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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홈페이지

[영화] 올드보이

박영식2006.07.13 20:08조회 수 178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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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 이사람 영화 좀 탐독해야 한다. 감독의 에세이에서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기에. 다음 목표는 친절한금자씨, 복수는 나의것, 죽어도 좋아다.. 아직 많이 남았군. 올드보이에서 나오는 윤진서.. 내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처럼 연애신을 열연했군... 줴길... 왜이리 주길 좋아하는 거지?? 나나 만나주지... 최민식의 연기 재밌다. "나간다. 나간다. 한달 후면 나간다. 나간다 나간다....." 내가 군대에서 외쳤던 말을 똑같이 하더군... 난 젓가락으로 벽을 파진 않았지만, 뭔가를 준비했던 것 같다. 푸훗... 명대사 : 옆집 사람은 젓가락 한개로 밥을 먹겠군...(음 수정이 필요해)              ->옆집 사람은 숟가락 두개로 밥을 먹겠군...(긍정적으로 수정하자..)              계란이든 바위든 물에 가라앉는다.              ->계란은 썩으면 뜬다. 잔인한 영화이고,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그렇게 빠지는 않는 군.. 훌륭한 작품이다.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박영식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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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주기(走記) (by 박영식) [영화] 스윙걸즈 (by 박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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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노타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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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해서 달랑 예매했는데.. 좀더 사려깊게 선택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선택한 이상 이를 악물로 달려서 상영관에 도착했다. 판타스틱할까??? 시작은 거대했다. long long time ago.... 자막을 안 보고 보려니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빨리 토익책을 사야 하는데... 옛날영화를 돌려보는 거라 기술력이라던가 생각은 크게 자극하지 못했다. 별로 평할 만한 내용이 없다. 그냥 줄거리나 써놔야 겠다. [시놉시스] 옛날 왕국(기억이 안나서)에서 신을 만든답시고, 왕비를 어떻게 했는데, 왠 괴물 잡종이 나왔다. 초반에는 백성들의 믿음이 강해져서 땅따먹기에 최강자가 되었는데, 이놈이 왕자를 죽여버렸다. 음.. 그래서 지하에 동굴(미로)를 만들어 가두고, 인간을 먹이로 주게 되었다. 제공되는 인간은 속국의 어린아이들로 몇년마다 몇명씩(음, 기억이 안나...) 바쳐졌다. this time. 주인공이 나설때가 된거지... 주인공은 전 time에 여자친구(편의상)를 보냈기 때문에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꿈에 자꾸 나타나고, 어떤 할망구가 살아있다고, 공갈을 쳐서 나이를 좀 많이 먹었지만, 다른 사람이랑 바꿔서(바꿨는지는 그 장면을 매우 자세히 봐야한다. 내가 봤을때는 바꿨다.) 제물로 가게된다. here! 변태적 장면이 나오는데, 설명하기 복잡하다. 음 스토리 전개에는 불필요하니가 빼고, 그 제국의 공주가 전하(왕인 것 같기도 하고...)라고 불리는 자와 남매관계인데, 배신을 때린다. 그래서 화가난 전하는 제물을 모두 괴물이 사는 미로에 넣어 버린다. 공주는 시녀에게 통로를 열어 줄 것을 부탁하고(이 장면이 안 나온다.. 말로만 나오고, 시녀가 통로문을 열어주려고 할 때 전하가 막아버린다.) 안으로 들어간다. 다이빙 하듯이... in the.... 미로에선 괴물이 제물을 하나씩 하나씩 헤치우고 주인공은 여친을 찾아 헤매다가, 시체를 발견한다. 속았다고 생각한 주인공! 친구를 막 부른다.. 왜 부르지?? 음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그러나 늦었다. 친구는 장렬히 전사한다. 오,, 왜 죽냐.... 아무튼 앞서 언급했듯이, 공주는 제물과의 탈출계획이 실패하자 사람들에게 불신을 산다. 솔직히 얼굴이 예뻤으면 넘어갔을 텐데, 몸매든 얼굴이든 둘다 별로 였다.(이건 내 생각이고...) 그건 그렇고,.. 제물 중에 오래전에 떨어졌던 놈이 한명 있었다. 영화 큐브를 봤다면, 거기서도 살아남는 놈은 그렇게 똑똑해 보이는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듯 그런놈이었다. 그놈에게서 여자친구의 목걸이를 찾을 곳으로 가서 주인공은 죽음을 확인한다. (오 신이시여!) 아무튼 야마 돌은 주인공은 징표(목걸이)를 어떻게 하는데, 바위에 스파크가 생겨서 미로에 있는 가스성분과 반응하는 것을 목격한다.(음.. 보통의 관객이라면 저것으로 어떻게 한다는 감이 왔을 것이다.) 결말. 주인공은 미노타우로(황소다.. 뿔달린 소새끼)를 죽이기 위해 유인한다. 다른 제물들은 잘만 뿔에 찔리는데, 주인공은 역시 안 찔리고, 잘 피했다. 암튼 소새끼는 절라 빨랐다. 뿔이 바위에 박혀서 뒤척일 때, 주인공은 가스있는 곳에 불을 지피려고 목걸이를 찾았다.(청동 장식이라 불꽃이 일어난다.) 그렇데, 소새끼 뿔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감독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달리는 소새끼에 매달려 뿔에 있는 목걸이를 찾는 씬을 보여준다.(음, 점점 유치해져 가는군...) 이제, 소바베큐를 구경할 시간.. 어찌 어찌 해서 가스 폭발이 일어나고 소구이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확인하러 간다. 움..... 안 죽었다. 폭발로 인해서 죽었어야 하는데.. 뭘 또 보여주시려고.... 주인공은 부러진 소뿔을 들고 돌진하는 소의 입에 박아넣은다. 사실 소새끼가 뿔에 돌진해서 뒤진거다. 그 후 미로를 빠져나온 죽지않은 제물과 공주는 happy ending이 된다. outside, 밖은 가스폭발로 인해 무너져 있었고, 전하도 쓰러져 있었다. 공주는 뭐라고 뭐라고 말하더니 코와 입을 막아 완전히 전하를 골로 보냈다. 이런상황인데도, 성 내부에는 변변한 부하가 없었다. 뭐냐... 아무리 청동기시대라는 배경이지만, 땅을 그 따위로 많이 먹었는데, 성 내부가 너무 초라했었다. 세트 만드는게 쉽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소새끼는 죽었고, 왕국도 멸망했다고 끝나는데,,, 만일 판타스틱영화제의 상영작이 아니었다면 그냥 삼류영화에 지나지 않을 법한 영화이다. 감독의 센스로 초반에 여성의 상위노출장면을 제외하고는 잔인함 때문에 "19세" 판정이 나온 것 같고. 너무도 뻔한 전개에 약간의 실망을 했다. 그게 판타스틱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 쪽에서 선정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상영 내내 지루한 부분은 없었다. 소새끼 울음소리가 좀 많이 시원하게 해주기도 했다.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소새끼가 과거에 만들어진 거라서, 잔인하게 표현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에일리언처럼..... 명대사 : 친구도 못 알보냐..(음. 맞나..)              대답을 해야지(주인공 -> 친구, 친구 -> 주인공 / 똑같은 말을 했을 때, 주인공이 맞받아 친말.)              신이면 죽지않을 것이고, 신이 아니면....              너의 아이를 낳느니 괴물의 먹이가 되겠다.(음.. 나도 네가 싫다...)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부천주기(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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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정말 재미있을까? 영화제를 느끼고 싶어서 무작정 예매한 후, 부천으로 갔다. 물론, 사전 조사를 했기 때문에, 중식과 교통편 도보시 시간까지 산정했다. 하지만, 항상 도보 이용시 시간계산은 틀리기 마련!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일단, 중식까지는 좋았다. 부천 시립 심곡도서관을 찾는데는 약간의 고생을 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찾았다. 제일교회건물이 도서관을 가리고 있어서 한 5분정도 헤맸다. 이따가도 나오겠지만, 지도를 잘 보긴했으나, 차폐건물로 인해 헤매게 되는 것은 정말로 개고생이다. 심곡도서관은 따로 사물함 관건장치가 없었다. 별로 이용빈도가 높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대충 사물함이라고 씌여진 분리대에 가방을 잠깐 올려 놓았었다. "지하철 유실물"이란 책을 30분정도 읽고, 종합자료실의 나머지 부분- 1층에 600이상, 2층에 500이하로 되어 있는- 까지 돌아 보았다. 빼먹었는데, 중식은 일반식사류를 2500원에 해결했다. 더워서 그런지 아주머니들이 기분이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헤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3시가 되기 전에 빠져나와서 소사구청으로 향했다. 향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가지는 못했으니까. 향하기만 했다. 지도를 계속 보고 갔어야 하는 것인데, 그냥 가끔 중요 건물 체크용으로 사용하다 보니까, 전혀 나오지 않았다. 3시 25분... 이젠 뛰어야 늦지 않는 다는 생각이 마구 마구 마구 들었다. 무작정 뛰었다. 역쪽으로 뛰었다. 역에서 비교적 구청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음.. 소사3동사무소?! 맵을 봤다. 읍.. 내가 가져온 맵과 합쳐보니, 위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마구 뛰었다. 우... SK아파트... 처음에는 아파트인지 몰랐다. SK뷰라고 씌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TV에서 하던 광고도 그 때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더워서 일까?? 암튼... SK아파트가 어느쪽이다라는 것을 인지했을 때 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쉐발.. 이거 보지도 못하는 거 아니야??? 엄청난 더위와 땀이 나의 다리를 막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달렸다. 5천원을 생각하면서...(영화표를 5천원에 예매했다.) 드디어 SK아파트에 도착했다. 이제 얼마나 남았지, 거리와 시간이 비례선상에 놓여지려는 순간. 횡단보도를 만났다. 구청도.... 음,, 대충 걸어가도 괜찮겠군. 주변의 관객이 오는 속도도 고려해서 소향관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게 왠일... 내가 예매할 당시(전일 오후9시40분정도...)만 해도 좌석이 거의 찬 것으로 나왔는데, 관객은 거의 없었다. 난 안에 있는줄 알았다. 게다가 VOLUNTARY???!! 맞냐??? 자봉이들도 업무수준이 너무 열악해서, 표로 전환하는데, 10분이나 걸렸다. 뭐냐.. 뭐냐.. 뭐냐.. 판타스틱하게 실망했다. 아무튼 대충 기어들어갔다. 땀이 땀이 넘 많이 난 상태라.... 더 열받은 것은 구청직원에게 뿌려진듯한 표를 갖고 아무데나 않은 아줌마들이었다. 내 자리... 얼마주고 예매한 건데,, 그 잘난 엉덩이로 앉아계시나..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한 40명???) 나도 아무데나 앉았다. 영화 내용은 윗글에서 봤겠고(궁굼하면 보시오.) 대충 자막이 올라가고 나오는데, 자봉이가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하라고 해서, 대충의 언변으로 넘기려는데, 여자 3명이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공략이라고 하는게 나을 것 같다) 여자에 약한 나로서는 소책자(브로셔,, 팜플렛)를 좀 달라고 하면서 참석할 것처럼 얘기하고 들어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 어떤 검은 놈이 나오더니 힘들것 같다고 얘기하네... 난 밖에 서 있는 감독을 몇 번 쳐다보고, 아쉬움을 뒤로 한채 나왔다. 참석하라고 유인한 자봉이 들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남길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랬다. 소사역으로 와서, 음료수를 마시려는데, 편의점이 없었다. 음.. 내가 못 찾은 거겠지 설마 없겠냐마는.. 아무튼 자판기에서 P-SWEET(?, 맞나/.)를 마시고, 집에 갈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사진 촬영 거리를 찾아 볼 것인지 생각해 봤다. 음. 야외 상영장에 한번 들렸다 가야지 라는 결론이 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8분단위로 지도를 봤다. 길을 잃으면 이번에는 끝장이다.... 헉... 상당히 많은 시간과 건물을 거쳐서 1시간정도 많에 부천시청 야외상영장에 도착했다. 둘러보고 사진찍고,, 버스에 탔다. 부천시청건물이 보였을때,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탈진상태가 되려고 할 때...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먹었다. 요즘에 장사가 안되는지, 끼워팔기 당하거나 끼워팔거리를 주는 추세여서 사은품을 찾아보니, 500ml 생수 한병이 있었다. nice! 바나나맛우유와 생수 삼각김밥,, 최강(?)의 콤비였다. 그거 먹고 사진찍으니, 셔터가 잘 눌리지... 버스타기전에 자봉이들이 다른 버스에서 내렸는데, 둘리 캐릭터 인형옷을 입고 있었다. 절라 덥겠다.... 정말.. 나는 엄청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고 있는데... 사진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그들도 자신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빴던 것 같다. 부천은 굉장히 발전했다. 두산위브 아파트... 이런 것을 아파트라고 불러야 하나... sk view 등의 신도시형 고가의 건물들이 팍팍 들어서고 있었다. 많이 발전했다. 잘 살아라... 판타스틱영화제의 전시회라던가 이색적인 거리들을 상상했는데,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러나 어쩌려,, 정보가 부족했던 것을,,, 현재 뛰고 있는 자봉이들이 좀 더 실력있게 일을 처리해 줬으면 한다. 그리고, 상영관끼리의 거리에 전시 거리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모 백화점 광장이나, 특정 건물 3층에 전시해서 누가 찾아가겠나... 상영관과 상영관 사이의 거리도 먼데.... 정말 3시간정도 걷고 30분정도 뛰어서 도착한 부천 판타스틱영화(제). 고생한 만큼의 보람은 없었지만, 국제 영화제 영화 관람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군..._---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부천주기(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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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정말 재미있을까? 영화제를 느끼고 싶어서 무작정 예매한 후, 부천으로 갔다. 물론, 사전 조사를 했기 때문에, 중식과 교통편 도보시 시간까지 산정했다. 하지만, 항상 도보 이용시 시간계산은 틀리기 마련!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일단, 중식까지는 좋았다. 부천 시립 심곡도서관을 찾는데는 약간의 고생을 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찾았다. 제일교회건물이 도서관을 가리고 있어서 한 5분정도 헤맸다. 이따가도 나오겠지만, 지도를 잘 보긴했으나, 차폐건물로 인해 헤매게 되는 것은 정말로 개고생이다. 심곡도서관은 따로 사물함 관건장치가 없었다. 별로 이용빈도가 높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대충 사물함이라고 씌여진 분리대에 가방을 잠깐 올려 놓았었다. "지하철 유실물"이란 책을 30분정도 읽고, 종합자료실의 나머지 부분- 1층에 600이상, 2층에 500이하로 되어 있는- 까지 돌아 보았다. 빼먹었는데, 중식은 일반식사류를 2500원에 해결했다. 더워서 그런지 아주머니들이 기분이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헤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3시가 되기 전에 빠져나와서 소사구청으로 향했다. 