담배피기가 어렵지 않다.

 

시장, 마트, 지하철역이 가깝다.

 

배수구 냄새는 잡았고, 책상과 매트리스, 서랍장도 자리를 찾은 것 같다.

 

오븐도 사고 오디오도 선물 받았다.

 

드럼 세탁기 분해 청소 이후로 배수가 안되는데, 세탁기 배수관의 높이 문제인 것으로 보여 조정하긴 했는데, 한 번 사용해 봐야 한다.

 

옷 넣을 곳만 좀 더 확보되면 좋을 텐데 아쉬운 점이다.

 

2015년 준공 되어서 그런지 수납장은 잘 되어 있다.

 

샤워부스가 반만 막혀 있는 것은 아쉽지만 내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비데를 설치해야하는데 귀찮다.

 

일단 출장 기간 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니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수필] 행복은 후불인가요?

[원문보기]
요즘 통잔에 잔고가 없어, 교통카드는 후불식카드를 사용하고, 책이나 생활용품 등을 휴대폰 결제로 해결하고 있다. 최소한의 요건이 아니더라도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소비생활은 후불식이 되어가는 것이다. 사실 나의 모든 경제활동은 나중에 내가 지불할 것을 생각한 투자자들의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소비하고 있는 행복들은 후불로 계산되는 것이다. 신용카드의 경우 갚을 능력을 책정해 발급해 주고, 한도를 설정한다. 후불이다. 휴대폰 사용은 역시 후불제로 3개월 정도까지는 연체가 가능하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후불제를 지향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제도로 인해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을 양산했으며, 법제정으로 약화되긴 했으나 다른 형태의 후불 결제시스템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소비를 장려하는 것은 좋으나, 지불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소비를 조장시키는 것은 범죄다. 소비하기 편리해진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결제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선불같은 후불. 후불을 미끼로 소비를 부축이는 사회. 나 같은 소시민들을 점점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 아직 후불로 살 수 있는 한도가 많이 있는데, 이건 악의 탈을 쓴 판매자에게 속는 것이다. 행복을 파는 사람들. 후불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나중에 올 불행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게 한다. 행복을 선불로 결제하는 건 존 잔악하긴 하지만, 추후에 따라올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선 행복이 선불제나 무료로 거래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을] 김광진 편지

[원문보기]
가을을 타고 있다. 이 노래를 들으니 눈물이 난다.

"편지"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 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두겠소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 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기사] 북데일리 - 수학으로 생각한다.

[원문보기]
음. 메인에 아주 잘 보이는 자리에 위치했다. 다음엔 좀 더 잘 써야지.

코가 막힌다.

[원문보기]

추운 겨울이 온다.

코가 막혀서 숨을 쉬기가 어렵다.

그래도 수확의 계절 가을이라, 통장에 잔고가 꽤나 늘어날 것 같다.

이번 달은 엄청 돌아다녀서 교통비가 120,000원 정도 나올 예정이다.

다음달에도 경부라인을 돌아다닐 예정이라 꽤 많은 금액의 지출이 예상된다.

집에 아이스크림이 없으니 초콜릿이나 먹어야 겠다.

담배는 안 땡긴다.

