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되고 나서 더욱더 게을러졌다.
그러나 게으름에 자책할 필요가 없다.
더 부지런해지기 위한 게으름이니.
김치는 가난한 음식인가?
도시락을 집에서 어머니가 챙겨주시던 중학교 시절은 가난을 알 수 있는 나이였다.
육류나 가공 소시지도 조달이(?) 안 될 경우 계란 후라이가 그 자리를 채운것 같기도 하고, 넉넉할 때 계란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김치는 있는데 주변에 보여줄 만한 반찬이 없는 것에 대해 그 당시에는 크게 게의치 않았지만 은연 중에 어머니한테 전달이 되었을 수도 있다.
김치는 결코 가난한 반찬이 아니었지만 왜 반찬은 김치 밖에 없었을까?
마트의 그 흔한 비엔나 소시지도 그 당시에는 값비싼 부류였나보다.
육류를 흉내내는 분홍 소세지도 어려웠던 시기이고, 검은콩은 상당히 저평가된 반찬이었다.
요즘 올림픽 선수들에게 나오는 반찬은 얼마나 대단할까?
참치캔도 각에 들은 조미김 반찬도 정말 어려웠던 것일까 한다.
어머니는 화장실 불을 켜지 않았다.
혼자 사는 나는 화장실에 불을 켜지 않고 문을 닫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가족들이 있는 상황에도 불을 켜지 않고 빛이 들어올 정도로 문을 열어두고 사용한 것은 그리 유쾌한 기억이 아니다.
지금은 10년 이상 산 집의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살만한 집으로 만드셨다.
그러는 과정에서 묵은 짐들을 다 버리는 선택을 하셨다.
묵지 않은 제품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처분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예외를 둬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형이 학생 때 봤던 것들은 아직 좀 남아있다.
미련 때문인지, 판단이 안 서서 결정을 못하셨는지 아직도 남아있다.
나도 이제 화장실 불을 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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