향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가지는 못했으니까. 향하기만 했다. 지도를 계속 보고 갔어야 하는 것인데, 그냥 가끔 중요 건물 체크용으로 사용하다 보니까, 전혀 나오지 않았다. 3시 25분... 이젠 뛰어야 늦지 않는 다는 생각이 마구 마구 마구 들었다. 무작정 뛰었다. 역쪽으로 뛰었다. 역에서 비교적 구청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음.. 소사3동사무소?! 맵을 봤다. 읍.. 내가 가져온 맵과 합쳐보니, 위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마구 뛰었다. 우... SK아파트... 처음에는 아파트인지 몰랐다. SK뷰라고 씌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TV에서 하던 광고도 그 때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더워서 일까?? 암튼... SK아파트가 어느쪽이다라는 것을 인지했을 때 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쉐발.. 이거 보지도 못하는 거 아니야??? 엄청난 더위와 땀이 나의 다리를 막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달렸다. 5천원을 생각하면서...(영화표를 5천원에 예매했다.) 드디어 SK아파트에 도착했다. 이제 얼마나 남았지, 거리와 시간이 비례선상에 놓여지려는 순간. 횡단보도를 만났다. 구청도.... 음,, 대충 걸어가도 괜찮겠군. 주변의 관객이 오는 속도도 고려해서 소향관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게 왠일... 내가 예매할 당시(전일 오후9시40분정도...)만 해도 좌석이 거의 찬 것으로 나왔는데, 관객은 거의 없었다. 난 안에 있는줄 알았다. 게다가 VOLUNTARY???!! 맞냐??? 자봉이들도 업무수준이 너무 열악해서, 표로 전환하는데, 10분이나 걸렸다. 뭐냐.. 뭐냐.. 뭐냐.. 판타스틱하게 실망했다. 아무튼 대충 기어들어갔다. 땀이 땀이 넘 많이 난 상태라.... 더 열받은 것은 구청직원에게 뿌려진듯한 표를 갖고 아무데나 않은 아줌마들이었다. 내 자리... 얼마주고 예매한 건데,, 그 잘난 엉덩이로 앉아계시나..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한 40명???) 나도 아무데나 앉았다. 영화 내용은 윗글에서 봤겠고(궁굼하면 보시오.) 대충 자막이 올라가고 나오는데, 자봉이가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하라고 해서, 대충의 언변으로 넘기려는데, 여자 3명이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공략이라고 하는게 나을 것 같다) 여자에 약한 나로서는 소책자(브로셔,, 팜플렛)를 좀 달라고 하면서 참석할 것처럼 얘기하고 들어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 어떤 검은 놈이 나오더니 힘들것 같다고 얘기하네... 난 밖에 서 있는 감독을 몇 번 쳐다보고, 아쉬움을 뒤로 한채 나왔다. 참석하라고 유인한 자봉이 들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남길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랬다. 소사역으로 와서, 음료수를 마시려는데, 편의점이 없었다. 음.. 내가 못 찾은 거겠지 설마 없겠냐마는.. 아무튼 자판기에서 P-SWEET(?, 맞나/.)를 마시고, 집에 갈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사진 촬영 거리를 찾아 볼 것인지 생각해 봤다. 음. 야외 상영장에 한번 들렸다 가야지 라는 결론이 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8분단위로 지도를 봤다. 길을 잃으면 이번에는 끝장이다.... 헉... 상당히 많은 시간과 건물을 거쳐서 1시간정도 많에 부천시청 야외상영장에 도착했다. 둘러보고 사진찍고,, 버스에 탔다. 부천시청건물이 보였을때,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탈진상태가 되려고 할 때...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먹었다. 요즘에 장사가 안되는지, 끼워팔기 당하거나 끼워팔거리를 주는 추세여서 사은품을 찾아보니, 500ml 생수 한병이 있었다. nice! 바나나맛우유와 생수 삼각김밥,, 최강(?)의 콤비였다. 그거 먹고 사진찍으니, 셔터가 잘 눌리지... 버스타기전에 자봉이들이 다른 버스에서 내렸는데, 둘리 캐릭터 인형옷을 입고 있었다. 절라 덥겠다.... 정말.. 나는 엄청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고 있는데... 사진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그들도 자신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빴던 것 같다. 부천은 굉장히 발전했다. 두산위브 아파트... 이런 것을 아파트라고 불러야 하나... sk view 등의 신도시형 고가의 건물들이 팍팍 들어서고 있었다. 많이 발전했다. 잘 살아라... 판타스틱영화제의 전시회라던가 이색적인 거리들을 상상했는데,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러나 어쩌려,, 정보가 부족했던 것을,,, 현재 뛰고 있는 자봉이들이 좀 더 실력있게 일을 처리해 줬으면 한다. 그리고, 상영관끼리의 거리에 전시 거리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모 백화점 광장이나, 특정 건물 3층에 전시해서 누가 찾아가겠나... 상영관과 상영관 사이의 거리도 먼데.... 정말 3시간정도 걷고 30분정도 뛰어서 도착한 부천 판타스틱영화(제). 고생한 만큼의 보람은 없었지만, 국제 영화제 영화 관람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군..._---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영화] 스윙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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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다음" 영화를 들르게 되었다. 볼만한 영화가 전혀 없었다. 다행이, 배너에 스윙걸즈가 나와서, 11일 자정을 즐겁게 해 주었다. 우에노주리라는 배우는 86년 생인데, 최강희를 닮았다. 결론은 예쁘다는 것이지. 음악제의 결과는 미정으로 해 두는 감독이 얄궂기는 하지만, 솔직히 더 이상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어려움점을 인정해 주겠다. 급진적인 전개와 이상적인 해피엔딩이 약간의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재미와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칭찬해 두겠다. (음,, 새벽 2시 반인데, 눈이 아프네.. 되길...) 내면을 감추고 있는 수학선생님과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밴드부 지도선생님. 주인공임을 부각시키는 나카무라의 버스 발견... 3번정도 나오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 이 모든 것들이 오늘을 만족시켜 주었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밴드의 이름 스윙걸즈가 정해진 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제목인데, 좀 멋드러지게 표현되었으면 했는데,,, 그 장면이 하나도 없다.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도서] 인생 망가져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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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룡님의 저서이다. 책에서는 문화평론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프린랜서(백수?!)인 것 같다. 생각나는 구절 : 무항산자면 무항심이라                        -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편안한 마음이 생겨날 수 없다. 직업이 있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매일 일거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직업이 없다는 것은 필요할 때마다 일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저서를 비판하자면, 운(?)에 의해 얻은 이득을 자신의 검증되지 않은 성공으로 표현해 내서 현혹시키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이다. 일본대학에서 졸업까지 했으니, 어떤일을 해도 잘 될 것이고, 또... 이미 명성이 알려졌기 때문에,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다. 나 처럼 전해 back ground가 없는 시대에(책에서는 현재 20대를 잔치가 없었던 강간당한 세대라 하지..) 환경도 좋지 않은데,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왜.. 잔치도 없고, kk당했으니까... 암튼, 재미있는 담화와,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읽어볼만한 책이다.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창덕궁 거기(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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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작일에 창덕궁에 가기로 마음먹고,  오전일정에 넣었는데, 9시에 일어나고 말았다. 되길... 9시에는 출발해야 오전에 관람을 마칠 수 있는데, 실패했다고나 할까... 암튼, 용산부터 가기로 했다. 내 PDA의 꿈을 확인해 보기위해서 였다. 그러나 핀잔만 듣고, '문외한'이라고 보였을 만큼 쪽팔림을 당하고 나온 것 같다. 쉐발.... 게세리... 간판에 PDA전문점이라고만 안 씌여져 있어도 안 들어 갔다. 뭐냐.... 기분 더럽게.. PDA는 아예 없더만, PDA폰만 있으면서, 잘난척 하기는.!!! 아무튼, 사직공원을 둘러보고, 종로도서관에서 중식을 해결한 후, 창덕궁으로 향했다. 음.. 일본인관광객 차량이 들어서고 있어서 사람이 매우 많아 보였다. 그 시간은 골든타임 때였다. 오전에 갔어야 한산할텐데, 아무튼 사람이 많은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ㅎㅎㅎ.. 나처럼 나홀로 관람객도 있었다는 것에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건축물을 보러갔다기 보다는 아무생각없는 관람이었기에 주위깊게 듣진 않았다. 다만 가이드의 넘치는 친절함과 끊임없는 웃음과 재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집중시키기에 적당했다. 하루에 3TIME 한다는데, 목 관리만 잘 하면, 그리 어려운 직업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짜증나는 손님들과 극성 맞은 어린이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기에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할 것 같다.  암튼, 비원까지 관람을 끝내고, 여러 생각에 빠졌다. 다음에는 누구랑 같이 가야할 텐데, 같이 좀 갈 사람 없나.. 서울구경은 혼자서 하기엔 너무 아까운 것 같다. 음. TIP을 주자면 2시 30이 일본어 설명이고, 3시가 중국어 설명이기 때문에, 2시45분에 설명을 들으면, 일본인과 중국인을 볼수 있다는 것이다. 그시간이 골든타임이라 사람이 꽤나 많다는 것. 다른 시간은 비온 다음날 아침, 되도록 맑은 날에 찾아가면 좋고, 덥지않은 때에 가는 것이 나무가 많은 창덕궁 뒤뜰의 언덕을 오를 때 좋은 조건으로 작용한다. 가이드의 열정적인 설명과 친절한 안내로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1시간 20분이란 긴 시간이 금방 갔던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잘 안 내할 수 있을까??? 내가 군생활에서 "안내"하는 역할도 맡았던 것 같은데, 별로 였던 것 같다. 친절한 안내자가 많아졌으면.. 좋겠군..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박찬욱의 몽타주, 엑스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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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가 라고 찍혀있어서 별로 재미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시키지 않았다. 잔인해서 12세였던 것 같다. 엑스맨2이 끝나고 나서 안 보여준 부분을 보여줬는데, 거기에 잔인한 장면은 다 나온다, 그런데도 12세가로 극장에서 못 본 부분이라며 틀어주는 것은 뭐냐.... 암튼, 세이비(?, 세비아) 스톰, 스콧, 울버린,, 돌연변이들이 주연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들을 파괴하려는 과학자 스트라이커가 악역으로 나오는데, 중간중간이 지루하지 않고, 액션도 많이 있고 재미있다. 미스틱의 에로연기와 텔레포터의 공중연기도 볼만하다. 아, 그리고 스트라이커의 비서는 매우 매력적이다. 박찬욱이 쓴 책 몽타주가 있다. 동아일보 추천도서에 나온 책인데, 영화제작하면서의 에피소드 및 그냥 그냥 쓴 글들이 있다. 그 감독의 성격도 범인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게한다. "친절한 금자씨"를 15세가로 했는데, 19금으로 떨어진 것에 대해 언급하고, "죽어도 좋아"의 상영금지 처분에 대해 어필하며, "복수는 나의것"의 촬영내내 있었던, 멋진 일들을 써 놓았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좋고, 박찬욱 감독의 엉뚱한 면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봐라.. 됙.ㄹ... 문제는 내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감독이 히트했던 여러 영화가 있는데, 한 편도 안 봤다니 신기하다. JSA도 안 봤고, 올드보이도 안 봤으니,... 수요일정도에 복귀하기 전에 봐야겠다. 개인적으로 윤진서를 보고싶다. (미쳤군..)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파이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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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미 안에 있었다??!!! 영화 제목은 방화벽인데, 방화벽과 관련된 것은 안 나오는 것 같다. 사회과학자 (캐빈 미크닉인가.... 검색해도 안 나오는 군..)의 수법을 이용해, 관리팀에게 전화를 한 후, vip의 계좌를 팩시밀리 스캐너로 읽은 후, 엠피쓰리 메모리에 저장한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음... 계좌에서 돈을 처음부터 빼낼 생각이었다면, 그렇게 위험하게 들어가서 이체할 필요가 있었을까... 나중에 밝혀진, 해리의 살해의도도 너무도 터무니가 없었다... 아무튼, 방화벽이란 없다. 왜,, 다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네트 2.0에서도 은행계좌의 돈을 빼내는 범죄를 다뤘다. 개인 신상을 이용한, 나이트 플라이트에서 처럼 사람을 이용하는 것... 어떠한 것이든, 사람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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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가장 자극할 수 있는 "사랑"이란 주제로 영화를 또 만들어 냈더군.. "다중스토리 구조" 예전의 인생드라마를 보듯, 스토리가 얶여 있었다. 감성 자극+감동... 거기서 본 다시 본 여배우는 윤진서(윤수경, 83년생)였다. 전에 어디서 본 듯한 배우다.. 여자 배우로 이제 주연급을 맞게 될 것 같다. 아마도.. 계속.. * 박영식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09 01:29)"

2004년 부터 2005년 6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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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4U 게시판 방명록 백업 시스템 Ver 1.0
백업일 : 2005-06-15 오후 3: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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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1
제  목 : 1998. 8. 13 개펄 그리고 생명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0:00
내  용 :

용어의 정의

+- 개펄 : 갯가의 개흙이 깔린 벌판. 간조와 만조의 차가 큰 해안 지형에 발달함.