[수필] 노동착취 방법론

[원문보기]
아직도 6 sigma 전략은 효율적인 생산 방법론으로 추대된다. 하지만 사회 구조의 변화 즉, 지식정보사회로 이전하면서 이 방법론이 효용이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최근이긴 한데, 최근을 붙이기엔 오래된 느낌이다) 토요타의 대량 리콜사태, '토요타의 어둠'이란 책을 통해서 본 그들의 전략은 현 시대에 맞지 않다. 6 sigma는 단순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통계적 불량률을 줄이는 방법론으로 제조업의 기계화된 실정에는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식을 생산하고, 창의성을 요구하는 현재에는 그런 컨베이어벨트에서 나오는 생산 방식으로 생각이 창조되지 않는다. 제조업의 기계적 관점을 사람에게 적용하니, 인재들은 기계화 되고 창의력을 잃거가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이 추대받고 있으니, 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잠재력을 가진 인력은 좌절하거나 도태되고, 재 역할을 하지 못한다. 6 sigma에는 MECE라는 것도 있었다. 이는 집합, 확률과 통계에 나오는 개념인데, 업무 분담이나 일처리에 중복이 없고, 누락 없이 할당하는 방법론이다. 물론 말은 참 좋다. 하지만, 할당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업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정보 교류가 되지 않으므로 시너지를 낼 수 없고, 한 사람의 실수에 의해 그 업무가 누락되면, 그대로 빈 공백이 되고 만다. 적절한 공유 업무가 있고, 서로 원할히 공유할 수 있는 환경과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업무 할당에 대해 고려되어야 한다.
제조업에 적용되는 방법론을 사람에게 적용해 노동을 착취하는 빈틈없는 전략(?)은 점점 효용성 검증의 논란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존재하는 프로젝트의 수많은 방법론. 그건 말장난이며, 인간을 억업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농간이다!

[PHP] PHP를 쓸만하니까 쓴다.

[원문보기]
간단하게 빠르게 구성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꼽는다면 단연 PHP다.

물론 큰 프로젝트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기반 구축부터 리소스도 많은 PHP를 안 쓸 수 없다.

그래 나 쓰레기다.

[수필] 지하철 안내 방송의 변화

[원문보기]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라는 방송이 바뀌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까지는 같지만, 임산부에 대해서는 부가 항목이 개선되었다고 해야하나? 처음에는 '배가 부르지 않은 임산부'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임신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을 칭했다. 지금은 '외형적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로 바뀌었다. 상당한 고민을 통해 이 안내 문구를 완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쓴 이글을 보면, 이 문장을 완성한 이가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배가 부르지 않은'이란 표현은 좀 오래된 표현으로 진부하고, 어감상 좋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표시가 나지않는'은 한자어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문장 자체가 길어져 역시 100% 만족하기 힘들다. 그냥 '임신 초기의 여성'으로 표현 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니, 제안할 수 있고 반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좋은 표현을 제안해 주기 바란다. '초기 임산부'도 배려하게 하는 세심한 노력이 훌륭하다.

[습작] 나는 돼지다/가야하기만 하는 사회/대기업은 젊은이의 무덤

[원문보기]

나는 돼지다
먹고 싶은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잔다. 혼자사는 즐거움을 마음대로 만끽하는 중이다. 주변에서 결혼을 언제하냐고 압박을 해서 다른 이야기로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겠다. 나의 원대하고 높은 목표에 대해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이다. 일단 내년 초까지는 현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그 후 부터는 새로운 사업을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내 후년 초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결혼하겠다는 식으로 한 2년 정도를 버는 것이다. 현재 계약한 집은 내 후년 말까지니까, 그 때 정도까지 혼자사는 즐거움을 누리고 더 이상의 결혼 소리는 떨쳐버리는 것이다. 물론 1~2년 지나면 애는 언제 낳느냐고 물어보겠지. 뭐 사람이 다 똑같이 사는가? 정해진 길만 물어보는건 정말 싫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걍 돼지로 먹고 자고 꿀꿀거리고 싶다. 한 2년만 돼지로 살게 둬라. 지겨우면 사람으로 돌아오겠지.

