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해서 나의 통장에 작은 집 한채를 살 돈이 들어 있었다면 과연 그런 그들을 썼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내 불만과 저항이 물질적 결핍에서 나온 것이라면 내가 쓴 그 글들이 저금통장의 무게만도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나는 그때 글을 쓰다가 펜촉을 부러뜨리면서 맹세했다. 네가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공간을 내 손으로 마련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다고.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그 유식한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더라도, 이따금 시골 머슴방에 등장하는 온몸에 털이 듬성듬성 난 촌스러운 도깨비라 할지라도,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영혼을 집 한 채와 바꿨을지 모른다. 62페이지
다들 영혼이라도 팔아서 집을 마련하고자 할 것이다.
도시 문화에 익숙해지고 산업 사회의 온갖 물건들 사이에서 자라다 보면 밭이나 논에서 자라나는 곡실들, 그 먹을 것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는 법이야. 백화점에 가면 대부분 먹지 못하는 것투성이잖니.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먹을 수 없는 상품들이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곳이 바로 도시라고 하는 곳이다. 93페이지
그래도 마트나 백화점 식품 코너는 아직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live + buy)
아마도 최초로 경쟁 사회를 경험하게 하는, 말하자면 삶의 게임에서 승자와 패자를 경험하게 하는 놀이라고 할 수 있어. 오늘날의 경쟁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을 쓰러뜨려야 자기가 앉을 의자를 확보할 수 있지. 그 의자에 앉기 위해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놀이인 거야. 114페이지
음악 의자. - 의자 빠앗기 놀이 musical chairs - 오타가 없는 유려한 글들이 모인 책인데, 유일하게 발견된 단어이다. 의자 앉기 게임으로 불리며, 저자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데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초로 경쟁 사회를 경험한다" 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빼앗다라는 표현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앉은 것은 '차지하기'의 개념이지 빼앗는 것은 또 다른 개념이다.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후자는 포기를 하기도 하므로 '빼앗기' 보다는 '앉기'로 보여진다.
방금 전에 쓴 글인데도 생각이 달라져서 다시 지우고 몇 번이고 고쳐. 방금 전에 쓴 글인데도 생각이 달라져서다시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는 거야. 지우개 달린 연필이 왜 있겠니. 쓰는 것과 지우는 것은 반대말이면서 같은 말이라구. 사랑도 그런 거야. 생각이 달라져. 그때 지우고다시 시작할 수 있어. 왜 지울 수 없는 잉크로 네인생을 쓰려고 하니.~중략~지금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컴퓨터가 위대한 것은 덮어쓰기가 가능하고 한숨에 모든 문자을 키보다의 삭제키 하나로 날릴 수 있다는 것야. 종이 위에 쓴 글이 아니라 액정 판에 뜨는 문자처럼 사랑해라. 137페이지
이 글은 이른 결혼에 대해 설득하기 위한 내용이다. 삭제는 쉬워 보이지만, 상당히 복잡한 과정으로 진행되고, 전자기적 신호를 기록하는 것이다. 링크를 끊어서 삭제된 것처럼 하는 경우도 있고, 자기정보를 의미없는 값으로 기록하여 삭제하는 방법도 있다. 결국 컴퓨터의 삭제는 또다른 쓰기로 "쓰는 것과 지우는 것은 반대말이면서 같은 말"이라는 저자의 통찰이 들어맞는 상황이다.
그런데 손자 손녀는 그렇지 않아. 자기와 동일시하는 거지. 할아버지와 손자는 궁극적으로 같은 자리에 앚아 있는 존재거든. 이걸 쇠사슬 이론이라고도 해. 쇠사슬을 봐. 반대로 결합되어 있어. 세로 가로 세로 가로, 이렇게 반대로 접합이 되어 있잖아. 그렇기 때문에 사슬과 사슬은 서로 어긋나지만 하나를 건너뛰면 같아지지. 180페이지
일리있는 이론이다.
[전화를 걸 수 없구나]
죽음이란 이렇게도 명백한 것이냐.
전화를 걸 수 없다는 것.
아이폰이 뭣인가
아이폰 2 아이폰 3
이제는 아이폰 4가
나온다고 하던데
~중략~
310페이지
~계속~
너에게 전화를 걸면
녹음된 여자의 목소리가
전원이 꺼져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하는구나.
모르는 소리 마라 이 바보들아
전원이 아니다
목숨이 꺼진 거다.
~하략~311페이지
이렇게 유치한 시를 쓰다니.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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