+- 갯벌 : 조수가 드나드는 모래톱.

☞  두 단어의 뜻이 유사하므로 바꾸어 써도 상관없음.

"개펄 환경 그리고 생명展"을 관람하고...

선인고등학교 11215 박영식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담임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배분된 "개펄 환경 그리고

생명展"의 할인 티켓(Ticket)을 몇 장 나누어 주셨다. 난 그 중 한 장을 받아 방학 때 관람

하기로 했다.

방학하고 얼마 지나서 그 티켓을 가지고 버스를 탔다. 그 때는 도서관을 다니는데 재미가

붙어서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갔다. 북구*서구*부평 도서관을 다니며 서고를 뒤졌던 그 때

의 자신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간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3번 또는 2번 타야

했다. 효성2동으로 가서 39번을 타거나 서구에서 39번을 타는 방법이 있다. 서구 도서관을

들르기 위해서 버스를 3번타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산곡동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서구 도서관에 들러 책을 몇 권 본 후 39번을 타고 서구

문화회관에 들어갔다. 전시장은 그리 넓지 않았다. 개펄에 관한 설명, 세계의 개펄이 위치

한 사진이 있었고, 개펄 작업을 하는 여러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할인티켓의 겉면에

있는 사진은 ''최춘일''씨의 작품으로 대부도 남사리에서 1996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이

사진을 스캔해서 올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좀 아쉽다.

그 곳의 하이라이트(High Light)라고 할 수 있는 물고기 모형에 대해 설명하겠다. 그것은

온갖 쓰레기를 재활용해서 만든 커다란 모양의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삽, 가위, 펜치, 철사

등을 페인트 통 속에 넣어 파랗게 만든 후 말려 벽에 붙인 듯 했다. 이 작품을 보며 어디까

지 재활용이 가능한지를 알게 되었다. 재활용은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끝까지

재활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시장 중간쯤에는 그물 모양의 플라스틱 통에 인형이 가득 들어 터질 것 같은 작품도 있

었다. 그 작품은 현대를 사는 인간들의 구속, 빡빡함을 나타낸다는 설명과 함께, ''만지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붙여 있었다. 작가의 뚜렷한 의도는 파악하지 못할지라도 현대 사회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관리자 님과 몇 마디를 나누면서 오염된 개펄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출

했다. 전에, 성당의 캠프(Camp)를 통해 개펄에 다녀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말이 통했다. 그

분은 개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개펄 오염의 심각성에 대하여 인

식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버스 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번에는 버스를 2번 타기로 했다. 그런데 서구문화회관을 처음

방문한 날이라 할인티켓에 개략적으로 그려져 있는 약도를 보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 다녔

다. 한참을 도보한 끝에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올 때는 버스 비를 절약할 수 있었지만

피곤하여 버스에서 잠이 들었었다.

지금 이렇게 감상문을 써보니 느낌이 새롭다. 며칠 전 개펄에 다녀왔었는데, 그곳 역시 축

산폐수로 오염되어 가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전시장에서의 일을 기억하며 개펄이 다시

깨끗해지길 바랬다.



번  호 : 2
제  목 : 1999.4.18 퓰리쳐 사진 대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1:00
내  용 :
''퓰리처(Pulitzer) 사진대전''을 관람하고

선인고등학교 11215 박영식

학교 앞에 걸린 ''퓰리처 사진대전''이란 플래카드를 보고 관람하러 가

기 위해 계획을 세웠었다. 사진전이 끝나갈 때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수봉공원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수봉공원에 간 적은 있었지만 기억이

안 나서 기사님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

려 다른 버스로 갈아탔는데, 그때는 벚꽃축제 기간이라 사람이 많았

다.

우리는 수봉공원을 둘러본 후, 문화회관을 찾으려 했지만 도저히 찾

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경찰관이 있어서 여쭈어 보니 방향을 일러주

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사진전을 관람했다. 퓰리처란

신문기자에 의해 생긴 이 상(賞)은 상금도 많고 권위가 있어 모든 사

진기자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시장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을 모두 모아 논 모음집이 있었

다. 20,000원이란 가격이 붙어 있어 갖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신문에 실린 사진이나 액자에 걸린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1전시실과

2전시실을 거쳐 모든 사진을 관람했다. 그 중에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보았던 6*25 전쟁 중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

''1951「한국 전쟁」Max Desfor; korean War; Courtesy of Associated

Press''란 문구가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통해 발전해 왔지만 전쟁은

너무 잔혹하다. 이제는 제발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전시관에서 나와 10여분을 걸은 끝에 제물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모두들 피곤하지 나를

포함하여 모두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그 때 일을 회상하며 사진의 중

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요즘은 사진을 합성하여 비판하거나 저질

화 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보며 기술을 남용하지 않

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기자들처럼 기회를

잘 잡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번  호 : 3
제  목 : 1999. 8.14 세계 공룡 대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2:00
내  용 : 세계 공룡대전을 관람하고...

선인고등학교 박영식

8월 14일 아침. 눈을 뜨니 8시 30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세면을 한 후 아침식사를 했다. 연안부두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던 터라 밤을 설쳤는지 별로 밥맛이 없었다. 외출준비를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대략 1시간쯤을 달려 “인천개항 100주년 기념탑”을 지나갔다. 초행길이라 연

안부두 전시관을 알지 못해 기사 님께 여쭈어 보았다. 기사 님께서는 거의 다 왔다고 말씀하셨다. 다행

이 목적지가 같은 분이 계셔서 따라갔다.

약 5분을 걷다보니 좀 허름한 건물이 보였다. 주변에 “세계 공룡 대전”이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서

전시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면에 1/5로 축소한 공룡이 유리상자 안에 진열

되어 있었다. 티켓을 구입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전시장소에서는 여러 화석들과 진화과정을 다룬 도표를 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 안내양이 화

석을 만지거나 촬영을 할 수 있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화석들을 천천히 만져 보았다. 공룡의 발자국과

공룡의 늑골, 코끼리의 치아, 고래의 두개골 등이 있었다. 진열된 화석 중에는 앵무조개라는 것이 있었

는데, 지금의 조개와 많은 차이를 보였다. 그것들과 진화 과정을 다룬 도표를 보면서 문득 다윈의 진화

론이 떠올랐다.

두 번째 전시관은 큰 공룡들을 진열한 곳이었다. 고무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제작한 공룡들은 미세하

게 움직이는 것도 있었고 꽤 많이 움직이는 것들도 있었다. 그곳의 공룡들을 몇 마리 열거해 볼까 한

다. 먼저, 입구에서 나누어준 ‘탐험증’이라는 것에 약간의 설명과 그림이 있는 공룡들이다. ‘패키세

팔로사우르스’는 ‘두꺼운 머리의 도마뱀’리란 뜻으로 특징은 초식공룡이며 외형상 대머리라는 것이

다. 내가 그 때 삭발한 때라 그 공룡에게서 특별한 친근감을 느꼈다. 그러나 아쉽게 그 공룡의 왼쪽 머

리가 약간 파손되어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공룡을 직접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공룡의 기계

부분이 드러나 있어서 현실감이 적었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다음으로 디더큐러스라는 초식공룡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공룡은 ‘비밀의 사원(Secret Temple)’의

정 중앙에 전시되어 있었다. ‘비밀의 사원’은 여러 개의 작은 백열전구를 달아 신비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디더큐러스의 특징 중 인상깊었던 것은 꼬리이다. 꼬리는 도깨비 방망이와 유사하여 뾰족한 돌

기가 돌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북이 같은 등 껍질이 있어서 내가 본 공룡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

다. 그 왼편과 오른편에 각각 ‘파라사우롤로푸스’와 ‘벨로시렙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전자는 새끼

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을 표현하여 공룡의 생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후자는 다른 공룡의

알을 약탈하는 구성을 함으로써 ‘재빠른 약탈자’라는 이름의 의미를 강조해 주고 있었다.

‘비밀의 사원’을 나와 3D 입체 영화를 상영하는 곳으로 갔다. 영화는 약 5분으로 무척 짧아서 한국

어 녹음 버전과 원어 버전을 두 번 보여 주었다. 입체 안경을 착용하고 스크린을 집중하니 그냥 보는

것보다 더 실감났다. 그것은 중학시절에 본 비스트 워즈(Beast Wars)를 생각나게 했다. 안경은 정말 공

룡이 잡아먹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영화가 너무 짧았지만 그런 대로 재미있었다.

영화관을 빠져 나와 상점에서 고무로 된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뼈 모형을 구입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비디오 테이프와 공룡 두개골 등이 진열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 더 좋은 것은 구입하지 못하여 좀 아쉬웠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공룡 대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난 한달 전 통학하면서 버스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세계 공룡대전’이란 글에 크게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시설도 허술하고 입장료에 비

해 진열 품목도 미흡하여 많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알지 못한 것들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고 오랜만

에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를 할 수 있어서 기뻤다.