가야하기만 하는 사회

태어나기 위해서는 산부인과에 가야한다. 그 때부터 우리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상황에 부딪치며 평생 그 소리에 매달려 산다.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에 가야하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야하고, 학교에 가야한다. 학원을 비롯해 어디 다니니? 어디는 안 가니 소리를 계속 듣게 되며 누군가에게도 어디에 갔다오니 어디도 가니? 가 인사가 된다. 오늘 같은 명절에도 인삿말은 어디 가세요? 가 된다. 또는 어디 가시죠? 이제 나이가 차면 대학에 가야하고 군대는 언제 가냐는 소리로 이어진다. 아직도 갈데는 많고 갈길은 멀다. 장가와 시집은 언제 가냐는 소리를 시작으로 산부인과를 통해 가야할 곳이 순환된다. 인간은 아니, 한국인은 왜 꼭 이리도 못 보내서 안달을 할까? 연휴에 집에 가기 싫어서 이런 가기 싫은 소리를 해본다. 낼도 귀찮으면 안 가야지. 어차피 설은 일요일이니까, 토요일도 푹 쉬고 일요일에 잠깐 갔다가 월요일에 또 허튼 소리나 적어보아야겠다. 근데, 너무 즐겁다. 혼자서 하고 싶은 걸 다하니 행복하다. 아무데도 안 갈테니까 물어보지 마라!

대기업은 젊은이들의 무덤?
대표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대기업 취업에 목매다는 청년들에 걱정을 들었다. 나도 별 생각이 없는 후배들에게는 무조건 대기업에 가라고 말해준다. 생각이 없는 애들에게 다른 진취적인 것을 제시해주는 건 실패하게 만드는, 현혹시키는 아주 나쁜 사람이다. 대기업에 안 가고 사업이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청년들은 그런 소리를 듣기 전에 자신의 인생을 먼저 결정한다. 그러니, 굳이 지금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도전적인 삶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독서를 통해 어떤 걸 해보겠다고 생각해도 며칠 후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자주적인 사람은 그런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나아가 있으므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읽거나, 참고용, 시행착오를 줄이기위한 도서로 활용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처럼 애초에 어설프게 힘썼던 사람은 평생 실천하기 어렵다. 상황이, 문턱이 낮아지지 않은 한은 넘지 못할 것이다. 개인들이 생각하는 임계점이 다 다를 것이다. 요즘 협동조합이라는 기업형태가 나와 문턱이 훨씬 낮아졌다. 그래서 자영업으로만 멈물렀던 기업이 5인 이상의 협동조합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람이 모이니 조금 더 창의적인 사업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기업은 무조건 젊은이의 무덤은 아니다. 그곳에 가서 좋은 머리를 썩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그들은 어디를 가나 좋은 머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대기업은 오히려 우유부단하고 결정력 없는 이들을 돈을 주고 사회에서 걷어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필요없으면 자연히 버려지고 이를 아는 이들은 그 때 바짝 모은 돈으로 자영업을 하다가 망하거나 이직해서 시간을 갉아먹는다. 간혹 승승장구하고 잘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으나 라인이 아니면 이용만 당할 뿐이다. 난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돈의 유혹에 빠져 무덤으로 들어가거나 계속 2job, 3job을 뛰며 정신없이 돌아다니겠지. 대기업에 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어중이 떠중이들을 데려가 시장을 정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게 합리화 하는게 좋겠다. 꽃 중의 꽃 자기 합리화가 피고 있다. 그럼 난 무덤에도 못 들어가고 귀신처럼 떠돌면 되겠군. 슬프네.

[환급] 유가환급금

[원문보기]
이번에는 액수가 좀 많다. ㅋㅋ

[사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원문보기]
나는 지금 여기서 뭘 대충(집중해서, 어쩔 수 없이) 왜 하는 걸까? 집중이 되지 않거나,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게 되면,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한다. 집중해서 일이나 할 것이지, 잡념이나 하고 있다니 안 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강요된 의미없는 일들에 묻혀 정체성을 잃어가거나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었다. 제목을 여러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처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음',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음' 이다. 전자가 발전해 후자가 되기도 하고, 독립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전자는 사회체제에 이용당하는 경우고, 후자 역시 그런 영향을 배제할 순 없지만, 사회 발전에 영향을 받은 사례이다. 생각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작은 차이나 변화를 인식하고, 부조리함을 인식하거나 항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왜 지금 여기서 이런 글을 쓰고, 내일 또 정해진 일정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해야만 하는 것일까? 계속 계속 마이니치 마이니치 생각할 일이다.

이전 1 ...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78다음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