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잡을 때 모션이 같다.
제스쳐.
직선이 아닌 아버지와 같은 라인.
직선이 아닌 바람을 피사물이 영향을 주지 않는 경험에서 오는 확률적 접근.
이를 기억하는 건 하나의 경험.
계곡에 놀러 갔을 때, 슬리퍼가 물에 떠내려 갈 때, 100m 이상을 달려가 줒어온 관심.
버려도 되는 신발이었지만, 수풀을 거슬러 내려가 신발을 캣치할 때의 짜릿함을 그 때 느끼셨을까?
지금 기억하시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내가 벌레를 잡을 때마다 벌레 잡기 모션을 할 때 달리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건 처음이지 마지막 가족 여행의 할 수 있었던 최선 이었을 것이다.
하나 더 방금 같은 사례가 있었는 데 그것은 굉장히 오래된 술을 오픈할 때 였다.
너무 오래되어 (아마, 오픈 예정은 없었을 거였다.) 내가 서을에 직장을 구해 왔을 때, 기분이 좋아 열려고 하다가 오버하셨을 것이다.(사람은 오버를 한다.)
입구가 개봉되지 않기에 손으로 안되어 치아로 하셨다.(이빠롤 까셨다.)
유리가 깨지면서 피도 났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닐 때,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닐 때,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팔도 잃고, 다리도 일고, 모든 걸 잃는다.
지금은 안 하시지만,... 나도 안 한다. 젊은 패기에 달리셨던 모습을 기억한다.
술병을 까면서 닳고 있는 치아를 희생하는 것을 안다.
아버지게 연락한건 굉장히 오래되었다.
3년? 체감상. 1년은 넘었다.
집에는 가지만 최근 1년 동안 집에 없다.
근처에 있는데, 봤으면서 적당히 피하는 것 같다.
자신이 다칠까봐 피하는 거 한 10%.
어머니가 다치는 건 가시적인 것. 아버지가 다치는 건 비가시적인 것.
내가 다치는 건 부모님께 가가식인 것.
난 3$@54다.
기록을 기록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돈 보다 중요하다.
아카이빙. 누가 한다.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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