번  호 : 4
제  목 : 2K.1.8 인천대학교 예체능대 미술학과 16회 졸업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3:00
내  용 : ‘인천대학교 예체능대 미술학과
제16회 한국화ㆍ서양화 전공 졸업작품전’을 관람하고
선인고 박영식
1월 8일 나는 워드 2급 자격증을 수령하기 위해 상공회의소로 향했다. 초행길이라 전화로 문의를 해보니 좌석버스 103번을 이용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어디서 타야할 지를 몰라 부평역으로 나갔다. 역에서 내려서는 버스 정류장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버스는 1시간 30분 정
도를 달려 남동공단 입구를 지나갔다. 친절하신 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상공회의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건물은 매우 컸다. 그 안으로 들
어가서 나의 이름을 말하고 도장을 찍고, 자격증을 받았다. 받는 순간의 감동은 직접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시간은 5분
도 채 안 걸렸지만 가는 데만 2시간이나 걸려 매우 허탈하였다.
나는 그 길로 다시 103번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오는 도중에 인천 터미널의 지하철역을 지나 왔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내려 지하
철을 타기로 했다. 그러나 인천터미널역을 찾지 못해 예술회관역까지 가기로 했다. 예술회관 앞에는 ‘인천대학교 예체능대 미술학과 제16
회 한국화ㆍ서양화 전공 졸업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금 재학중인 학교와 가깝기도 하고 예술적 견문도 넓히기 위해 문을 들어섰다.
입구에는 담당자 2명과 방명록이 마련된 탁자가 놓여 있었다. 왼쪽부터 서서히 발길을 옳기기 시작했다. 그림들이 거의 추상적이기에 이
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고, 관찰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팜플렛의 그림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
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 ‘문명의 개인적 투영’으로, ‘갯벌 사진전’에서 보았던 것 같은 혼합 재료로 되어 있었다. 그림의 제목도 멋있
고, 화가의 이름(강혁)도 멋있었다. ‘무제’같은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비난하기도 했다. 노력이나 정성 등이 별로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팜플렛에는 삽입되어 있지 않지만 ‘아버지’라는 작품은 나의 심금을 울렸다. 그 모습이 고뇌에 가득 차고 짐을 진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두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 모든 작품을 관람한 뒤 탁자 쪽으로 갔다. 방명록은 붓펜로 쓰게 되어 있었는데, 한자로 쓴 것이 대부분인 듯 하
였다. 그러나 난 불편한 붓펜 대신 나의 볼펜으로 ‘문명의 개인적 투영’과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고 이름을 써넣었다. 물론 나를 아무도 모
르겠지만ㆍㆍㆍㆍㆍㆍ. 방명록을 내 멋대로 써서 결레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예술적 교양을 높이게 되어 즐거웠고 예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는 것도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번  호 : 5
제  목 : 2k.5.23 인천 취주 악단 연주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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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1-02-11 오후 3:04:00
내  용 : 음악회를 다녀와서..
선인고 박영식
친구가 음악회를 관람하러 간다기에 예술적 교양을 높일까하는 마음으로 자율학습을 미루었다. 예전에도 ‘종합문화예술회
관’에서 관람한 적이 있기 때문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입장권을 내고 로비로 들어가니 팜플렛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이
번 음악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  보았다. 짜여진 프로그램도 알찼고, 출연자들도 실력 있는 분이라
기대가 되었다. 관람석으로 들어가 정해진 좌석에 앉아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스피커에서 뱃고동소리가 나더니 사회자가 등
장하였다. 사회자는 현직 교사로서 관람석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곧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정수훈님의 지휘에 따라 ‘Hand across the Sea’로 힘찬 출발을 하였다. 지휘자의 역동적인 몸짓이
돋보였으며 심벌의 울림이 조화를 이루었다.
첫 번째 곡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곧 사회자의 합창단 소개가 있었고 ‘Valse des Fleurs’로 흥을 돋우었다. 이 곡은 ‘
꽃의 왈츠’로 왈츠 특유의 박자를 느낄 수 있었으며 간간이 나오는 트라이앵글이 즐겁게 해 주었다. 중간에 나오는 클라리넷
연주가 주를 이루었으며, 많이 접했던 음악이라 듣기 좋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관악기였다. 피콜로, 클라리넷, 바
순, 나팔, 오보에, 색소폰, 플롯 등이 있었고, 나머지 악기들도 제 음을 발휘하였다.
두 번째 곡이 끝나자 ‘새 몽금포 타령’, 우리 나라 민요가 선을 보였다. 들으면서도 역시 민요는 국악으로 듣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합창단의 화음은 관객들을 집중시켰다. 곡이 끝나자 합창단과 일부의 악사들이 퇴장하고 절반 정도만이 다음 곡
을 연주했다. S. E. S의 love라는 곡으로 귀에 익은 것이었지만 관현악으로 연주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잘 된 편곡
으로 매우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사회자는 관객들에게 즐거운 이야기를 해주며 다음 곡을 소개했다. ‘Voices of Spring’! 이것은 집에도 있는 곡으로 봄의 정
취를 느끼게 해주는 흥겨운 음악이다. CD로만 감상하다가 직접 들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다음으로 지휘자 김용호님과 함께 출현한 금혜주양은 ‘웃음의 아리아’,‘옥련화’로 소프라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웃음의
아리아’에서 웃음을 표현한 부분이 인상 깊었으며, 고음을 잘 처리해내는 모습이 놀라웠다. ‘옥련화’에서는 아름다운 손동작
이 감미로운 음악과 잘 어울려 관객들의 감탄사를 유도했다. TV에서만 보아오던 장면들을 직접 보니 지금도 생생하다. 기회
가 된다면 또 관람해 보고 싶다.
소프라노 금혜주 양이 퇴장하고 지휘자의 활약이 주(主)가되었던, ‘천국과 지옥’을 감상했다. 암울한 분위기와 경쾌한 분위
기가 조화를 이루었고 클라리넷 독주가 아름다웠다. 중간의 적막에서 빠른 템포로 옮아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으며, 점점 빨
라져 흥겨워졌다. 귀에 익었던 행진곡들이 나오면서 멋지게 끝마쳤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관객들의 의식이었다. 곡이 끝나
지도 않았는데, 박수를 친다던가, 떠들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1부가 끝나고, 휴식시간동안 고픈 배를 달래
보려 했지만 많은 인파와 높은 가격이 식욕을 떨어뜨렸다.
휴식이 끝난 후, 유응진님의 지휘로 ‘Glenn Miller Medley’, ‘ob-la-di, ob-la-da’를 들었다. 전자는 색소폰의 독주가 주(主)를
이루었고 드럼소리도 귀에 들렸다. 나팔과 플롯, 바순도 중간의 이음 역할을 잘하여 매끄럽게 해주었지만, 어색한 소리가 조
금 안타깝게 했다. 후자는 탬버린의 흥겹고, 경쾌한 박자로 리듬을 탔으며 플롯의 연음이 마음을 흥분시켰다.
다시 합창단이 나오고 김종환씨의 곡 ‘사랑을 위하여’를 불렀다. 긴장을 하셨는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 나온 ‘
Jesus Christ Super Star’는 은은한 음으로 관중을 사로잡았다. 절도 있는 연주로 플롯, 드럼이 주(主)를 이뤄 매우 좋았다.
사회자의 마지막 곡 소개와 함께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팜플렛에는 인쇄되었지만 연주하지 못한 곡 때문이었는지도 모른
다. 어쨌든 ‘개선 행진곡’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관객들의 부탁에 짧은 곡 하나를 더 연주하고 공연은 끝이 났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며 시끄럽게 하는지를. 더 이상의 교양 있
는 행동은 불가능 한 것일까? 수준 낮은 행동으로 나쁜 인상을 남긴 이들의 의식이 변화했으면 좋겠다. 나는 공연 내내 친구
에게 악기에 대해 물어 보았다. 내가 악기에 대해 무지했던 탓이다. 오늘의 계기를 통하여 더 많은 악기를 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번  호 : 6
제  목 : 2k.7.23 인천 문예부 연합 시화전-지하에서 세상을 보다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8:00
내  용 : ‘인천문예부연합 시화전-지하에서 세상을 보다!’를 관람하고
약대(若大) 박영식(朴映植)
  
제 1회 인천문예부연합 시화전 “지하에서 세상을 보다!”를 관람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부평을 지나 예술회관역에
도착하였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그 시화전을 일부러 보러 가는 것은 손해이다. 그러나 하루밖에 볼 수 없는 것
이기에 기간에 가치를 두고 결정한 것이었다. 한 층을 올라가니 패널, 보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천천히 거닐며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얼마 후 선인고 ‘나무굶’과 연합‘아띠’의 시화가 보였다. 필체가 굉장히 독특했다. 그 필체는 그 옆
의 필체와 함께 후에 볼 수 있었는데, 그로써 ‘아띠’의 일원들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을 적어오려 했는데,
필요 없을 것 같아 쓰지 안았다. 지금 쓰려고 하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여러 학교의 소개를 보던 도중 ‘계산 여고’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가장 성의있고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번이 1회라
know-how가 없는 문예부들은 전지에 대충 썼다. 다음엔 좀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하나 확인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다. 그 옆에 화투를 붙이고 그와 같은 그림을 그린 ‘여름’이나 시가 가장 성의 없어 보였다. 일상적인 주제, 모방한 그
림, 날려 쓴 글씨가 그렇게 느끼도록 했다. 하지만 어쩌랴,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을......
이제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거나 한 곳에 모여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보드에 붙은 다과(초코
파이, 초콜릿, 사탕), 돈들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방문의 표시, 축하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해해 주었다. 이
윽고 ‘나무굶’의 권기우 작품이 보였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다. 방명록을 써주기 위해 시를 몇 번이나 읽었다. 평범
한 주제이기는 하나 작가 특유의 문체가 드러나 있었다. 교지에 실렸던 ‘아침’처럼 그는 평범한 주제에서 자신의 감정
을 드러내는 듯 하다. 진열된 작품의 주제는 ‘책상’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수한 성적
의 그는 문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림도 시와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었다. 난 간단하게 방명록을 써주었다. 옆
에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인사할까 했으나 그냥 지나쳤다. 그도 나를 모른 척 한 것 같다.
그 뒤쪽으로 보이는 2개의 보드가 보고싶어졌다. 그런데, ‘이게 왠 낙서냐?’할 정도의 시(?, 시가 아닌 것 같았다)가
적혀있는 것이었다. 시제는 ‘안중근’이었는데, 시인은 ‘윤’가(家)였다.(이름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 글을 읽고 문예
부로서 진열하는 사람이라면 아까의 ‘여름’처럼 최소한의 감정이 들어가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아 비난의 눈
으로 쳐다보았다. 그 옆의 글도 같은 이가 쓴 글인데 맘에 들지 않았다.
어느덧 30분이 지났다. 막 가려는데 선인고의 소개글은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찾지 못한것인지, 아님
없는 것인지..... 작품도 권기우와 강내현의 것 밖에 없었다. 좀 아쉬웠지만 그렇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지하에서 세상을 보다.
역 안으로 들어오는 나의 모습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 누구도 모르면서 정액권을 들고
혼자 왔느뇨?
저런 바보자식! 할 일 되게 없구나.  
그렇다. 난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여기 왔다.

그저 몇 발자국 몇 글자를 남기려,
1시간을 할애하며 이곳에 왔다.  

그 많은 작품들도
몇 개 기억 못하고.......
지하에서 세상을
지하에서 세상을
나는 지하에서 세상을 보았다.



번  호 : 7
제  목 : 2k.10.20  아프리카 목조각품 관람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09:00
내  용 : 아프리카 목조각품 관람  

서울랜드 입구 쪽에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목조각품이 무료로 전시되고 있었다. 그래서 서슴없이 발
을 내딛었다. ‘태즈매니아’섬에서 본듯한 조각상과 고대 유물을 다루는 만화에서 나온 것 같은 여러 조
각상들이 있었다. 그것은 돌이나 플라스틱 따위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소개에는 목각작품
이라고 쓰여져 있어 좀 의아했다. 대부분은 사람의 두상(頭像)과 흉상(胸像)이었고 생필품도 간간이 보
였다. 그 중에서 베개는 상당히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지도자는 절대로 머리
를 땅에 대지 않았다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그 베개는 실제로 안락함보다는 권위의식이 돋보이는 것 같
았다.
그 미지의, 오지의 사람들 중 마사이족은 여자들이 얼굴에 치장을 하고, 때론 매우 징그럽게 혹사하는
것 같다. TV에서 본적이 있는데, ‘역시 아랫입술에 둥근 모양의 돌을 넣는 것은 엽기적(獵奇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실제로 가져온 것 같은
북은 마사이족들이 그것을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도록 해주었다. 출구로 빠져 나오면서 모자이크
벽화를 더 보려 했으나 너무 잔인하여 눈을 돌리고 말았다. 팜플렛 등이 있으면 가져오려고 했는데, 그
것에 대한 것은 없었다. 세계가 좁아지고 있는 이때, 오지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겠
다.



번  호 : 8
제  목 : 2000. 10. 16. 오페라 LA TRAVIATA(춘희)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10:00
내  용 : 10월 16일 공연 오페라
LA TRAVIATA(춘희) 감상문

10월 16일 오페라 LA TRAVIATA(춘희)를 관람하기 위해 자율학습을 포기하였다. 식당에서 석식(夕食)을 한 뒤, 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오락실에 들어갔다. 할 것을 찾던 중 꼬마 애랑 시합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얍삽함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다른 게임을 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친구들이 돈이 남았다며, 그 꼬마 애와 게임을 하자고 했다. 이번에도 얍삽함을 보였지만, 기술에는 못 당하나 보다. 우린 승리하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버스가 도착했다. 1시간 정도를 달려 ‘신세계 백화점’에서 하차(下車)했다. 지금 ‘인천종합문화예술 회관’은 ‘국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LOBBY로 들어갔다. 좌석권은 C석이었으므로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불이 꺼지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막이 오르고 불이 켜지자 단원들이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옆의 자막이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행동을 보고, 줄거리를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연극보다 더 흥미로웠다. 주변에서는 경험이 적은 이들이 연실 박수를 쳐댔다. 막과 막 사이에 장과 장 사이에 치는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1막이 끝나고 2막이 올랐다. 우리들은 2막이 시작하기 전에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관객이 적었던 모양이다. 2막 1장, 무대 배경이 바뀌고 주인공 중심의 연기로 매우 흥이 났다. 오페라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직접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이들과 노래하는 이들의 조화는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2막 2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구성을 완전히 모르는 나로서는 3막이 시작된 줄 알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자막이 실제와 일치하지 않아 내용을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이번 장은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를 모욕하는 장면이었다.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그를 말리는 장면도 실감났고, 그 파티에 등장하여 흥을 돋우는 집시와 투우사들도 매우 잘 했다.
제 3 막, 막이 오르자 흰 침대에 비올레타가 누워있고, 안니나가 졸고 있었다. 의사가 들어오고, 진찰하자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알프레도’가 들어오고, 비올레타와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다. ‘알프레도’의 아버지도 그들을 축복하지만, 그녀는 ‘알프레도’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나의 앞좌석에 앉은 사람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으며, 다른 이들은 박수를 멈추는 것을 잊은 듯 하였다. 참으로 슬픈 사랑이야기 인 것이다. 다시 막이 오르고, 주연급 배우들이 나와 인사를 하였다. 머리가 하얀 지휘자 님을 비롯하여 ‘제르몽’역을 맡은 사람은 많은 갈채를 받았다.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밤은 늦었지만 돌아오는 얼굴들은 기쁨으로 환하게 빛났다. 집에서 INTERNET을 통해, 줄거리를 확인하면서 그 때의 감동을 되살려 보았다.




번  호 : 9
제  목 : 2000. 10. 31. 예*인 실내악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11:00
내  용 : 10월 31일 예*인 실내악 감상문

선인고 박영식

10월 31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 문의전화를 걸어 공연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표가 매진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 망설이다가 밥을 먹고, 허둥지둥 출발하였다.
버스를 늦게 타서 늦을까봐 걱정이 되었는데, 7시 정각에 도착하였다. 소공연장 입구에서 동일한 교복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있어서, 가보니, 표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들어보는 ‘예*인 실내악’이라고 적혀있었다. 대공연장에도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지만, 우선은 소공연 장에서 공연되는 것을 관람하기로 했다.
안에는 빈 좌석이 많았으며, 연령층도 어른인 것 같았다. 연주자들의 입장이 늦어지는 것 같아 팜플렛(pamphlet)을 펴보았다. 독일 대학을 비롯해 서울음대를 졸업한 사람들로 구성된 굉장히 실력있는 단체였다. Horn, Flute, Oboe, Klarinett, Bassoon의 5가지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악단(樂團)이다. 굉장히 생소했지만 연주곡은 독일어로 씌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주자들이 입장하고 그때부터, 또 불필요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쉬는 동안, 빠르기가 바뀌는 동안은 치지 않는 것인데, 무지(無知)한 탓으로 연실 손을 놀려댔다. 중간에 왔다갔다하는 무리들 때문에 장내는 좀 산만(散漫)하였고, 장난을 치거나, 떠들어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휴식이 끝난 뒤에 제일 앞좌석으로 내려갔다. 귻에서는 그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고, 호른과 바순의 굵은 음과 클라리넷과 오보에의 은은한 음은 눈을 감기게 하였다.
마지막 곡이 연주될 때는, 경쾌한 리듬이 이어져 나갔다. 서로의 호흡을 의식하면서 조화된 연주는 시간을 들여 연주횡에 참석한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연주 중간에 발견한 것인데, 바순과 오보에에는 공기주입구에 무엇인가를 껴서 사용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였다. 공부에만 구속되어 문화생활을 하지 못한 나에게 소중한 기회가 주어져 음악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제 이론도 조금씩 살펴보면서 악기에 대한 정보를 비롯해 관람태도도 습득(習得)해야 하겠다.




번  호 : 10
제  목 : 2000. 11. 4. eighth blackbird 초청연주회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11 오후 3:12:00
내  용 : 11월 4일 eighth blackbird 초청연주회 감상문

11월 4일, 제 11회 이건 음악회 eighth blackbird 초청연주회를 관람하였다. 시작하기 전에 어떤 분이 나오셔서 eighth blackbird의 소개와 연주할 곡들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이 음악회는 ‘이건산업’과 관련된 계열사나 다른 사업자들을 초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설명이 끝나고 순서대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애국가로 멜로디를 연주하다가 편곡된 것으로 이어졌다. 굉장히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Variations’였는데, 플릇,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 타악기(명칭 모름)를 이용해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을 구사했다. 그것이 현대음악이라는 것을 직시(直視)했으며, 현악기, 금관악기 등으로 연주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이윽고, 아리랑이 흘러나왔고, 애국가처럼 변주가 있었다. ‘병사의 이야기’, 이것은 theme가 있는, 그 theme에 따라 음악을 만든 것 같았다. 줄거리와 함께 들으니 지루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피콜로가 사용됐을 것이다.
휴식시간, 1층으로 내려갔다. 설명해 주시는 분이 나와서 ‘고래의 노래’를 묘사하시는데, 듣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약간의 장난기 섞인 입담으로 관중들의 웃음을 유발하였다.
짙푸른 조명이 비추고, 얼굴에 눈가리개를 쓰고 나온 3명의 연주자는 플릇을 시작으로 자극적인 소리를 냈다. 플릇 연주자(몰리 알리사 바쓰)는 굉음을 내며 열정적으로 불었다. 첼로 연주자(니콜라스 포티노스)는 현을 뜯으며 아주 가는 음을 냈다. 피아노 연주자(리사 카플란)은 건반의 떨림을 이용하여 울림소리를 냈다. 분위기는 상당히 어둡고 신비로웠다. 한참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고요해졌다. 20초 정도에 누군가의 박수소리가 들렸고, 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제야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약간은 황당했다. 조명이 밝아지고, 한국 음악 ‘님이 오시는지’를 연주했다. ‘고래의 노래’보다는 훨씬 부드러웠다.
드디어 이 연주회의 high light! ‘Thirteen ways’가 시작되었다. 한 곡조씩 읊조리며, 그에 맞는 음악을 연주했다. 빠른 연주와 느린 연주를 번갈아 가며, 악기를 번갈아 가며, 청신경을 자극했다. 어디서 박수를 쳐야 하는지를 궁금하게 하는 긴장감속에 연주! 이번에는 잘 친 것 같았다. ‘encore song’을 듣기 위해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두 명이 나와서(플릇과 첼로로 기억된다) 보리밭을 연주하였다.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후, 6명은 모두 나와 아주 신나는 곡을 연주해 주었다. 피아노 연주자는 박수를 유도하였고, 타악기 연주자(메튜 듀발)은 드럼 비슷한 악기를 다루었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일어나 무대 문을 나섰다. 현관에서 sign회가 있다고 하여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하고자하며, 몇 마디 건넬 수도 있었으나, 관두기로 하였다.
지난 연주에서(예*인 실내악)도 플릇은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는데, 이번에도 듣게 되어 그것이 주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음악인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활기를 불어넣는다. 때론 가난한 이들을 돕기도 한다. 이들 음악인들을 본받아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으면 한다.




번  호 : 11
제  목 : 2001. 2.3~2.4 별마루! ........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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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1-02-11 오후 3:13:00
내  용 : 별마루! 천체를, 아니 내가 보던 것을 확대해 보다

약대(若大) 박영식(朴映植)

별마루? 천문(天文)이라. 그래 가보자. 토요일 제물포에서 일과를 마치고 부평에서 숙제를 한 후 지하철을 탔다. 인천터미널 역. 신세계백화점과 바로 통한다. 아이쇼핑(eye shoping)을 조금 한 후, 망원경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음, 뭐지? 우선 나는 자신의 별자리를 통한 신화와 모양에 대해 듣고 별자리파트에서 오리온자리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망원경을 통해 태양관측을 하려 했으나 건물에 가려 볼 수 없었다. 천체사진들을 보며, 약간의 담화를 나누고 달 사진을 얻기 위해 다른 것도 보려 했으나, 사진이 없다고 해서,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그들은 고등학생티를 많이 냈고, 그것을 핑계로 소홀히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행사 자체를 주관, 개최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난 버스를 타고 석바위로 갔다.
이튿날, 부모님과 신세계백화점으로 갔다. 난 구두를 샀다. 어 탈(mask)전시? 국내와 국외의 탈이 전시되고 있었다. 한바퀴 돌고 별마루 행사현장으로 갔다. 음, 이번에는 태양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실망. 흑점이라며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망원경 렌즈의 이물(異物)질 같았다. 어쨌든 다른데를 들려야 했으므로, 1시간 정도 비웠다. 해가 지고 달이 보였다. 난 일을 보고 와서 아스트로카(astrocar, 국내에 2대 박에 없다는)를 보기 위해 줄을 섰다. 그 전에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했다. ‘배율이 낮군..’ 좋아 내 차례. 아스트로카에 희망찬 발걸음으로 올랐다. "음? 달랑 망원경 1대?" 접안렌즈에 눈을 가까이 가져갔다. 크레이터와 달의 바다가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육안으로도 언뜻 보이는 것이다. 실망한 표정으로 담당자를 바라보자. “희미하게 보이지?” 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발이 절로 차 밖으로 향했다. 난 달 사진이라도 받기 위해 폴리네타리움으로 가서 말을 들었다. 다 아는 얘기들. 스티커를 받고 본부석으로 갔다. 난 1장을 붙이지 못했지만(스티커는 모두 6장) 사진을 주었다. “음, 뭐지? 겨우 줌 효과를 이용해서 확대했군.” 난 이 행사에서 비싼 망원경을 구경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 이렇게 실망일 줄이야. 난 또 다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로 갔다.




번  호 : 12
제  목 : 2001. 2. 4 제 26회 독수리 사진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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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1-02-11 오후 3:13:00
내  용 : 제 26회 독수리 사진전 관람 후

약대(若大) 박영식(朴映植)

2월 3일 한서신용금에 전화를 했다. ‘몇 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까?’ “관계자는 식사하러 가서 모릅니다.” 난 우선 헌혈의집과 신세계백화점을 들렸다. 다시 문의를 했다. “7시까지입니다.” 5시쯤 석바위에 도착했다. 한서신용금고를 찾는데 애를 좀 먹었지만 방향감각에 신용을 둬서 많이 헤매진 않았다. 짠, 입실. 엇.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막 화가 치밀었다. 젠장! 난 어쩔 수 없이 주안역으로 갔다.
2월 4일 신세계백화점에서 석바위로 가는 35번을 타고 인고에서 내렸다. ‘그래 100회 졸업 축하한다.’ 씁쓸했다. 어제 가 봤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니, 또!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절대후문이용’ ‘후문?’난 표지를 보고 후문을 찾았다. ‘설마, 어제도 열려 있었을까?’ 내 앞에는 선화여중 2명이 있었다.(방명록에 적힌글을 우연히 보았다.) 난 오른쪽으로 천천히 관람하였다. 사진부로 보이는 재학생이 사이다를 갖다 주었다. 이제 왼쪽으로 넘어가 전문적으로 제작된 액자를 둘러본 뒤, 동문으로 보이는 사진작가(아마도)님께 인사를 하고 작품설명을 들었다. 매우 친절하셨다. ‘가수 4명’을 촬영하셨다고 하셨다. 설명을 들으며 다시 관람하니 더 재미있었다. 아주 귀한 백두산 사진, 결혼을 앞 둔 신부의 사진, 잡지의 표지모델, 사막의 야자수, 공중에 부유(浮游, 벽면에 막대를 이어 물체를 뜬것처럼 보이게 함.)한 달걀과 초, 시골의 풍경.... 정말 멋졌다. 그래도 시골의 사진은 정서적 안정을 주는 유일한, 어떤 사진보다도 정감있는 사진이었다. 방명록에 인상 깊은 사진들을 적고, 인사를 드린 후 박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 숨’ 또 경솔한 행동을 했으며 못 볼 뻔했다. 난 다시 주안역으로 향하며 전에 봤던 ‘퓰리처 사진전’을 회상해 보았다.




번  호 : 13
제  목 : 2001. 2. 1.& 2001. 2. 10 교회 체험.....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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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 2001-02-11 오후 3:15:00
내  용 : 교회 체험. 중창단과 찬양의 밤.

약대(若大) 박영식(朴映植)

브니엘(peniel), 하느님의 음성이란다. 난 점심을 먹고 1반 애들을 따라 갔다. 시작 30분전에 가서 팜플렛을 들춰보고 있었다. 목사님이 나오시더니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시작되었다. 예배. ‘음, 미사와 다르군. 글쎄 나의 신앙은?’ 여러 생각을 한 뒤. 계속되는 스테이지를 보았다. 윗대선배, 후배를 차례로 보고, 단원소개. 차력, 율동이 좀 어색했다. 엘피스(elphis). 좋군. 마지막 스테이지. 울고불고. 그래 잘 했다. 마직막의 합창. 역시 어떤 발표회든 함께가 가장 멋지다. 난 방명록에 글을 남긴 뒤 영진이와 집으로 향했다.

울트라 성지야. 교회의 축제. 성당의 축제와 다를 것이다. 어떻게 찬양을 하며, 활동을 할까? 성당 행사만 보아오던 나에게는 이번 경험이 참으로 중요할 것 같았다. 늦게 도착하여,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보지 못했다. Opening 의 ''스킷드라마''는 절대적 신앙관련이었다. 다음 말씀, 축도가 이어졌다. 이들은 참 잘 구성했다. 늦게 오는 이들에게도 말씀과, 축도를 볼 수 있도록. 그런데 찬양 후, 착각으로 빠졌다. 사회자가 "''제 1회 찬양의 밤, 울트라성지야''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여태까지 뭐였지? 어쨌든 30분밖에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6시 30분에 성당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찬양이나 중창, 듀엣은 성당이랑 다를 것이 없었다. 수화! 성가로 하더군. 성당은? 대중가요. 수화는 2곡을 한다는데, 1곡이 끝난 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음 그래 어떻던가? 찬양이다. 성당의 행사는 찬양이 비교적 적다. 그리고 신부님이 나오시지 않기 때문에 행사를 통한 전도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어차피 좋지 않은 인상이지 않는가? 신부님과 학생들이 연계된 행사 진행과 준비로 전도는 물론이고, 준비한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게 진정한 목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신부님이 진정 원한는 행사는 무엇인가? 우리 성당은 항상 그 점을 간과해 온 것 같다. 했던 대로, 그렇게. 항상 그렇게 해 온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으로 피곤한 나는 미사 강론중에 졸았었다. 난 나의 신앙을 반성해 보고 있다.




번  호 : 14
제  목 : 2001. 2. 20 명동기행기(明洞紀行記)
작성자 : 박영식
E-mail : pch3402@hanmir.com
U R L  : http://
시  간 : 2001-02-20 오후 10:23:00
내  용 : <p align=center>명동기행기(明洞紀行記)
<p align=right>若大 朴映植</p>
집에서 마지막 확인 전화(관람가능 시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눈이 자꾸 가렵고 침침(沈沈)하기에 안과(眼科)에 들렸더니, 알레르기(독일어Allergie)라 하셨다. 처방을 받고, 철도(鐵道)로 25정거장을 서서 이동하게되었다. 인천 1호선 4정거장, 1호선 19정거장, 4호선 2정거장을 가서 ‘명동역’에 하차(下車)한 것이다.
건물의 높이는 인천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난 직감으로 무작정 걸었다. ‘음, “수도회”가 있는 것을 보니 여기쯤인가 보군.’ 그런데 ‘계화초등학교’라는 문패(門牌)가 있었다. ‘어?’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십자가가 있는 비교적 큰 건물이 보였다. ‘저기군.’ 굉장히 삼엄한 경찰서를 지나 육교를 건너 PBC(평화방송) 건물을 지나갔다. ‘이런, 교회잖아!’ 난 문의(問議)할 행인을 찾았다. 일단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질문했다. ‘저쪽에 있습니다.’(물론 자세히 설명했지만 그냥 이쯤 써둔다) 난 다시 역행(逆行)했다.
‘수도회’건물과 붙어있을 것이라고 직감했지만 도저히 입구를 찾을 수 없어서 상권(商圈)으로 진입(進入)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식당만이 즐비할 뿐 패션쇼를 하는 이들은 없었다.(물론 다 돌아보지 않아 그럴수도 있다.) ‘수도회’건물 쪽으로 가면 갈수록 뒷골목이라 무서워졌다. ‘어?’경찰들이 ‘계성여고’를 막고 서 있었다. 좌회전하여 우측을 보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가톨릭 회관’이 보였다. ‘찾았다!’ 가까이 가보니 경찰들이 늘어서 있고,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폐지를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난 자연스럽게 그러려니 했지만,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우선, 명동성당을 멀리서 훑어보고 가톨릭회관으로 들어갔다.
1층 평화화랑의 ‘주보사랑전’! 안내인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차례대로 주보 제작과정을 보고 나서, 역대 주보를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교회주보와 비슷한 형태였다. 특이한 점은 광고가 삽입되었다는 것이다. 타종교와 세계의 주보를 보며 어떤 것이 좋다는 평가는 할 수 없었다. 불교의 주보는 불교사보(佛敎寺報)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주보삽화(성화, 聖畵)를 관람하였다. 지역 주보도 있었는데, 인천교구주보는 2000. 12. 31일 판이 전시되어 있었다. 도서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서울주보’라는 모음집말고는 관심이 가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어 ‘관람느낌’을 기록하고 나가려는데, 달력과 포스터를 주셨다. 팜플렛이 없어 아쉬웠지만 포스터로 대치했다.
가톨릭회관에서 나와 명동大성당으로 향했다. 생각만큼 크지는 않았다. 위치도(位置圖)를 보고 대성당안으로 들어갔다. 대성당의 문은 4개인 것 같았다. 좌측으로 가서 앞으로 가니, 왼쪽 중앙에 ‘79위 복자회’액자가 있었다. 필요한 내용들을 간략히 기입하고 있는데, “저기 5000원 짜리 있어요?” “네” 아무 생각없이 5000원을 내주었다. “저, 가져도 되죠?” ‘어, 당했다.’ 순간 “왜요?” “밥도 못 먹고, 배고파서요.” “……”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30대 중반으로 보이고 구걸할꺼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외모와 옷차림이었다. 난 속으로 그냥 기도했다.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 액자 좌측에는 이승훈베드로님의 영정(影幀)이, 우측에는 김대건 안드레아신부님의 영정(影幀)이 있었다. 성당의자에 앉아 1분정도 기도했다. 아까 그 사람에 대해서도... 우측으로 가니 중앙에 ‘명례방 초기 천주교 집회’액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우측에는 김범우 토마스님, 좌측에는 이벽 요한님의 영정(影幀)이 있었다. 제대(祭臺)는 답동성당과 비슷하게 첨탑(尖塔)모양의 집과 여러 초로 되어있었다.
난 중간의 문으로 나왔다. 성수대(聖水臺)가 있었다. 각 문마다 배치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만나는 방’과 ‘계성여고’가 보였다. 더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에 ‘성모무염시태’가 있었고, 그 좌측에는 무인 초판매대, 우측에는 봉헌함이 있었다. 더 안으로 들어가자 ‘수도회’, ‘계성초등학교’가 있었다. 난 이런 학교는 별로 다니고 싶지도 내 자식을 보내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잦은 농성과 아까 지나왔던 살벌한 경찰서로 주위 환경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인천 도화동천주교회와 연결되어있는 박문여고는 최소한 농성과 경찰들로 인한 저해요소가 없는 듯 하다.
‘만나는 방’옆에 있는 ‘소성당’으로 들어가 보려 했으나, 왠지 분위기가 안 좋아 나가려고 했다.(성가 부르는 소리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대교구청이 보고 싶어졌다. 관리인이 묻길래, “그냥 둘러보려고요.” 하도 수상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내가 성당에서 나올 때, ‘나의 돈을 받은 이’가 서성거리고 걸인같은 할아버지가 다른 이에게 “1000원 있소?”그랬다. 난 모든 이들을 무시하였다. ‘국가 보안법폐지’를 외치는 이들 ‘이상한’전단지를 배포하는 이들, 검은 옷을 입은 경찰까지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빠른 걸음으로 ‘명동역’으로 가고 있을 때, 반짝이는 물체! ‘앗, 조춘이다’ 진짜였다. 그가 지나가고 웃음이 났고, 발걸음이 쳐졌다. 그러나 ‘계성여고’앞의 경찰을 보고 다시 서둘렀다.
명동역에 온 것과 마찬가지로 부평역까지 가서, 부평구청역에서 내린 뒤, 도서관으로 갔다. 전철에서 앉지 못해 다리가 무지 아펐다. 열람실(閱覽室)에는 ‘차영식’이 있었다. 얼마 후, ‘배진’도 왔다. 난 모의고사 ‘수탐2’를 풀고 배진과 함께 나왔다. 난 마을버스를 타러 갔는데, 대우자동차 시위사태로 집중(集中)된 경찰들이 있었다. 이젠 그 검은 옷이 지겨워졌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빨리 모든 일이 해결되어, 구걸하는 이들, 농성하는 이들, 시위하는 이들이 없어지길 바랬다.




번  호 : 15
제  목 : 대학 첫 여행 OT!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http://pys.i21c.net
시  간 : 2002-03-11 오후 7:31:14
내  용 :  대학에 입학하여 첫 여행을 가게 되었다. 이름은 흔할지 모르나, 누구나 새내기라면, 첫 OT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 할것이다. 나도 대학 생활의 첫 행사인 이 OT에 대한 엄청난 흥분으로 걱정도 있었지만, 기대감에 가득차 있었다.
당일, 일찍 나가서 기다렸지만, 추운데서, 인솔자(집행부라 하더군)들이 늦게 나올줄은 몰랐다. 출발이 매우 지연되었다. 실질적으로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행사에 미흡한 탓이 많아 항상 지연되기 일쑤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일단 출발.. 3시쯤 휴게소에서 찬밥을 먹고,. 그렇게 숙소에 도착...
간단한 입학식(입소식이겠지...)을 하고, 좀 쉬는가 싶더니, 조별로 구호 등을 준비하래나.... 어쨌든, 이런 단체활동이 OT인줄 알았다면, 안 갔지.....
일단, 첫날 행사는 그렇게 끝내고, 술자리... 술도 술이지만, 먹을 것이 너무 없어, 배고픔을 달래느라 힘들었다. 다음날, 일찍일어나야 했고, 체조... 학부에서 준비한 행사들을,,, 참으로 힘겹게 마치고, 총학생회에서 마련한 행사에 참여하고... 매우 힘들면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이끌렸다. 밤.... 술이나 먹고, 사고 나서 그냥 자버렸다...
음, 대학 첫 여행치고는 실망스러웠지만.. 이런 것이 OT라는 생각에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이 OT로 대학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번  호 : 16
제  목 : 2002년 4월 18일 여의도유기(汝矣島游記)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http://pys.i21c.net
시  간 : 2002-04-18 오후 10:13:47
내  용 :  수학시험을 치르고, 시험장을 빠져 나왔다.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사물함에서 교재를 꺼내들고, 고민을 했다. 동아리방에 갈까.... 시험전에 시험장에서 우철선배를 만났다. 그 때,
"너 왜 동방 안와?"
"오늘 갈꺼예요."
라고 말도 했었고, 어제 안 갔기 때문에 오늘 가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생회관에 가서, 일단 교통카드 충전을 했다. 우철 선배가 동방에 있을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그제서야 학생회관으로 들어서고 있어서, 같이 올라갔다.
동방에 올라가니, 선배 2분이 눈을 감고 계셔서 조용히 나와, 전산원 농구장에서 잠깐의 농구를 했다. 미나가 기타를 들고 와서 잠시 구경한 뒤, 같이 원형 잔디로 갔다. 우희를 기다리기 위해서 였다. 그곳에서 섬유공과 선배의 리서치를 도와주고 대건선배의 기타연주를 들었다. 얼마후, 우희가 나왔지만, 소풍에 동참하지 못 한다고 했다.
일행은(우철, 선영, 영식, 미나) 한솥에서 도시락을 구입해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으로 향했다. 처음 가봐서 상당히 설레였다. 버스에서 게임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했다.
생각보다 빨리, 한강에 도착했다. 초등학생들이 있을 뿐, 공원은 한가했다. 연 날리는 것을 구경하면서 도시락을 먹었다. 잔디는 푸르고, 날씨도 매우 좋았다.
미나의 반주로 노래를 부르다가 자호선배가 도착했다. 자호선배가 가져온 글러브와 테니스공을 이용해 놀다가, 난 연을 날려보았다. 그렇게 멀리날린 것은 처음이었다. 연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이윽고, 투수, 타자, 포수만 있는 야구가 시작되었고, 도중에 효선선배가 도착했다. 이제 외야수도 있고, 1루수도 갖춘 제법 야구 다운 야구를 했다. 게다가 배트도 pet병을 이용했다. 손이 아팠기 때문이다. 얼마를 그렇게 놀다가, 혼자있는 미나가 춥다고 해서, 정리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효선선배와 선영선배, 우철선배가 계속 공을 주고받았다.
6시가 넘어가고, 효선선배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어디론가 갔다. 나는 중간쯤 와서야 63빌딩으로 가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농구장이 좋은 아파트를 지나, 63빌딩으로 들어갔다. 역시 처음 이었다. 그러나 놀랄만한 것을 없었다. 1층만 봤을때는 그냥 상점이었다. 식당가로 들어가,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치킨조각을 기다렸다. 치킨은 매콤한 맛으로 취향에 안 맞았지만, 그냥 먹어버렸다. 콜라는 coca cola.....
63빌딩을 나와, 5호선 여의나루역으로 갔다. 매우 매우 깊었다. 한강탓으로 그렇다고 씌여있었다.. 어쨌든, 모 기업의 멋진 광고가 즐비했다. 난 그렇게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을 구경하고, 신길에서 인천행 전철을 타고 귀가 했다.


번  호 : 17
제  목 : 2002년 4월 5일~7일 가대연 새내기 한마당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http://pys.i21c.net
시  간 : 2002-04-20 오후 5:58:01
내  용 :  4월 5일 식목일 날이 밝았다. 모임 시간이 1시라 여유가 있었다. 천천히 상경할 준비를 한 뒤, 편한 옷차림으로 지하철을 탔다. 1시간을 꽤 넘어 명동역에 도착했다. 명동의 거리는 비교적 한적했다.
가톨릭회관 앞마당에 들어서니, 이미 도착한 이들이 보였다. 아는 사람은 없었다. 10분정도 기다리다가, 조를 확인하고, 효선누나가 오기를 기다렸다. 동훈 선배가 자호형과 미나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빛나는 눈부신 받으며, 누군가를 계속 기다렸다. 어느정도 사람이 모이고, 숭실 프꼬인도 다 모였다. 접수를 하고, T-shirt와 책을 받았다. 일정을 보고, 조원들과 모여 담소를 나눴다.
4조인 나는 효선누나와 함께 조에 속해 정말 기뻤다.(+.+!) 우리조는 버스에 제일먼저 탑승해 뒷자리에 안자, 각자 소개하면서 얼굴을 익혔다. 조장님이 조별 모임시간에 하게될 조이름을 미리 생각하자고 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조들도 버스에 탔고,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차가 달리는 중에 조이름을 생각해 보았으나, 역시 특별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침체된 분위기 전환을 위해 게임을 하며,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차안에서의 전례 후, 김밥이 제공됬고, 음료수와 함께 먹었다.
우리조는 앞에 앉은 사람들이 자고 있었음에도, 상당히 시끄럽게 놀면서 갔다. 처음부터 너무 재미있었다. 이윽고, 덕평에 도착했다. 우리조는 식당위에 있는 방 하나를 배정받고, 조장님을 주축으로 조이름, 조구호, 조가를 정했다. 내가 MT와서 그렇게 많이 연습해 본 적은 없었다.(사실 MT를 많이 안 갔다.) 몸이 굳어있는 나로서는 계속 어설픈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잠시, 저녁밥을 먹으러 내려갔다. 음식은 맛이 있었고, 배식하는 분들도 참 친절했다. 식사후, 밖에서 여러가지 놀이를 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율동도 했던 것 같다.
그 후, 우린 모두 강당에 모였다. 의장님의 말씀이 있은 후, PROJECTOR에서 나오는 가대연에 대한 소개를 보았다. 가대연의 문화... 아직 잘 알지는 못하지만, 비교적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전례 프로그램도 마치고, 숙소로 모였다. 그곳에서 새로만난 선배들과 담화를 나누고, 얼마간 윗층에서 놀았다. 오랜만에 베개싸움도 하고, 몸에 땀이 날 정도였다. 자봉단의 제재로 다시 숙소로 내려와 잠을 청했다. 첫날, 난 같은 방의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순식간에 잠들었다.
다음날 6시 40분, 7시가 기상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일어나 머리를 감았다. 7시 누군가가 들어와 잠든 이들을 깨웠다. 강당으로 가, 율동을 몇 개 하고, 아침을 먹었다. 비가 내려 땅을 적셨다.
아침전례를 하고, 신문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조는 잡지 표지 형태로 제작했다. 발표는 하지 못했지만, 유익한시간이었다. 발표자들의 아이디어가 정말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그 사진을 다시 봤는데, 역시 재미있다.
점심식사 후, 공동체 놀이가 진행됬다. 우리조의 첫번째 post에서는 율동을 배웠다.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 더 재미 있었다. 다음으로 방석퀴즈 하는 곳을 갔다. TV를 잘 안 본 탓에 분위기를 알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곧 적응하고, 정말 망가져버렸다. 문제를 잘 맞ㅊㄴ 우리조는 상대조에게 너무 미안했다. 윤종신을 닮은 선배의 팔굽혀펴기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퀴즈 속에서 여러 사실을 배우고, 밖으로 나가면서 다들 좀 전의 일이 힘들었다는 것을 토로하는 듯 했다.
이번에는 말을 하지 않고, 문장을 설명하는 post였다. 난 잘 할수 있을 것 같아서, 설명자를 지원했는데, 문장이 많이 어려웠다. 매우 고전하다가, 진행자의 부연설명으로 5문제를 맞추게 했다. 상대편 조는 문제가 비교적 쉬웠고, 설명자도 매우 잘해, 6문제나 맞췄다. 그 때도 비는 계속 내렸고, 아쉬움을 남겼다.
네번째 post에서는 선을 밟지 않고, 자리를 옮기는 게임을 했다. 여러시도로 노하우를 익히 우리조는 두 번의 경기 모두 이겼다. 여인들이 내 앞을 지날때의 설레임은 아직도 잊을수 없다.
우린 밖으로 나와 강당으로 들어갔다. 고구마와 음료수를 먹고, 잠시 쉬었다. 이번엔 피구! 선배가 후배를 보호해 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빨리 끝날줄 알았는데, 선배들의 후배사랑으로(?) 정말 오래갔다. 그래서 1쌍이 남을 때까지 하는 것으로 정해서, 수적으로 유리한 우리편이 승리했다.
우리조는 마지막 post로 이동했는데, 끝나지 않은 조가 있어서, 조방으로 들어와 잠시 쉬었다. 얼마후 자봉단 선배가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갔다. 돌다리의 첫번재 돌을 의미하는 노둣돌. 그 이름을 가진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아, 열심히 했더니, 우리 조가 1등으로 들어갔다. 조금 싱거운 감이 있었지만, 기뻤다. 다음은, 발과 엉덩이를 이용한 달리기였다. 나도 참가 했는데, 매우 빠른 상대편에게 밀려 3등으로 들어갔다. 엉덩이가 뜨거워서 참 난감 했었다.
공동체 놀이가 끝나고, 저녁을 먹었다. 그 때부터 인지는 몰라도, 퇴식시 식판을 몰아주기로 했다. 정하는 과정이 너무 시끄러워 마음에 안 들었다. 어쨌든 식판을 물린 뒤, 비가 그친 밖에서 돌아다녔다.
이제 새내기 배움터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이다. 난 율동을 배우기로 했다. 한결같이였다. 효선누나와 상철선배에게 잘 배울 수 있었다.
문화제. 특정한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다 기억나진 않고, 촛불공연후, 내가 속한 율동팀이 나가게 되었다. 사회자가 나에게 마이크를 넘겨 줘서 약간의 소개와 느낌을 말했다. 음악이 나오고, 난 배운대로 율동을 했다. 그런데 관중이 자꾸 이름을 불러서 음악이 잘 안들렸다. 음악만 잘 들렸어도 안 틀릴수 있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문화패 공연. 내가 본 어떤 예술제 보다도 뛰어났다. 역시 장산곶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절도있는 동작.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다.
이젠, 물기가 약간 남아있지만, 그래도 뛸 만한 운동장으로 나갔다. 대동놀이.... 대학들어와 세번째 맞는 것이다. 그런데, 더 특별했던 것은, 청어엮기와 헹가레가 있었다는 것이다. 청어엮기는 처음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마이크를 잡은 자봉단의 목소리가 얄궂기는 했으나 재미있었다.
뒤풀이. 공동체 놀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모카 케잌을 받은 우리조는 화려하게 시작했다. 그리고 자봉단 방에도 가서 약간의 퍼포먼스(performance)를 했다.(아시는 분은 기억에 묻어버리시길...)
방에서 처음으로 pet병 소주를 받으며, 안주에 즐거워했다. 그러나 너무 쉽게 잠들어버리는 조원들을 보며, 밖에서 즐기는 이들을 무시한체 나도 자버렸다. 너무 뒤풀이를 싱겁게 만들어 미한했다.
마지막날 아침. 밥을 먹고, 학교별로 모였다. 학교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 이지만, 새로웠다. 자봉단 선배님들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자꾸 소감을 묻는데, 정리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린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갖은 후, 미사를 드리기 위해 강당으로 들어갔다.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었던 강론과, 묵상시간의 슬라이드는 참 좋았다. 미사후, 점심을 먹고, 방을 정리한 후, 버스에 올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다가 서울에 도착했다. 쌀쌀해진 날씨에 옷을 하나 더 걸쳤다. 우리조는 후일을 기약하고, 각 학교별로 모였다. 우리 학교는 chinese restaurant 에서 조촐한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새내기 한마당. 정말로 재미있었다. 가대연의 문화도 어느정도 알았고, 매우 좋다고 느꼈다. 다른 단체에 속했던 것과는 표현할 수 없는 다른 느낌 있었다. 특별히, 놀이를 통해 공동체감을 형성하고, 서로를 희생하는 것을 보았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내년에는 헌내기가 될 테지만, 그래도 올해의 새내기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번  호 : 18
제  목 : 영화-인생은 아름다워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pys.i21c.net
시  간 : 2002-06-01 오전 7:53:53
내  용 :  6월제를 지내는 숭실대에서 동화영화제가 열렸다. 월드컵 개막전과 겹쳐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난 어떤 이유에서 갔었다.
제목에서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동아리 연합 회장님의 설명으로 재미와 감동이란 말에 대충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역시 처음부터 흥미를 끌었다.

주인공의 재치있는 행동과 대담한 언변으로 주위사람들을 포섭하고, 반동세력을 무마시킨다. 그러나 그는 유태인으로 독일인들에게 괄시를 당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열심한 연애(정말 천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성은 영화임을 거부하진 못 했다.)로 결혼에 이르고, 아들까지 갖게 된다.(비약적인 전개가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장모의 방문날, 유태인인 그는 숙부님과 함께 강제 노동을 하러 끌려간다. 그속에서 그는 희망을 잃지 않게 하려고 자식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열차에 오르기 전, 주인공의 아내는 자신도 탑승시켜주길 요구한다. 결국 열차는 잠시 멈췄다가 그녀를 태우고 정말 처참한 곳으로 떠난다.

주인공은 노역소에서 아들을 위해 온갖 거짓말을 하며, 숨겨준다. 숙부님은 가스 샤워로 명을 달리하고, 희망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신체검사일 귀도(주인공)는 지인을 만나게 되고, 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그곳의 아이들과 어울리게 한 뒤, 비밀리에 지인(의사임)과 여러 대화를 나눈다.(답이 오리가 맞나? 왜 확실하게 안 나오지?)

어느날, 전쟁이 종료됬다는 말과 함께, 수용소가 어지러운 틈을 타서, 귀도는 아들을 숨기고, 아내를 찾아 가지만, 독일군에게 적발되어, 사살된다.(반전을 기대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귀도의 거짓말은 현실이 되어 아들에게 전해진다. 아들과 어머니는 재회하며 자막이 올라간다.

감동과 재미. 지나친 우연성이 없지 않아 있지만, 민족에 대한 편견에도 반기를 든다는 여러가지 면을 담고 있다. 오랫만에 본 영화가 무료 관람이 됬다는 것에 대해 참 기분이 이상하다. 어쨌든, 아버지의 사랑은 대단하다. 또 남편으로서의 사랑도.......


번  호 : 19
제  목 : 민중해방열사 박래전 14주기 추모 유월제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amail.com
U R L  : http://pys.i21c.net
시  간 : 2002-06-08 오후 10:14:28
내  용 :                                          유월제를 지내고.

그 때가 화요일 이었을 것이다. 열사 평전 독후감을 공모한다고 하여, 난 비교적 구하기 쉬운 박래전 열사 평전을 읽기로 했다. 그래서 ‘박래전 열사 기념사업회’에 가서 약전 한 권을 받았다. 그래서 제출마감 전날 독후감을 쓰려 했었다. 그러나 동아리 MT로 상황이 안 되었다. 그러나 MT중에 아침시간이 남아 다이어리에 어느 정도 적었고, 그날 편집하려 했는데, 하지 못했다. 다음날 즉, 마감일 쓸까 말까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학과 실습실에 가서 전날 써 놓았던 것을 입력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이 나와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E-MAIL로 제출했다.
그리고 다음날 접수했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29일 날 참석하라는 글과 유월제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5월 29일 선포식.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그날 발표가 있어, 준비하느라 때를 놓쳤기 때문에) 3시경, 원형잔디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난 선포식이 취소된 줄 알았다. 10분정도 지나고, 멜빵바지를 입으신 분이 보였다. 난 내가 참석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쉽지 않았지만, 인사를 하고, 선포식에 참석했다. 총학생회장, 인문대 학생회장, 동연회장님 등의 말씀이 있은 후, 시상이 있었다. 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선포식이 끝나고 6월제 교양학교가 있었는데, 수업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영상자료도 있었다고 하는데, 아쉬웠다. 다음날, 강연회 역시 동아리 행사로 불참했다.
5월 31일 동화영화제가 있었다. 월드컵 개막전이 있었는데, 그냥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래서 과학관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를 관람했다.
6월 4일 추모식이 있었다. 88년 6월 4일에 분신하신 박래전 열사를 기리는 시간이다. 유가족분들과 기념사업회 회장님까지 참석하셔서 상당히 엄숙했다. 그날은 황토의 친구가 옆에 있어, 같이 참석할 수 있었다. 황토의 공연 후, 헌화도 하고, 향도 피우고, 여러 의식을 했다. 그 날은 수업 종료 5분전에 들어갔는데, 출석이 인정되었다.
6월 5일은 학회세미나로 문화제를 보지 못했다. 노랫소리와 사물소리를 멀리서 들었을 뿐이었다.
6월 6일. 모란공원참배. 이것이 가장 중요한 행사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박래전 열사께 직접 간다는 생각에 설레였는지, 일어나 보니, 9시 10분이었다. 학교가 집에서 멀어, 학교까지 가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10시까지 모이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부평에서 황토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학교가 가까워 집이었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학교로 갈까 직접 갈까를 계속 고민해야만 했다. 어쨌든, 신도림에 가서 또 연락을 취했다. 친구는 아직 학교에 도착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모란공원으로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원주 누나에게도 전화를 해봤으나,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난 청량리까지 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4호선이 지나는 동대문역까지 갔다. 다시 전화를 해 보니, 대절한 버스를 이용한다며, 학교로 왔으면 같이 갈 수 있었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 나는 여기까지 온 이상, 직접 가겠다고 말했다.
청량리. 모란공원까지 한 번에 가는 1330번을 타기로 했다. 어디가 정류장인지 몰라서 헤매다가 버스를 발견하고, 지하도로 재빨리 건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경기지역 버스라 버스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어쨌든 요금을 지불하고, 좌석에 앉아, 땀을 식혔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자료집대로라면 도착했어야 하는데, 어딘지 조차 몰랐고, 버스는 심한 정체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더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속 기다리며, 창밖을 보았다. 구리를 거쳐 남양주시로 접어들 무렵, 지나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같이 탄 사람들이 마석역에 간다는 것을 알고, 좀 더 기다렸다. 2시간 정도 경과하여, 간판에 ‘마석’이란 글자가 들어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님께, 마석역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여쭈고, 모란공원에 간다고 말했다. 잠시 후, 마석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다음에서 내가 내렸다. 그곳이 모란공원이었다.
미술관 옆에 공원입구가 보였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버스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무덤쪽으로 올라갔다. 그냥 둘러보고 있었는데, 낯익은 깃발이 보였다. 그쪽으로 가니, ‘당신이 서 있는 곳’이란 글자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친구를 찾았다. 휴~~ 무사히 도착했다. 행사는 지연되고 있었고, 친구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시작된 행사, 여러 사람들의 말씀 후, 헌화, 참배가 이어졌다. 그 후, 도시락을 받아 들고, 그늘에 모여 밥을 먹었다. 아침도 굶은지라, 매우 배가 고팠다. 식사 후, 묘지를 다시 둘러보았다. 박래전 열사 옆의 전태일 열사의 동상. 매우 인상 깊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내려오면서 열사들의 정신을 되새겨 보았다. 공원입구에서 사무국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올 때와는 다르게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됐지만, 다른 사람의 자리가 없을 까봐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편히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열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열사들의 희생정신을 다시 생각해 보며, 금년에 지낸 유월제에 대해 다시 돌아본다.



번  호 : 20
제  목 : 2002 서가대연 여름 농촌 공소 활동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pys.i21c.net
시  간 : 2002-07-12 오후 11:53:32
내  용 :  9시. 단대 동방에 모였다.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짐을 갖고, 명동으로 옮겼다.
접수 및 자료집, 옷을 받고.,,, 차에 올랐다. 석수, 성균, 기용, 동훈 선배님들이 오셨다. 매우 매우 반가웠다.
지훈형의 실수로 필름 1통을 날려버렸다. 명동에서 출발하여, 단국대를 지나갔다. 차량프로그램도 진행되었다.
12시 40분경 여주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1시 15분 다시 출발했다.
4시 구담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5시에 다시 선교리로 떠났다. 6시 20분경 도착했다. 저녁전례 후에 저녁식사를 했다. 10시와 11시 사이에 학생반 애들을 데려다 주었다. 그 과정에서 반딧불을 발견했다. 매우 매우 좋았다. 12시 15분 평가가 시작되어 언제 끝났는지도,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다음날 5시에 일어났다. 오전작업으로 피사리를 나갔다가, 12시 30분에 다시 들어와서, 밥을 먹고, 1시 30분에 출발했다. 계속 피사리를 하고, 5시 30분에 저수지에 가서 놀다가, 홍보와 길놀이를 하고, 신부님이 오셨다. 12시 30분정도에 평가가 끝나 그 때 잘 수 있었다.
3일째, 4시 30분에 시끄러운 소리로 깼지만, 좀 더 자고, 5시 5분에 일어났다. '한걸음씩'을 했다. 포도봉지싸기를 하며, 작업을 했다. 점심, 새참 모두 좋았다. (자세한 것은 다이어리에..) 청장년반이 운영되었다. 첫날 포도나무의 생식법에 대해 들었다. 안주없는 막걸리로 당황했었다. 미사를 드리고 도중에 평가를 했다.
4일째, 나는 포도농장에서 아주머니들에게 물을 갔다 주는 일과 여러 잡일을 했다. 실질적으로 한 일은 없어보였다. 물빼기, 줄기 올리기, 포장하기로 요약된다. 매우 더웠다. 너무 쉬엄쉬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반면, 평가 때, 모두 즐거웠고, 할 맛 난다고 했으며, 많이 먹었다고 해서 덜 미안했다.(권오수 님 댁이었다.) 첫 머무르기 평가가 있었다. 그것을 듣고 희망에 벅차올랐다. 와우.1!! 서로 긴장하기로 했다. 힘내자..
5일째(7월 5일) 비가와서 피사리에 나섰다. 힘들고 열악한 환경, 날씨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가 일했다. 소방서에서 화장실을 이용했다. 새참이 인상적이었다. 대건이형이 아퍼서 수면후에 나아졌다. 우철형도 아픔을 호소했다. 즐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7월 6일 6일째, 난 피사리를 하는 집에서 머무르기를 했다. 컵라면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머무르기 집에서 TV, 인터넷도 하고, 집에 전화를 했다. 그댁의 어머님과 전화요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버님과는 귀농이야기를 했다.
7월 7일 일요일이다. 아침에 마을 청소를 했다. 미사를 드리고 나서, 점심을 먹었는데, 설거지 등의 정리를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이 소백이와 한과를 얻었다. 물놀이를 했고, 해가 잘 들어서 빨래를 했다.
7월 8일 나는 지킴이다. 아침밥은 망했고, 잠으로 일관했다. 주방을 깨끗하게 닦았다. 재료가 없어서 카레를 자장으로 대체했다. 비가 와서 빨래를 걷었다. 새내기의 날이라 난 전례주체를 했는데, 형식에 얽메이고 말았다. 난 사실 바빴다.
7월 9일 논매기 작업을 짧게 했다. 마을잔치날이기 때문이다. 잡풀이 너무 많아서 죽는줄 알았다.
마을잔치!!! 동네분들의 엄청난 호응으로 광란의 밤이었다. 2차도 장난이 아니었다. 어떻게 잤는지 알 수 없었다.
7월 10일 파리때문에, 8시경에 일어났다. 비비적대다가 8시 반에 세안을 하고 안경을 찾았다. 다리에 쥐가 나서 소리를 지를뻔 했다.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하고, 속이 쓰린 것 같기도 하다.
2시 10분 회관 정리를 하고, 출발했다. 3시, 해단식 장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갔다 오다가 적십자 간호대, 중앙대(풍양마을)을 만났다. 새한 때, 옆조였던 사람들과 같은 방이 되었다. 반가웠다.
체육대회의 줄다리기에서 우승했다. 손에 부상을 입었다. 윷놀이는 2등을 했고, 계주는 4등을 했다. 주체님의 낙상으로 걱정했다. 마을별 장기자랑에서 우리마을은 매우 노력했고, 대동놀이에서 나는 북을 쳤다. 뒤풀이... 미지근한 막걸리에 실망했지만, 그냥 마셨다. 그리고 안주를 찾아 풍양마을로 갔다. ㅋㅋㅋ. 신부님과 재미있게 놀면서 여러가지를 했다. 다시 선교리 모임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엄청난 음주에 떨어야 했다. 어떻게 잤지???
7월 11일 마지막 날이다. 일어났는데, 술이 안 깼다. 이런적은 처음이다. 샤워하고 밥먹고, 짐정리를 했다. 땀이 흐르니 잠이 깼다. 버스에서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지금도(당시 글을 쓸 때) 우울한 기분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명동이다. 선배들이 나오셨다. 감동이 물결.. 이렇게 많으신 분들이 나오시다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저녁을 먹고, 합정으로 갔다. 에수살이 공동체에서 총평가 MT를 가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총평가 MT(7시간이 넘었지???) 그것을 마치고 나는 형을 배웅하기 위해 먼저 떠났다. 그 때가 5시 30분 이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농활이 끝이 났다.


번  호 : 21
제  목 : 경북방문기(慶北訪問記)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시  간 : 2002-09-09 오후 5:23:17
내  용 :  경북 상주. 내가 여름에 농촌공소활동을 하러 갔던 곳이다. 이번 가을을 맞아 농활의 지속성을 살리기 위해 수업까지 빼 먹으며 그 먼길을 사비를 들여 갔다. 예상했던 만큼의 작업과 교류는 하지 못했지만, 어른들을 만나뵐 수 있어서 반가웠다. 다음 여름 농활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주주변지역 화령, 화동, 모동, 모서에 대해 알아가면서, 생활반경이라던가 생활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농활을 마치고 시골 버스를 타봤다. 손들면 세워준다. 그러나 속으로 욕한다. 상주시내를 뛰어보고, 상주역에서 영주역까지 이동을 했다(함창->점촌->용궁->예천) 그리고 택시로 영주에서 유명한 "장춘당약국"에서 또다시 버스를 탔다. 대부분의 버스가 목적지에 따라 기사가 요금을 말해주는 시스템 같았다. 어쨌든, 영주역에서 부석사를 가는 관광객을 봤을 때, 나도 그런 재미있는 일을 해보길 원했었다.
동양대학교 캠퍼스를 둘러보았고, 상경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상북도...... 다음엔 종단하리라...


번  호 : 22
제  목 : 노벨상 100주년 기념전
작성자 : 박영식
E-mail : suritam9@hotmail.com
U R L  : suritam9.netian.com
시  간 : 2002-10-31 오전 2:27:19
내  용 :  대학을 서울로 가게된 이후, 서울에 있는 전시회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던 중, 과학잡지 뒷 면의 전시회소개글을 읽고 로댕갤러리를 찾게되었다.
초행길이라 찾는데에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그리 오래걸리지는 않았다. 입장료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매표소 앞의 글을 읽고 입장료가 3000원임을 확인했다. 일단 표를 구입하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지를 보고 대충의 배치를 살핀후에 천천히 돌아보았다. 수상자 퍼레이드라고 분류된 곳에는 수상자들의 사진과 설명이 도안되어있는 천이 어떤 장치물에 달려 하늘거렸다. 빛을 살짝 투과하는 매우 고급스러워 보이는 천이라 매우 멋졌다. 그러 수상자들의 사진이 각각의 천에 의해 가려져 있어 제대로는 볼 수 없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여성수상자들을 보았다.
안쪽은 매우 반짝이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눈이 피곤할 정도로 반짝여서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여정파빌리온, 케임브리지 파빌리온, 자료전시 부분을 사폈다. 그렇게 시선을 잡아둘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오디오 파빌리온에서는 수상자들의 인터뷰라든가 연설을 들어볼 수 있었다. 헤밍웨이와 어떤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참 느낌이 새로웠다. 천천히 그 주위를 도는데, 김대중대통령의 사진이 보였다. 음. 역시 그의 목소리도 들어봤다. 그의 진실된 음성이 아직도 맴도는 것 같다.
노벨의 생에 만찬 시스템이 전시된 것을 보며, 고등학교 때 가졌던 노벨상에 대한 관심을 기억해 보았다. 평화관에 들어가기 전에 설치되어있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평화상 수상자들의 다큐멘터리식 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었다. 달라이라마의 것을 보았는데, 정말 잘 만들어 놓았다.
평화관에 입실하자, 영화에서만 보았던, 다중 디스플레이 방식의 전시관이 드러났다. 물론 전시장을 별로 안 가본 탔도 있겠지만, 너무나 멋지게 꾸며놓은 것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는 마더데레사의 비디오를 보며 다시 한번 그녀를 생각해 보았다. 아, 중간에 홀로그램으로 떠오르는 노벨 메달을 살펴보았다. "만져 보세요"라는 글이 써 있었서, 속으로 의심은 했었으나, 만져지지 않아, 또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평화관을 빠져나와 영상관으로 들어갔다. 개인과 창조성에서는 영상물보다는 전시된 기념물에 관심을 가졌다. 8가지씩 양쪽에 진열된 과학자들의 연구도구라든가 문학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물건들은 생소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거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알록달록 옥수수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DNA구조와 관련하여 생명에 대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하지만 창조적 환경서 본 영상물도 생물학에 관련된 것이었다.
창조적 환경에서는 BII(바젤면역학연구소)에 대한 영상물을 관람하였다. BII는 면역학에 대한 연구소로 과학자들이 모여 매우 대단한 연구를 하는 곳이다. 물론 2001년에 문을 닫았다고는 하나 좋은 시설과 자유로운 환경을 창조적 환경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제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영상물이었다.
내가 가장 오랜 시간동안 있었던 곳은 노벨인터넷박물관으로 매우 재미있었다. 사실 모두 영어로 되어있고, 키보드 사용도 제한적이었지만, 몇 번 클릭해 보면서 이용방법을 찾은 후 부터는 정말 재미있게 빠져 들었다. 특히 EDUCATINAL 부분의 GAME은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TR을 이용한 폭탄해체와 TR의 유무에 따른 재활용, 조건반사 만들기, William Golding의 작품 Lord of the Flies를 게임화 한 것을 해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화학실험실을 가상적으로 구현하여 실험장치라든가 도구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도 만화로 되어있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생들과 다른 관람객이 지나다녔는데, 혼자 관람하는 것보다는 시끄러웠지만, 다른 사람이 전시회를 관람하는 관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100주념 기념도록을 다시한번 살펴보았다. 이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소장가치가 있으면 구입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도 물론 노벨상에 대한 여러 책이 있지만, 여기서 발간된 책은 다른 느낌이 있어 사기로 했다.
갤러리를 완전히 빠져나와 전시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창조성의 문화 : 개인과 환경"이란 주제를 놓고는 영상물이 전부였지, 특별히 관련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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